물질의 소유보다 정신의 소유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은 의심할 바 없이 약 20~30여 군데의 농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러는 이 들판을, 로크는 저 들판을, 매닝은 저 너머 숲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풍경을 소유하지 못한다. 모든 부분을 통합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자, 바로 시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소유물이 지평선 위에 있다.
이 문장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연』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시인 같은 눈을 가진 자는 세상 모든 부분을 통합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장 뜻을 나 나름 새겨보았다.
첫째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을 가지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즉 뒤에 숨어 있는 부분까지 넓게 보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물질의 소유와 정신의 소유 가운데 정신의 소유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 정신, 내 영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고 누구는 청소해야 할 쓰레기라고 보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쓸쓸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청소해야 할 쓰레기라고 본다면 그게 끝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는 여러 가지 뜻을 담을 수 있다. 봄에 파란 싹이 나고, 여름에는 잎이 풍성해지고, 가을이 되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게 나무의 인생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기로 태어나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노인이 된다. 그런 뒤 삶을 마친다. 우리가 날마다 보는 자연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잘 곱씹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런 눈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아파트, 자동차, 가방, 옷 같은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다. 남보다 하나를 더 가졌다고 우쭐하고 자랑한다. 조금 덜 가졌다고 창피해하고 기가 죽는다. 하지만 인생을 자기 생각,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조금 덜 가진 사람과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남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가 더 참다운 인생을 사는 걸까? 억대 연봉을 받지만, 회사에 묶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하는 사람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시골에서 자신의 밭을 가꾸며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사는 걸까? 난 아직 이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하는 ‘누구도 그 풍경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말은 눈앞에 놓인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라는 말이 아닐까?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물질적 소유의 경계를 넘어 그것을 통합하는 눈을 소유해야 한다고 한 것도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세상을 크게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까?
사람마다 성공, 행복 같은 가치들의 기준이 다 다르다. 나도 아직 이 기준을 명확히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날마다 책을 읽고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공부한다.
‘어느 누구도 그 풍경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문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