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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Mar 14. 2019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그녀는 새삼스럽게 자기 나이와 딸애의 나이를 생각해본다. 같은 세상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그녀는 슬퍼진다.”   

  

  이 문장은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글이다. 난쟁이로 상징되는 가진 게 없는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대립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대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이 책에 관해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내 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생각이 틀렸다고, 먼저 살아본 부모 말이 옳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일에 대해 내가 내 아이들에게 한 말을 내 부모님이 듣고 틀렸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내 말이 틀렸다고 말한다면 내 아이의 말이 맞는 게 되는 걸까? 아니면 그 누구의 말도 맞지 않는 걸까? 그럼 내가 내 자식에게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보통 자식과 부모는 20~30년 이상 차이가 난다. 강산도 10년이면 바뀐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 사회 상황, 보고 듣고 느낀 것과 내 자식이 10여 년에서 20년 살면서 겪은 경험, 사회 상황,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서로 다르다. 따라서 서로 머리에 만들어진 생각의 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일 테고. 같은 세상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슬프다면 슬프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청 다른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다르다’고 표현할 자리에 ‘틀리다’는 말을 쓴다. “같은 뱃속으로 나은 자식인데 너무 틀려요.” “색상마다 가격이 조금씩 틀려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두 명의 자식이 있다면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거겠지. 색깔에 따라 가격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게 맞겠지. 아이의 말과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생각과 아이의 생각이 다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고.      

  틀리다는 말은 무언가에 대해 정답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1 더하기 1은 2가 맞는데 3이라고 했을 때 틀렸다는 말을 쓴다. 남자와 여자는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다름을 다르다고 인정한다면 아마 많은 갈등이나 다툼이 없어질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대할 때나 동료들을 대할 때 계속 머릿속으로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을 생각한다. 저 사람은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그랬더니 전보다 훨씬 사람을 대하기도 쉬워졌다. 

    

  꼰대 또는 꼰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나 교사 같은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요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라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내가 내 아이들에게, 직장에서는 아랫사람에게 꼰대질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네 말은 틀려!” 하고 말하는 순간 이미 꼰대가 된 건 아닐까? “너는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하고 말하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어린 자식이든, 직장 동료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듣는 방법을 몰라서 우리는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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