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ks Mar 07. 2019

무언가를 본다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크나큰 기쁨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볼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크나큰 기쁨이다. 단순한 반점같이 지극히 하찮은 것을 보는 것도 때로는 큰 기쁨이 될 수 있다. 


  이 문장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 나오는 문장이다. 장 루이 마르탱이란 사람이 교통사고 뒤 성 마르그리트 병원에 입원하여 단지 한쪽 눈과 한쪽 귀만 감각이 있는 상태에서 두 명의 간호사에게 학대당하며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다 생각하는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책에서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둠. 그것은 시각의 호흡 정지였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참으로 훌륭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호흡이 정지된다는 말은 죽음을 뜻한다. 그런데 시각의 호흡정지라니.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시각이 죽은 거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이보다 두려운 게 있을까. 

  오래전에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분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떤지 체험한 적이 있다. 눈가리개를 하고 지팡이 하나만 들고 200미터 정도 걸어가는 거였다. 물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짧은 거리였지만 몸으로 느끼는 거리는 엄청나게 긴 느낌이었다.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난데없이 온 세상이 빛 한줄기 없는 세상으로 바뀐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집을 나서면 보이는 따뜻한 햇볕, 파란 하늘, 초록색 나무. 이 같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하나도 볼 수 없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몸을 다쳐 움직일 수 없는 것보다 큰 불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단순한 반점같이 지극히 하찮은 것을 보는 것도 때로는 큰 기쁨이 될 수 있다’고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되풀이되는 삶 속에서 그냥 지나쳤던 많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무 한 그루, 아파트 잔디밭에 난 꽃 한 송이, 창가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눈이 있어 볼 수 있다.

      

  어디 눈뿐인가. 손이 있어 만질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발이 있어 걸어 다닐 수 있는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소중한 우리 몸을 마구 다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에 병이 나면 그때 서야 고마움을 알게 된다.


  언젠가 이 세상과 작별하는 게 인생이다. 그 순간까지 볼 수 있다는 행복을 누리려면 언제나 소중히 다뤄야 할 거 같다. 그게 신이 주신 삶에 대한 예의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주위에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삶이 진정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그분들보다 더 많은 자연의 선물을 받고 있으니 그 선물 가운데 일부를 그분들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한 도리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