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흰머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 글은 혜민 스님의 책 제목이다. 몇 년 전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갔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서점에 들러 비행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 비행기를 기다리며 읽었다. 읽다 보니 비행기 타기 전에 다 읽어버렸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는데 이 책이 손에 잡혔다. 그런데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책 내용을 다시 읽기보다 한참을 책 제목만 보고 서 있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그래, 내가 요즘에 너무 바쁘게 살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출근 준비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가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게 보인다. 이렇게 일에만 매달려 사는 나 자신이 싫을 때도 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봐야 누가 알아주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마흔 가운데를 넘어선 나에게 이 제목이 눈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내가 청소하고, 밥을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밥이 다 되었다며 밥 먹자고 해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잠시 아내를 빤히 쳐다봤다.
“왜 쳐다봐? 뭐 할 말 있어?”
“아니, 그냥. 그냥 보는 거야.”
“별 싱겁기는...”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도 흰머리가 많이 난 게 보였다. 나와 아내는 동갑내기다. 애들은 고등학생 둘 있다. 아내도 직장을 다닌다. 워킹맘이라고 하나. 결혼 생활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내가 늙는 것만 생각하고,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도 함께 늙어 가는데. 나는 아내가 가끔 미용실에 가서 염색한다고 하면 별생각 없이 들었다. 그게 흰머리를 감추려고 염색하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여자들이 머리하는 게 꾸미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참 생각 없는 놈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부부는 빨리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사이라는 걸 잊고 살았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사이가 부부인데.
잠시 오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마음을 담아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 한다.
“여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