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정해진 내 자리란 없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은 많은 사건들 중 하나가 있다. 직장에 들어온 지 10여 년이 지난 때였다. 그때 나는 수사팀 팀장이었다. 그날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별 일이 없어 6시 ‘땡’하고 퇴근하고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팀원 중 한 명이 내게 전화를 했다.
“팀장님! 얘기 들었어요?”
“뭘요?” 내가 대답했다.
“저 나가래요…….” 팀원이 뜬금없이 말했다.
“무슨 소리에요? 그게?”
“몰라요. 나가라는데요…….”
“누가 그래요?”
“XXX가요…….”
“……. 일단 끊어봐요”
잠시 후 다른 팀원에게 전화가 왔다.
“왜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팀원에게 물었다.
“팀장님! 얘기 들었어요?”
“김 형사님도 나가래요?”(실제 김 씨는 아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김 형사가 이상하다는 투로 답했다.
“방금 이 형사님에게 전화 받았거든요”(실제 이 씨는 아니다)
“이런…….” 김 형사가 말했다.
“일단 끊어보세요…….”
대충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낌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다. 다른 모 팀장이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휴대전화에 이름이 뜨는 순간, 나는 진짜 이때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팀을 다시 짜는 얘기인 줄 알았다.
“예. X팀장님! 어쩐 일이세요?” 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받았다.
“이 팀장! 미안한데……. 이 팀장 얼른 자리 알아봐. 내가 대신 연락해주는 거야.”
“예? 저도 나가래요?”
“미안해……. 뭐 어쩌겠어…….”
“아니 팀장님이 저에게 미안할 건 아니죠. 음…….일단 알겠습니다. 끊을게요.”
이 모든 것이 집에 가는 차안에서 휴대전화로 10분 남짓한 시간에 벌어졌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느낌이 올 거다. 더 자세한 내용들은 뺐다.
집에 차를 세워놓고 팀원들 모두에게 전화하여 술집으로 모였다. 그 뒤에는 어땠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술에 ‘맛’이 갔다. 그 후 실제 인사발령으로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살아남은 팀원도 있긴 하지만. 나도 다른 부서로 옮겼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언제까지나 안전한 길만 보고 그 길을 벗어난 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쳐다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무난하게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소위 찍히지만 않고 이대로 가면 어느 정도 승진도 하고 60세까지 무사히 정년을 마치리라 믿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찾아온 것이다. 즉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그 자리가 언제나 내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말고도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능력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직장이라는 곳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회생활이, 직장 생활이 녹녹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데 나도 참 어리석은 놈이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사건 말고도 앞서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다. 이처럼 몇 번 위기를 겪고 뭔가를 느꼈으면 그것을 발판삼아 안전한 길 밖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눈을 자주 돌리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평범한 것, 편안한 것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있는지 그러지 못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던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너무도 어리석어 기회가 기회인지도 모르는 채 넘어갔다. 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들이 1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어쨌건 이처럼 된통 얻어맞았는데도 나는 옮겨간 부서에서 열심히 일했다. 물론 첫 1년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사건은 마음 속 한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