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틀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잠시 당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해 생각해 보라.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당신 자신일지도 모른다. 또한 당신 자신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오직 인식만 존재할 뿐 ‘실체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신념의 창을 확인하라. 당신이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신념의 창 말이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판단기준이자 태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기회를 놓치고 발전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고정관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문장은 『피라니아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안진환 옮김, 시공사)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오직 인식만 존재할 뿐 실체는 없다.” 내 눈앞에 보이는 실체는 내가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인식하는 대로 보일 뿐이다. 내 앞에 보이는 나무가 다른 동물들이 볼 때도 나와 같이 보일까? 나에게 사과라고 보이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네오와 그 동료들이 식사하면서 지금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것이 – 지금 그 음식 이름이 오믈렛이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 실제 오믈렛 맛일까 하면서 의구심을 던지던 장면이었다.
지은이는 인식을 강조하면서 신념의 창을 확인하라 말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틀, 그 틀의 형태에 따라 그것이 기회를 놓치고 발전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고정관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유연한 관점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어느 한 가지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야 함을 강조하는 듯하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에 비유한다. 그 사람의 주된 생각의 틀 때문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일 수도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놓치거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야구와 축구는 규칙이 다르다. 그렇기에 야구 규칙을 축구에 적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다. 어쩌면 규칙이 없다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인생에서 어느 한 규칙만을 가지고 인생에 적용한다면 분명 새로운 기회를 잡고,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기준은 분명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 고집하면 안 된다.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있되 다른 사람의 틀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