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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Apr 29. 2019

시간, 나이 듦 그리고 선택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갑부도 살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시간’과 ‘나이 듦’이다.

  시간은 저축해 놓고 나중에 빼서 쓸 수 없다. 지나가면 그냥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시간은 저축이 되지 않는 자산이다. 소비 아니면 투자 둘 가운데 하나만 가능하다. 그냥 소비할지 좋은 곳에 투자하여 나중에 그 혜택을 볼지는 내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올바르게 시간을 투자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루기 어려운 일을 하느라 오랜 시간을 바치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60세에 고민할 것을 앞당겨 지금 고민하자.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을 아끼고 그 시간을 좋은 곳에 투자할 때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직 12시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 앞글들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을 80세로 쳤을 때 이를 24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12를 말한다 ―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낮잠을 자며 시간을 ‘소비’할지, 점심 먹고 남는 2~30분의 시간을 ‘투자’할지 잘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이 듦’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으로 가까이 다가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완전함은 부분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다. 살아 있음과 죽음이 모여야 완전한 삶이고 인생이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는 당신만이 울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다. 이 문장을 나만의 방법으로 해석해 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땐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을 선택했을까? 내가 내 부모를 고를 수 있었다면, 내가 내 가정환경을 고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모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이 지구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조물주는 태어나는 것만큼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나 보다. 그래서 그것이 서러워 태어났을 때 우리는 모두 울었나 보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받은 우리 가족들은 그 선물에 기분이 좋아 웃었나 보다. 

  그러나 태어난 뒤부터는 나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선택은 내 몫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최종 도착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간다. 어느 정도 길을 가야만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깨닫는다. 누구는 빨리 깨닫고 누구는 거의 다 도착해서야 깨닫는다. 마침내 우리는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죽음이라는 길 한쪽 끝에 도착해서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후회하면 울 것이고,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웃을 것이다. 이건 나의 만족에 따른다. 하지만 내가 죽을 때 주위 사람들이 웃는다면 그 이유가 뭘까? 아마 내가 생각보다 일찍 그들과 헤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을 더는 괴롭히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럼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 반대일 것이다.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자신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데 앞으로 그런 영향을 받을 수 없으니 서글퍼서 울 것이다.

  저 문장을 직장 생활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내가 직장에 들어왔을 때, 나만 긴장하고, 선배들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직장을 떠날 때는 나만 미소 짓고, 동료 후배들이 슬퍼하는 직장 생활을 하십시오.』

     

  지금 나는 죽음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서 있다. 지난날 수많은 알림판을 보면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수많은 알림판을 보면서 길을 걸어갈 것이다. 가다 보면 ‘산사태 조심’이라는 알림판도 볼 것이고, ‘교통사고 잦은 곳’이라는 것도 볼 것이고, ‘낙석 주의’ 또는 ‘빙판 주의’ 같은 알림판도 볼 것이다. 길이 많이 굽어 있으니 천천히 가라는 것도 볼 것이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질 수 있다는 알림판도 볼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는 이 세상과 헤어져야 하는 곳이 기다리고 있다. ‘은퇴 기점 12km 지점’, ‘죽음 기점 35km 지점’이 지금 나의 자리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개인은 집단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고투를 벌여야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외롭고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삶을 위해 지불하는 값은 아무리 높아도 비싼 것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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