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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May 20. 2019

나는 모범시민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죽은 자의 삶

  결혼에 성공하고 아이를 낳는다. 조금 더 큰 자동차를 36개월 할부로 산다. 아이 방도 있어야 하니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물론 30년 동안 갚아야 하는 대출을 끼고 산다. 말이 내 집이지 은행 집이다. 날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삶을 산다. 아이들 학원비가 만만치 않다. 가끔 외식도 해야 하고 가끔은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가야 한다. 저축할 돈은 없다. 아등바등 버텨 60세에 드디어 퇴직한다. 은퇴 뒤에는 ‘역모기지론’이라는 금융상품으로 생활을 한다. 60세 은퇴할 때까지 뼈 빠지게 30년 동안 일해서 대출을 다 갚았는데 은퇴 후에는 이 아파트를 담보로 해서 다시 생활자금을 빌려 쓴다. 그렇게 해서 죽을 때쯤 되면 가진 것 없이 이 세상과 헤어진다.


  우리는 살면서 자식에게 나처럼 살지 말고 더 잘 살라고 하면서도 내가 걸어온 길을 강요한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더 좋은 직장을 얻으라고 말한다. 이게 맞는 말인가. 이것은 내 자식에게 너도 똑같이 대학 나와서 월급쟁이인 아빠보다 조금 더 월급이 많은 곳에 들어가 똑같이 결혼하고 대출받아 집 사고 그렇게 살다가 자식을 낳으면 그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하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삶은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외식하는 삶에서 두 번 외식하는 삶을 살라고. 몇 년에 한 번 해외여행 가는 삶에서 일 년에 한 번은 갈 수 있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언스크립티드』에서 엠제이 드마코는 ‘모범(M.O.D.E.L)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모범시민의 삶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평범하다(Mediocre) : 삶이 별 볼 일 없지만 안락한 평범함으로 위안을 삼고, 목표는 번창이 아니라 생존이다.
  ・순종적이다(Obedient) : 자유로운 사고는 죽고, 다수의 의견을 추종하고 정부와 언론을 신뢰하다 보니 점점 더 의견의 편향성이 심해진다.
  ・예속적이다(Dependent) : 빚 때문에 기업―상품 및 서비스 생산자들, 월스트리트, 정부―의 종이 되었거나 시간의 종이 되었다.
  ・오락에 정신이 팔렸다(Entertained) : 오락거리에 심취한 나머지 영혼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산만해졌다.
  ・생명력이 없다(Lifeless) :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살아 있긴 하나 죽은 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그런 삶을 땅에 묻힐 때까지 지속한다. 목표? 없다. 낙천성? 거의 바닥이다. 꿈? 살해당했다.     


  나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들과 똑같지 않은가. 나는 ‘평범하다’와 ‘예속적이다’ 그리고 ‘생명력이 없다’가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살아 있긴 하나 죽은 자로서 삶을 시작한다.’는 문장은 더욱 그러하다. ‘죽은 자로서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 뭘까? 

  공유와 김고은이 나오는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는 저승사자들이 나온다. 저승사자들은 이승에 있을 때 가장 큰 죄를 지은 자들이다. 그에 대한 벌로 저승사자가 되었다. 저승사자들은 모두 이름이 ‘김 차사’다. 자신의 이름이 없다. 이름뿐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꿈도 없다. 그저 정해진 일만 할 뿐이다. 신이 정해준 대로 자신에게 맡겨진 몫만 채우면 저승사자로서 할 일이 끝난다. 이들이 바로 죽은 자의 삶이다.


  살아 있지만 꿈도 없이 그냥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인생, 그러한 삶이 바로 죽은 자의 삶이다. 내가 직장에 들어와 지금까지 산 삶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가 바로 죽은 자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나는 더는 모범시민으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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