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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Jun 07. 2023

얼마나 더 해야 할까요?

강물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기 싫어서 최선을 다했다.

나의 이전 글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투병 중이시다.

나이에 비해서 건강하다는 얘기를 들으셨는데 한 순간에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누구보다 건강하신 분이었다.

그런데 너무 건강해서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한 게 문제였을까?

암 선고를 받으셨고 수술을 몇 번을 했다. 뒤이어 항암치료도 받으셨고 몇 년 동안 투병하셨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암이 재발했고, 온몸으로 전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는 몸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처음에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던 가족들은 이제 아버지가 정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스러져가는구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가슴속 깊은 슬픔이 밀물이 쓸려오듯이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최선을 다 해서 아버지를 보려고 노력 중이다.  최대한 아버지의 나머지 시간들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다. 더불어 나도 아버지가 가신 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그날도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버지가 어떠신지 친정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의 근황을 들었고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힘든 엄마의 고단함을 들어 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언니한테 잘해라!"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건 무슨 얘기지?' 나누던 대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하니까, 어안이 벙벙했다.




나도 엄마다. 그래서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 같은 자식이라도 마음이 더 가는 자식이 솔직히 있다. 우리 엄마한테는 항상 그런 자식이 '언니'라는 걸 안다. 언니는 항상 본인의 힘듦을 내색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그와 정반대이다. 적당히 힘들 때도 '말해 뭐 해? 대신 해결해 줄 것도 아닌데'라는 마음이 든다. 더 힘든 일이 있으면 더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독립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늘 외롭다. 아무한테도 기대지 않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살고 있다. 그런데 힘듦을 얘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힘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들자식이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다. '남존여비'사상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았던 분들이다.  

그것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밤새도 얘기할 수 있다. 그렇게 아들은 부모님의 보물 단지이며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보살핌을 해줘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 아들과 더불어 우리 둘째 언니는 항상 안쓰러운 자식이다.

여러 해 동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언니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언니의 시어머니 김장도 해준다. 매년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계속하시는 일이다. "왜 그렇게 저 자세냐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 얘기해도 매년 그러신다.


아이도 없이 항상 힘들어하는 언니는 또 다른 부모님의 보살펴야 하는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나한테 '언니한테 자주 연락해라. 언니한테 잘해라. 언니 말 잘 들어라.'라는 말을 수시로 하신다. 정작 부모님을 챙기고 쫓아다닌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그럼 내가 한가하냐고? 아니다. 나는 맞벌이하면서 살고 있고, 부모님의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 그것도 차가 안 막힌다는 전제로 말이다. 



솔직히 오늘은 지친다. 아버지가 아프신 후 엄마의 노고를 알고 있지만, 여전히 언니만 챙기라는 엄마께 오늘은 서운함이 밀려온다. 얼마나 더 해야지, 나는 부모님에게 만족스러운 자식이 될까?

(사실 생각해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강물은 한쪽 방향으로 흐른다. 사랑도 그렇지 않을까? 흐르는 쪽으로만 흐르는 것이다. 


이 나이에도 나한테 흐르지 않는 사랑에 속상한 건 아직 더 커야 하는 건가?

퍼주기만 하는 사랑을 나는 더 얼마나 더 해야 할까?

열심히만 살았던 나는 더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할까?

이럴 때는 나도 모른척하고 살고 싶다. (아버지께 바로 전화를 드린다. 괜찮으시냐고? 바보 같은 나는 오늘도 바뀔 수 없나 보다...)


PS) 나를 들어내지 않고 담담히 다른 얘기를 쓰고 싶지만, 자꾸 속상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나 보다. 나도 콜 해지고 싶다!


박완서 작가를 좋아한다. 40이 넘어서 등단한 작가의 스토리를 들으니 더 좋아졌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최근 어떤 책에서 박완서 작가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40대에 갑자기 등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무수히 많은 책을 오랜 시간 동안 읽었고, 무수히 많은 글을 썼다고 한다. 나의 글이 오늘은 쓸모없이 보일지라도 나중에 나의 소중한 걸작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속상한 마음에 발행을 안 하려다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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