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수 Jun 16. 2023

그렇게 땅으로 떠났다.(1편)

아버지 가시는 길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가시는 길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는 표현이 서툰 분입니다.

좋게 말해도 될 것을 이상하게 말해서 사람한테 상처를 주시곤 합니다.

'욱' 할 줄은 알았는데 사과를 하거나 상황을 누그러 뜨리는 방법은 서툰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지나고 나면 그건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좋은 표현도 많은데, 아닌 경우가 많아서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일평생 처자식을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처자식뿐만 아니라 7남매의 맏형 노릇을 하느라, 일평생 뼈 빠지게 일했습니다.


벌써 20년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한창 나만의 관심사에 빠져있는 시기라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 동생들로부터 '손절'을 당했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면서 형제들과의 갈등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고 하셨고, 다른 형제들은 할머니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면서 수술을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로 할머니는 수술하고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식물인간으로 몇 달을 누워만 있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판단이 맞았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들 스스로 여러 번 '아버지'와 다름없는 '큰형'이라고 말했음에도 여러 번 ( 다:1 )의 다툼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형제들에게 손절을 당했습니다.




손절당하기 전 오랫동안 우리 아버지집 근방에 형제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시시때때로 맛있는 것을 나눠 먹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우리 집에서 모였고 엄마가 요리를 하셨습니다. 요리가 끝날 때쯤 작은 엄마들이 왔고 뒤정리를 작은 엄마들이 했습니다. 그런 생활은 여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숙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우리 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줬습니다. 사실 지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 부대끼며 살면서 남자들은 좋았겠지만 여자들은 훨씬 힘들고 서로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을 거예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들과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삼촌들이 결혼하기 전까지요. 좁디좁은 방에서 삼촌들과 같이 살면서 싫었던 것도 많았어요. 엄마가 없으면 우리가 삼촌들 밥을 챙겨줘야 했거든요.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삼촌들 밥을 챙겨줬어요. 그러니 별로 좋은 게 없었겠지요. 그렇다고 삼촌들이 다정다감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지나고 보니까 삼촌들과의 좋은 기억만 선명하고 나빴던 기억은 희미해서 별로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그렇게 삼촌들은 우리들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았어요. 왜냐고요? 아버지가 형제들한테 의절을 당했으니까요. 아버지가 경제적인 능력이 좋을 때는 형제자매, 어머니,  처 자식들 건사하느라 돈을 몽땅 써버렸고요. 

모은 돈도 없어요. 삼촌들이 경제력이 좋아졌을 때 아버지가  손절을 당했으니까, 아버지는 어떠한 보답도 받지 못한 거지요. 아버지가 삼촌들을 돌본건 보답을 받으려고 하신 건 아니지만, 얼마나 쓸쓸하고 그리웠을까요?



왜 이렇게 과거 얘기냐고요? 이제 그 얘기를 할게요. 아버지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요.

주무시고 계시다가 뇌출혈이 왔어요. 뇌출혈로 바로 혼수상태가 되었고 '연명치료'를 거부하셨던 아버지는 그대로 돌아가셨어요. 물론 수술을 할 거냐고 의사가 물어봤어요. 수술의 결과는 '테이블 데스' 이거나 '식물인간'이라고 했어요. 그건 분명히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어요. 엄마는 수술을 안 하시기로 결정하셨고 아버지는 하루동안 혼수상태로 계시다가 그대로 우리 곁을 떠나셨어요.


그 하루동안 아들, 딸, 엄마, 손녀, 손자 모두 와서 아버지와 인사를 나눴어요.

혼수상태에 있어도 아버지의 귀는 아직 들린다고 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얘기해 줬어요.


귀가 정말 들리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웠을 때 나의 여동생이 들어왔어요. 우리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예요. 그리고 우리 여동생은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지요. 종교 때문에 부모님과 여동생이 여러 해 동안 갈등을 빚기도 했어요. 마지막 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할 말을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여동생이 '아버지, 천국에 가서 나하고 만나요!'라고 손을 잡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계속 '0'을 가리키던 혈압을 나타낸 수치가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여동생을 제지시키고 '아버지, 괜찮아요.'라고 얘기했더니 혈압을 나타내는 수치가 '0'을 가리켰어요. 아버지는 분명 귀로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나 봐요.


아버지가 원하시는 데로 조금만 아프다가 가족들한테 폐 끼치기 않고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아버지는 편하게 자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코까지 골면서 말이죠. 

더 이상 아버지가 아프지 않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땅으로 가셨어요. 이제 아버지는 웃고 있을까요?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역시는 역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