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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Aug 22. 2023

따뜻한 손 한번 잡아줬으면...

마음이 약해지네.

씩씩하고 독립적인 사람도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그건 몸이 아플 때이다. 그것도 죽을지도 모르는 큰 병에 걸렸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5년 전에 암에 걸렸었다.

물론 예후가 좋다는 갑상선 암에 걸렸지만 그것도 암은 암이다. 갑상선암으로 죽는 사람도 엄연히 있으니, 암이라는 놈은 착한 암은 없다.


처음 시작은 건강검진에서였다. 매년 하던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된 것을 알았다. 암으로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면서도 나는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걱정됐다. 할 일이 많다고 걱정해 봐야 몸이 아프면 그런 걱정들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의 속담은 참으로 지혜로운 말들이 많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건강하면 평생 건강할 줄 안다. 젊음은 나한테 영원한 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건강도 젊음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그걸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 또한 그랬다. 내 몸 돌볼시간 같은 것은 도저히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몸 갈아서 아이들은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챙길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건강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적당히 본인 몸도 챙기면서 끝까지 옆을 지켜주는 엄마와 자신의 몸을 갈아서 자식을 키우느라 아이들곁을 일찍 떠나는 엄마 중에 누구를 아이들이 원할 것인가?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자신의 몸도 알뜰이 챙겨서 아이들 곁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내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잘못하다가는 아이들 곁을 너무 일찍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마다 무섭고 슬펐다.


성인이 된 후에도 결혼할 때, 내 아이를 낳을 때, 아이들 남편이 속 썩 일 때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떠올리려고 한 게 아니라 저절로 떠올랐다. 아무리 헐렁이 엄마라도 내 아이들을 가장 사랑해 줄 사람은 엄마일 것이다.(물론 요즘 뉴스에 가끔 아닌 인간들도 있지만...(쩝)) 


첫애를 낳을 때, 힘내라고 조용히 내 손을 잡아줬던 엄마의 손을 잊을 수 없다. 작은 엄마의 손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나도 내 아이가 첫애를 낳을 때 손을 잡아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어느덧 암수술 후 5년이 흘렀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가 참 잘 돼있다. 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중증환자'로 분류된다. '중증환자'로 등록이 되면 그 질병과 관련한 병원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나는 암수술을 한 지 5년이 지나서 얼마 전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오늘 병원비를 내다가 깜짝 놀랐다. '증증환자' 등록이 끝나서 금액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병원비는 많이 나왔지만 완치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은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다. 나는 누구보다 독립적인 사람이다. 굳이 남편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으면 나 혼자 병원에 갔다 온다. 오늘도 혼자서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시간은 항상 길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매번 기다리다 보면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거기에는 가족이 있다. 엄마를 모시고 온 아들, 딸들, 아내의 손을 잡고 앉아있는 남편,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 아빠들이 있다. 평균적으로 갑상선암은 여성이 많이 걸리는 암이다. 그래서 대기실에 안아있는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중에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아픈 사람들은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나의 고통을 같이 나눠 줄 사람이면 된다. 위로의 말 같은 거 안 해도 된다. 그냥 내 손만 잡고 옆에만 있어줘도 된다. 다음 진료에는 남편한테 같이 가자고 해야겠다. 아플 때는 아무도 독립적이지 않다.(나는 그렇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마음이 약해졌으니... 따뜻한 손 한번 잡아줘라! 나도 너 아플 때 꼭 잡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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