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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수 Nov 15. 2022

그 많은 아줌마, 아저씨는 왜? 산으로 왔을까?

산은 멀리서 즐겨야 제맛이라고 얘기하던 게 나였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것인 것처럼,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건데 왜? 꾸역꾸역 올라가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제나 산이냐? 바다냐?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를 택했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산을 보고 있자니, 거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말이다.

언젠가 몇 년 전에 자동차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었다.

한 달 넘게 입원을 해야만 했다.

다인실 병원에 입원하고 오랜 시간 있다 보니까,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귀 기울이게 됐다.


내 앞 침대의 중년의 그녀는 수술을 2번이나 했다고 했다.

사연인 즉, 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중간에 있는 나무를 붙잡아서 더 다치지 않았지, 정말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산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즐긴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가 않았다.

단지 근육질은 그녀의 몸매를 부러워했을 뿐이었다.


전국에 웬만한 산을 다 다녀봤다는 그녀가 산을 이야기할 때는 미소를 머금고 눈에 빛을 내면서 이야기를 했다. 퇴원하면 바로 그 주에 등산을 가기로 했다고 했다.




난 원래 도시를 좋아하는 도시 여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산에 가기 전날에 여의도에 있는 '더현대 백화점'을 갔었다.

사람으로 미여 터져서 변변히 앉아있을 자리도 없었다.

그 장소에 있는 내내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내 돈을 쓰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곳은 마음에 위로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었다.



다음날 그냥 산에 가고 싶어졌다.

그냥....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냥....


전날 이미 딸과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다.

다음날 먼저 일어나 기분 좋게 먼저 준비를 하고, 딸을 깨웠다.

그런데 '더 자고 싶고, 집에 있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산을 혼자 가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참~ 슬프게도 결혼해서 내가 아닌 가족 위주로 산 아줌마는 갑자기 만나자고 부를 친구가 없다.

나는 그렇다. 각 잡고 스케줄을 서로 점검하고 만나기도 힘든 친구들인데, 갑자기 전화해서 나올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하지? 나도 가지 말아야 하나?'

'아니, 나 꼭 가고 싶은데.....'

가방을 마저 주섬주섬 챙겼다. 물, 휴지, 물티슈, 등산스틱 등등.

이러면 웬만하면 따라 나올 텐데, 딸은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러다 엄마도 안 갈 줄 알았다고 했는데, 혼자 산에 간다고 나간 엄마가 딸은 의아했다고 한다.



호기롭게 집을 나왔지만, 발이 무거웠다.

그래도 네이버 길 찾기 어플을 켜고 혼자서 산으로 향했다.

산도 가본 지 너무 오래됐는데, 더더군다나 혼자 가다니?

하지만 이쯤도 혼자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빴다. 나 자신한테 말이다.

누구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혼자 간다고 하는데, 이쯤도 못하면 말이 안 되지!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산에 도착했다.

혼자라는 생각에 쭈뼛쭈뼛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여럿이 온 사람도 많은데, 혼자 온 사람도 많다!


어깨를 펴고 주위를 더 열심히 살폈다.

'와, 좋다!'

그냥 좋았다.

발밑에 밟히는 땅의 촉감도 좋고, 나무의 색깔도 이쁘고 멀리 떠 다니는 구름도 좋았다.

그냥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느리게 한발, 한발 걸었다.

걸을 때마다 점점 더 아무 생각이 안 든다. '앞으로 저 언덕을 지나면 정상이 나오나? 아니 이 길은 평평하네! 아이코 돌에 걸려 넘어질뻔했네, 조심해야겠네!' 한발 한발 나의 발소리와 나의 숨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 아이들한테 서운했던 것도, 일하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도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러면서 머릿속의 상념들이 하나씩 지워져 갔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까, 대부분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머릿속에 잡념들을 없애려고 여기에 오는구나!'

세상 시름이 그 어깨 위에 높이 올라가 있는 생활인들, 중년들이 그래서 여기를 오는 거였구나! 

잠시나마 무거운 마음 덜어내려고 말이다.


처음 산행이라 중간 언덕쯤에서 다시 내려왔다.

등이 촉촉하고 머리가 젖었지만, 내려오는 길에 불어오는 바람에 다 씻겨져 나가고 시원했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길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능선이 보이고, 나무, 식물이 보였다.


'다음 주에도 또 오고 싶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도 배낭을 싸야겠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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