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by 이광

누나가 명절 때 선물로 멸치가 들어왔다며 나눠먹자고 멸치를 보내왔다. 중멸이라 하기엔 크고 대멸이라 하기엔 작은 크기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에 먹었던 멸치볶음이 떠올라 멸치볶음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레시피를 확인했다. 멸치 내장은 쓴 맛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제거하라고 한다. 어머니에게 멸치볶음을 해볼 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멸치 머리와 내장을 떼어내는 일을 해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다듬어주신 멸치를 프라이팬에 볶았다. 그렇게 하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한참을 볶았더니 비린내 대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멸치를 한쪽으로 몰아두고 다른 쪽에 간장, 물엿, 설탕, 맛술, 깨,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을 부었다. 양념장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1센티미터 크기로 썰어놓은 매콤한 꽈리고추를 넣고 주걱 두 개로 멸치와 함께 잘 썩는다. 그러면 참 간단하고도 맛있는 멸치볶음이 완성된다. 일부러 간을 적게 하는 습관이 있어서 멸치볶음을 밥 없이 그냥 먹어도 짜지 않아 자꾸 손이 갔다.


밤에 브런치에 하루 동안 올라온 글을 읽다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들이키는데 문득 저녁 식탁에서 맛있게 먹었던 멸치볶음이 떠올랐다. 곧장 냉장고에서 멸치볶음을 꺼내 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맥주 안주 삼아 먹다 보니 멸치가 들어 있던 반찬 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 순간 밥반찬은 조금 짭조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안주삼아 먹더라도 이처럼 생각 없이 먹지는 않을 테니까.



멸치

문순태


누가 너를 작고 못생겼다고 할까

너의 짧은 생은 참으로 치열했고

마지막 은빛 파닥거림은 장엄했다

너는 떼 지어 다닐 때가 빛났고

혼자 있을 때는 늘 빳빳한 주검이었다

그 여리고 애처로운 몸으로

넓은 바다를 눈부시게 누볐던

너는 아직 내 안에서 희망이 되어

슬프도록 파닥거리고 있다



예전에 문순태 시인의 '멸치'라는 제목의 시를 읽다가 마음에 와닿아서 메모해 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볶음을 자주 먹었던 나로서는 이 시는 왠지 내 몸속에서 살이 되고 피가 되었을 멸치가 아직도 파닥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래의 꿈'이라는 노래처럼 꿈은 고래만 있는 것이 아닐 테다. 멸치도 자신만의 꿈을 찾아 드넓은 바다를 누비며 다녔을 거라고 상상해봤다. 그리고 시의 첫 행에 나온 것처럼 나는 멸치를 보면서 작고 못생겼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멸치'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멸치의 타고난 민첩함이다. 언젠가 TV 다큐멘터리에서 멸치의 군무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움직임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거대한 멸치 떼가 어쩌면 그렇게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지, 나는 그 순간 턱을 떨어뜨린 채 할 말을 잃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다음은 부두에서 열댓 명의 선원들이 리듬에 맞춰 촘촘한 그물에 걸린 멸치들을 털어내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 장면 역시 인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햇빛 속에 날아드는 하얀 갈매기들 아래로 선원들이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줄줄이 서서 그물을 털 때 퍼덕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은빛 멸치는 유난히 눈이 부셨고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때 하늘로 날아오르던 은빛 멸치의 몸짓은 차마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으리라. 그 장면들이 너무도 환상적이라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있다. 멸치는 살아서 바닷속 여기저기를 누비며 더 큰 바다를 꿈꾸었고 죽어서도 반찬에서 술안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쓸모 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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