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을 맞는 사람

by 이광

몇 년 전 불면증으로 밤이 낮만큼이다 밝았던 때가 있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불을 켜고 뭔가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애를 썼지만, 몸만 더욱 축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에서 뒤척거리며 누워있기보다는 할 일을 찾아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피로가 덜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뭔가를 만들고 이른 새벽이면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어느 날 새벽 산책에 나섰다가 야경에 매혹되어 뒷걸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잤더라면 꿈길을 걸었겠지만, 누구도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에 아름다운 야경을 독차지하며 걷는 것도 꿈길에 비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돌아섰더니 노숙자가 침낭에 들어간 채로 길가 전봇대에 기대어 평화롭게 잠들어있었다. 그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고 결국 내가 누리고 있던 혼자만의 평화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노숙자가 밤이면 이 근방 어딘가에서 한뎃잠을 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른 새벽에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았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오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노숙자의 성역을 침입한 것은 아닌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마음이 다소 진정되어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노숙자는 노숙자 쉼터 같은 보호시설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낮이면 봇짐을 메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밤이면 황홀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다소 아늑한 그곳에서 수년째 노숙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그 경험에 대해 글을 쓴 것이 바로 다음의 <노숙자>라는 시이다.



노숙자(露宿者)



국방색 파카에 검은색 솜바지로 사계절을 나고

불에 그을리고 찌그러진 반합과 침낭 하나,

그리고 살대가 휘어진 검은색 우산이 묶인 소박한 봇짐을 메고

항상 같은 시간이면 같은 장소에 앉아 있는 노숙자가 있다.


낮이면 마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이라도 건네기를 바라는 것인지,

그저 햇볕을 쬐는 것인지는 몰라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 듯하다.


어느 밤에 잠 못 들고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오름길을 뒷걸음으로 오르며

황홀한 야경에 푹 빠져 있을 때

인기척에 돌아보니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노숙자를 보고

심장이 열두 번도 더 들락거렸다.

그곳은 노숙자의 성역(聖域)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자신의 성역을 지키는 노숙자는

도대체 왜 따뜻한 쉼터를 거부하고 노숙의 삶을 살아가는가

지붕과 벽이 있는 공간의 따뜻한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

자신에게 내리는 엄한 형벌인 것인지,

아니면 무한한 생각을 펼치기 위해 탁 트인 곳으로 나가야 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사랑에 아픈 상처라도 있는 것인지,

이러한 궁금증이 파도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도 평화롭게 잠든 노숙자를 보면서

왜 나는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이 밤을 서성이는 것인지 의문에 잠겨 성역을 빠져나왔다.

날씨가 영하인 오늘도 노숙자의 밤은 평화롭기를.



지금은 불면증 때문에 새벽에 이슬을 맞으며 혼자 걸을 일은 없다. 며칠 전 초저녁에 묵주를 돌리며 걷다가 돌아오는 길에 노숙자가 밤을 보내는 곳으로 올라갔다. 역시나 노숙자는 전봇대 옆에 짐을 내려놓고 우둑하니 서서 하나둘씩 밝혀지는 불빛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노숙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실은 얼마 전에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이라는 책에서 청년 노숙자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다가 우리 동네 노숙자가 생각이 났다. 노숙자가 아직도 그곳에서 노숙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일부러 그 방향으로 걸었던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 사람 또한 구구절절한 개인사가 있을 것이고, 간절히 무언가를 꿈꾸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만의 꿈을 꾸더라도 너무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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