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핸드폰에서 문자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습니다. ‘무사히 살아있냐?’ 친구가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그 친구가 생각났던 터였습니다. 우리는 곧장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10년 전에 타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다른 도시로 이사 가게 되었던 것은 대형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사 가서도 두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왔기 때문에 그때마다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낮이면 커피를 마시고, 밤이면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요.
누구나 힘든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정생활에서도 그렇고, 직장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얘기를 주위 아무에게나 쉽게 털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마음에 담아두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요. 이럴 때 마음 편히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생각날 것입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나 자신의 일부분을 가리기 위해 어떠한 가면도 쓸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야 합니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온 친구가 바로 그러한 친구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성심껏 귀 기울여 주고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입니다. 둘 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셔도 수다가 90이면 술은 기껏해야 10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일어설 때면 속에 켜켜이 쌓였던 감정들이 말끔히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자면,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에 부딪쳐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 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는데 그때는 내가 힘들었고, 그래서 이래저래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털어놓고 싶은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비난 없이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귀 기울여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위에 이런 친구가 한 명씩이라도 있다면 정신의학과는 지금보다 훨씬 한가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터졌고 서로의 일상생활이 더욱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생활에 집중하느라 못 만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 나름대로 가슴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또한 그 친구는 집에서만 일하게 되었고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친구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항상 내가 궁금했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늘 내 안부가 궁금했다는 친구의 말이 그렇게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는 오래전에 운동하다 다친 허리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때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놓쳤던 것입니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하던 중에 코로나19가 발생했고, 그러면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은 수술인데 의사와의 상담에서 수술하려면 6개월 이상을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는 그렇게나 오래 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수술을 미룰 핑곗거리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친구는 앞으로 2년 안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뻔한 얘기겠지만 한참 뒷바라지해야 할 아이를 위해 자신의 치료를 2년 후로 유보한 것입니다. 지금도 통증이 도지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친구는 오만가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친구가 내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달라는 것도, 내게 어떤 해결책을 기대해서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것이니까요. 나는 그런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온 마음으로 친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통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수술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친구의 무거워진 한숨을 느끼고 친구를 웃게 하려고 나의 비루한 유머 감각을 총동원했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큰소리로 웃더군요. 내가 웃겼기 때문이라기보다 친구도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정을 넘겼습니다. 친구는 전화를 끊기 전에 겨울방학 때 내려올 테니 꼭 그때 보자고 하더군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는 허리 통증 때문에 운동도 못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시간을 내서 자주 산책할 것을 권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친구에게는 산책을 통해 몸과 마음을 환기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산책이 좋다는 것쯤은 친구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권함으로써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자주 문자로나마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
늘 내가 궁금했다는 친구의 말에 내 가슴은 오래도록 따뜻할 것 같습니다. 잘 지내, 친구야.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은 『예언자』에서 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그 친구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언제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를 찾으십시오.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