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월든

by 이광

어렸을 때 시골에 살면서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짓는 친구네가 부러웠다. 친구네 집 모내기할 때면 논에 가서 구경하다가 못줄 한 번 잡아보라는 친구 아버지 권유에 너무 기뻐서 허겁지겁 양말을 벗고 논에 들어가 못줄을 잡기도 했었다. 잠깐 못줄을 잡고 새참도 얻어먹었다. 논둑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친구 어머니께서 내오신 잔치국수를 먹었다. 내가 모를 심는 데 크게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그때 잔치국수 맛은 어찌나 그리 달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철없던 나는 친구를 한동안 부러워했다.


군대에서 대민 지원을 나가서 초여름엔 모를 심고 가을에는 벼를 베기도 했다. 하지만 농사짓는 일이 골병드는 일이라고 하시는 나이 든 농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느라 허리가 아프다 못해 감각이 없어져 버려 내 허리인지 통나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어릴 적에 친구를 부러워했던 일이 생각났다. 친구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농번기 때는 거의 매일 논이나 밭에서 일을 거들어야 했다. 고된 농사일을 그저 구경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때의 내가 그때의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편하게 살려면 시골에 가서 농사지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논농사를 짓든, 밭농사를 짓든 팔다리가 쑤시고 허리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힘들 거란 생각을 하라고도 말한다. 그저 한 번 시골에 놀러 갔다가 전원생활이 막연히 좋아 보여서 시골에 한 번 살아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골 생활과 현실로서의 시골 생활은 아마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쉽게 생각하고 시골로 갔다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주말에 내려가 체험부터 해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최근에 농촌 인구가 줄어서 없어질 위기에 처한 지역이 발표되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도시인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듣자니 농사를 짓든 아니든 많은 사람이 농촌으로 이주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농촌에 산다고 해서 꼭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귀농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깨닫고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귀농을 선택한 청년들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부디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목표를 꼭 이루어 농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농촌의 삶에 관심이 있는 도시인들을 위해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좋겠다.


언젠가 누나도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살지 않을래?”

그때 나는 누나에게 차차 생각해 보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농사를 짓지 않고도 시골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이따금 생각해 본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숲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일상을 기록한 책 <월든>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로는 180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오늘날까지도 그의 책 <월든>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소로처럼 숲 속에 오두막을 지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들어가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담백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기쁨과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숲 속에서 살겠는가’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소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항상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 것일까? 때로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편리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는 전혀 다른 재미가 있다는 것을 소로는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은 하나를 얻기 위해 애쓰며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막상 그 하나를 얻고 나면 또 다른 하나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대로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치열하게 살지라도 편리함이나 돈으로도 자신의 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사람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언하고 자신만의 월든을 선택하는 것이다.


삶에서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가치를 좇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을 소로는 <월든>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나는 숲에서 경험한 삶을 통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평범한 삶을 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것들을 잊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훨씬 더 자유로운 법칙이 주변에서, 또 우리 내면에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월든>에서 소로는 ‘삶이 제공해 주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나만의 월든에서 나다움을 정의해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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