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

by 이광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 앞에 던져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자리에서 견뎌내는 것뿐이다. 그 순간에 위로가 되는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단 한 문장이다. 그 문장을 되뇌며 오롯이 견디는 것이다. 그럴 때 주위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은 살아가는 내내 엄청난 힘이 된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우리는 시련의 터널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다. 때로는 사람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존재가 있다.


누나가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나는 일 때문에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개 산책시키는 누나를 보았다. 개 이름은 ‘고니’다. 고니는 영화 ‘타짜’에 나오는 조승우의 극 중 이름이다. 조승우처럼 멋진 배우가 되고 싶었던 조카가 개 이름을 고니라고 지었다. 벌써 고니가 누나네 가족이 된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10년 전 갑작스럽게 매형이 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매형은 떠났다. 매형을 떠나보낸 후에 남겨진 누나와 두 남매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프고도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에 남겨진 사람들의 몫을 다하기 위해 다시 삶의 생기를 되찾아야 함을 깨닫고 그 방법으로 집에 반려견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조카가 인터넷으로 서울에 있는 반려견 분양센터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자 서울에서 강아지를 고속버스로 보내왔다. 조카와 함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강아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무사히 인계받을 수 있었다. 처음 고니를 봤을 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여서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니를 처음으로 안아 보던 조카의 얼굴에는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사실 고니를 보기 전에는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기르는 것과 애들이 잘 돌볼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앞섰다. 하지만 조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자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식구에서 고니가 들어감으로써 식구가 넷으로 늘어난 것이다. 집에 고니가 들어오면서 조카들은 확연히 밝아졌으며 고니 덕분에 더 자주 웃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았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애들이 고니를 돌보는 일은 누나의 일이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누나는 힘들 때 애들과 함께해 준 고니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 가끔 누나 집에 가면 고니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걸 아는지 나를 보면 반가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니가 혼자 있는 낮 시간대에 한 번씩 짖는 것 때문에 한동안 위층에 사는 이웃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때 고니도 자기 때문인 줄 알고 있다는 듯 기운 없이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고니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학대나 다름없는 성대 제거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고니를 훈련시키는 것뿐이었다. 이제 큰 조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고, 여기에 있는 둘째도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고니를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누나의 일이 되었다. 퇴근 후에 아무리 피곤해도 누나는 고니와 산책하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누나가 고니를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면 고니 덕분에 누나가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니가 워낙 뛰는 것을 좋아해서 밖에 나오면 누나도 같이 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나는 고니를 통해 어떻게 반려견이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비록 말은 못 할지라도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고니는 어엿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지금도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그런 고니를 볼 때면 개 견(犬) 앞에 ‘짝이 되는 동무’라는 의미의 반려(伴侶)라는 말이 왜 붙었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누나와 조카들에게 힘이 되어준 고니가 무척 고맙다.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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