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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Apr 23. 2022

코끼리 똥 종이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 서점과 SNS에 서평을 올리고 있는데 어느 작가님이 내가 올린 서평을 읽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게 작가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작가님은 몇 년 전에 <나는 스리랑카 주의자입니다>라는 여행 견문록을 출간한 고선정 작가님이다. 그때 내가 갓 출간된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는데 작가님이 고맙다는 표시로 스리랑카에서 만든 수첩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수첩의 겉표지는 짙은 남색 바탕에 양철로 만든 코끼리 옆모습이 붙어있었다. 그 수첩을 처음 봤을 때 정감 있는 닥종이가 생각날 정도로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 수첩을 좋아하게 되었고 아끼게 되었다. 책상 한쪽에 올려놓고 한 번씩 종이의 질감을 느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수첩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지난여름에 자동차 문에 엄지손가락이 끼는 바람에 손톱에 검게 피멍이 들어서 병원에서 항생제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엄지손가락이 차 문에 끼인 날은 이른 아침부터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던 날이었다. 차를 운전하면서도 그 생각을 했고 걸어가면서도 그 생각을 했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그날은 날씨가 우중충하고 바람까지 세게 부는 날이었다. 차에 타기 위해 차 문을 활짝 열었는데 갑작스럽게 불어대는 강풍으로 차 문이 닫히는 바람에 차 문에 짚고 있던 손가락을 미처 빼지 못하고 그대로 끼이게 되었다. 그 순간에 내가 느꼈던 고통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난생처음 당한 일이었지만 순식간에 손톱은 검게 변했고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병원에 가게 되었다.      


엄지손톱이 빠지고 새 엄지손톱이 차오르는 데에는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글씨를 쓰는 일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엄지손가락을 굽히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엄지손가락으로 볼펜을 잡을 수가 없어서 엄지손가락을 편 채로 볼펜을 잡아야 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엄지손가락이 닿으면 울려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에 오른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간혹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엄지손가락이 스페이스 바를 칠 때가 있어서 한동안 붕대로 손가락을 감고 자판을 두드려야 했다. 

 

엄지손톱이 빠지고 새 손톱으로 완전히 대체된 후에도 펜을 잡을 때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도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펜으로 쓰는 연습을 하다 보면 엄지손가락도 점차 부드러워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글씨 쓰기를 연습하다 보니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엄지손가락을 편 상태로도 점차 안정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쓸 수 있는 붓펜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동안 아끼고 있던 코끼리가 박혀 있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적고 있다. 


그 수첩에 대해서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고선정 작가님에 따르면 그 수첩이 코끼리 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수첩에 더욱 애정이 느껴졌다. 비록 닥나무로 만든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처음에 닥종이의 질감을 느꼈던 것도 전혀 난데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수첩을 여러 번 만져보며 촉감을 느껴봤다. 그리고 고선정 작가님이 그 수첩을 쓰기에 어땠는지 궁금해했기 때문에 수첩 안팎을 찍은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코끼리 똥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많은 양을 모아야 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적지 않은 수고로움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더 애정이 갑니다. 사실 수첩이 너무 예뻐서 쓰지 않고 있다가 올해 들어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적고 있습니다. 용지는 재생용지처럼 보이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수성펜이나 볼펜, 붓펜 모두 잘 써지나 제가 엄지 손가락을 다친 후유증으로 지금은 힘 안 들이고 쓰는 붓펜으로 쓰는데 역시 잘 써집니다. 그리고 한 장씩 쉽게 뜯어져서 메모를 남기는 용도로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수첩이라 희귀하면서도 자연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듭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2.4.21.     


이 메시지를 보내고 바로 읽게 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쇠똥 종이로 된 책 그리고 손으로 하는 설거지를 신봉한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희의 인간> 중에서-   

  

그러면서 소똥으로도 종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통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나 스리랑카에는 코끼리가 많기 때문에 하루에 나오는 코끼리 똥만 하더라도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아이디어도 나오게 되었다.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코끼리 똥을 모아서 물에 담가놓았다가 섬유질만을 분리하고 갈아서 죽처럼 만든다. 여기에 폐지를 역시 죽처럼 만들어 두 가지를 적당한 비율로 배합해서 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공책이나 수첩뿐만 아니라 명함, 청첩장으로도 만들어지는 데 친환경 제품이라서 모두 인기 있다고 한다. 


코끼리 똥뿐만 아니라 소똥이나 말똥으로도 종이를 만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끼는 수첩을 코끼리 똥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본능적으로 코로 냄새를 맡아보았다. 물론 종이 냄새다. 그러면서도 다시 냄새를 맡는다. 왠지 코로 맡을 수 없는 너른 들판의 향기로운 풀 내음을 가슴으로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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