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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Apr 21. 2022

장애인에 대한 이해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차별받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장애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장애인을 접할 기회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막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장애인의 사회생활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봐도 될 것이다.  

    

 사회 복지를 공부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사회복지시설에서 현장실습을 해야 한다. 나도 한 달 동안 시설에서 현장실습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인복지 관련 시설에서 현장 실습하기를 바랐으나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 결국 실습하게 된 곳은 장애인자활센터란 곳이었다.      


 나 역시 장애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성당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장애인과 인사하는 것이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하는 전부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막상 한 달 동안 장애인들과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비장애인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장애인에게는 도전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자칫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져서 긴장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설에는 두 그룹의 장애인들을 있었다. 한 그룹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지적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직업 체험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시설에서의 활동은 유치원의 기능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 청년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날그날 시간표에 맞춰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주로 단순한 부품 조립 활동과 전문 강사들의 재능 기부로 운영되는 프로그램 활동으로 이루져 있다. 또 다른 그룹은 선천성 소아마비 때문에 하반신 장애가 있는 장애인들로서 이들은 의료기기 부품을 조립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로 지적 장애인들을 대해야 했던 나는 그들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잔뜩 예민한 상태였다. 그때 교회 목사이자 지적 장애인을 담담하는 팀장이 하는 말이 내 생각을 그 자리에서 바꿔 놓았다. 


‘너무 예민하게 장애인을 대할 필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작정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그들이 이곳에 와 있는 동안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나는 팀장의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갖고 있던 긴장감이나 장애인에게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또한 장애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기로 했다. 막연하게 장애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오히려 나와는 다른 사람임을 전제하고 장애인을 대하기 때문에 차별인 줄도 모르고 차별할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장애인들은 몸은 성인이나 지적 수준은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들은 다양한 공예 수업이나 스포츠 활동을 할 때 집중력이 높고 매우 흥미로워하며 선생님을 따라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동작을 하게 됐을 때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이 하려는 말에 끝까지 귀 기울여주고 그들의 하는 행동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격려와 칭찬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장애인,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고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한다고 생각하면 장애인을 대하는 일도 막연하게 어렵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 같다. 거기에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고려해서 옆에서 도움을 주거나 위험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아마비로 하반신 마비가 있는 장애인들은 이동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특히 우리가 난쟁이(이 표현 역시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표현임으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라고 알고 있는 왜소증 장애인은 이동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약간 돌출된 문턱을 넘으려다 발이 걸려 넘어져서 손이나 얼굴에 상처를 입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두 팔을 짚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이것이 전동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야 하고 건물이나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키가 작기 때문에 화장실 변기를 이용하는 일도 힘들 수밖에 없다. 싱크대에서 설거지할 때면 받침대에 올라가서 해야 하는 데 자칫 균형을 잃으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한 번은 처음으로 전동휠체어를 지원받은 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를 조작하는 것을 도운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휠체어로 가다 보면 가게에서 길에 내놓은 물건이나 상자들이 통로를 가로막아 휠체어가 지나가는 것을 방해했고 바닥이 고르지 않아 생긴 턱이나 파인 곳도 장애인들에게 위험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건물의 장애인 휠체어 통로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시설이 비장애인만을 염두에 둔 시설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이동 문제는 부담되고 불편한 일임이 틀림없다. 여러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법적, 행정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일반적인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비장애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생각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알 기회가 그만큼 없었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외형만 보고 그들에 대해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잘못된 인식이 늘어가게 된다. 그 예로 '장애우'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좀 더 친근하고 애정을 담아서 부르고 싶은 마음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동정 어린 시선으로 '장애우'라고 불린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차별적 표현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밖에도 장애인은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인식, 막연하게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 장애인은 항상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등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어느덧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하겠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사회적, 육체적, 심리적 욕구를 지닌 사람으로서 바라봐 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람 대 장애인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장애인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또한 개인적으로 자신이 가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차별적이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에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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