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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Apr 19. 2022

저 나방은 어디에서 왔을까

언젠가 집안의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최첨단 스텔스 비행기를 닮은 나방 한 마리가 들어와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본능적으로 서랍 속에 넣어둔 전기 모기 채를 꺼내 들고 태평스럽게 날아다니는 나방을 잡으려고 뒤쫓다가 문득 마음이 시들해져 그대로 내버려 두고 말았다. 저것도 손님이라면 손님인데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무해(無害)한 손님을 매몰차게 죽이는 것은 왠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을 연다는 것은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이므로 나방은 내 초대에 응답한 손님인 것이다.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두면 이내 나가지 않겠나 싶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건물 안에는 유해(有害)한 방사능 물질이 생기기 때문에 수시로 환기를 해야 한다는데 나방 덕분에 환기를 제대로 해볼 참으로 온 창문을 다 열어놓고 화려한 나방의 더딘 비행을 지켜보았다. 

  

야행성이라고 알고 있던 대로 나방은 움직임이 굼뜨고 단번의 비행거리가 그리 길지 못했다. 모기에 비하면 토끼와 거북이 수준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기는 워낙 재빨라서 잡기 쉽지 않다. 모기는 사람의 피부에 부지불식간에 내려앉아 피를 양껏 빨아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 움직임이 더뎌진다. 포만감에 젖어 한 곳에 내려앉아 있을 때조차도 모기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던 차에 천냥 마트에서 전기 모기 채를 보고 곧장 구입하게 되었다. 평상시 작은 곤충이나 벌레라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기처럼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것은 마음이 께름칙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잡게 된다. 그 께름칙한 마음은 연민일 수 있다. 비록 미물이지만 생명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때로는 나비나 매미 같은 곤충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삶을 조명해기도 한다.     


언젠가 ‘매미의 일생’이라는 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은 매미가 유충으로 땅속에서 7년을 견디고 땅 위로 올라와 한여름 2주간 열정적으로 울어대다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땅 위로 올라온 유충이 안전한 나무 위로 아주 위태롭게 한 걸음 한 걸음 기어 올라가 나무에 발톱을 박고 마침내 성체로 거듭나는 장면은 비장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5분도 안 되는 영상이지만 인간의 삶이나 곤충의 삶이나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그 뒤로 산을 오르다가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의 사체를 보면 ‘하얗게 불태웠다’라는 말이 떠올라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여한 또한 남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또한 주어진 삶에 대해 아무런 여한이 없도록 삶의 끝자락까지 하얗게 불태우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동문학가인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애벌레의 이야기가 나온다. 태어나자마자 줄곧 나뭇잎을 갉아먹기만 하던 호랑 애벌레는 어느 날 갉아먹는 것을 멈추고 생각한다. 

“이게 전부는 아닐 텐데. 어딘가 먹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거야.”

그래서 호랑 애벌레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길을 떠난다. 길을 가다가 하늘 높이 치솟은 수많은 애벌레 기둥을 발견한다. 그 애벌레 기둥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호랑 애벌레는 저 위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애벌레들처럼 기둥을 오르기 시작한다. 호랑 애벌레는 도중에 노랑 애벌레를 만나 기둥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땅으로 내려와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호랑 애벌레는 또다시 삶이 지루해져 노랑 애벌레를 버리고 다시 애벌레 기둥을 오르기 위해 떠난다. 버림받은 노랑 애벌레는 슬픔에 젖어 있다가 우연히 나비가 되기 위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늙은 애벌레를 보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냐고 묻는 노랑 애벌레에게 늙은 애벌레는 말한다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히 날기를 원해야 나비가 될 수 있어.”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실을 뽑아내며 고치를 만든다. 


한편 호랑 애벌레는 치열하게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으며 간신히 애벌레 기둥의 꼭대기 가까이에 이르지만, 목숨을 걸고 올라온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자기가 올라온 기둥이 수천 개의 기둥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호랑 애벌레는 충격을 받는다. 그때 눈부신 노랑나비가 날아와 슬픈 눈으로 호랑 애벌레를 바라본다.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생각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오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한다는 것과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의 도움으로 호랑나비로 거듭나게 된다. 결국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이야기 또한 앞의 '매미의 일생'만큼이나 감동적이고 우리에게 삶에 대한 교훈을 준다. 나방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그럴듯한 동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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