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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a Apr 17. 2022

개, 사람, 그리고 산책

소설 같은 일상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숨 쉬고 있는 공기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잘못된 것을 알아내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개 짖는 소리가 왜 나오는 것일까? 하여튼 갑작스러운 개 짖는 소리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는 눈을 떴다. 꿈이었다. 책상 램프에 달린 디지털시계에서 이제 막 6시가 지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웬 개가 짖는 것일까? 시골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빛의 파수꾼인 수탉도 아니고 개 울음소리라니. 아, 그건 틀린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윗동네 개가 짖으면 아랫동네 개도 짖으며 아침을 알렸다. 수탉은 그보다 이른 새벽에 이미 미러클 모닝을 알린 상태였고.      


 미러클 모닝. 나는 직업 때문에 10년 동안 매일 5시에 일어났다. 라때는 뭔가 시작하면 적어도 10년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인내심을 길렀고, 한 우물만 판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뿌듯하게 생각했고,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 스스로도 프로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다만 그 대가로 만성적인 위장병과 업무 스트레스라는 기회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요즘에도 가끔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한다. 미러클 모닝은 미러클 모닝인데 예전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미러클 모닝을 맞는다. 그때는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던 어느 청년의 강박관념에 의한 행위였다고나 할까. 이제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매 순간 행복을 찾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그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고 있다.   


 어제 읽은 책에서 새벽에 산책하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권하는 글이 있었다. 새벽에 산책하는 즐거움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새벽 공기는 낮보다 더 상쾌한 느낌이 든다. 이른 아침부터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산책 나가기 전부터 설렌다. 거기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신비스러운 새벽안개가 더해지면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 가득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Not today). 개소리 때문에 잠은 깼어도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었기 때문에 오디오북을 틀어 글을 감상하고 있을 때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평온한 아침이 날카롭고 매우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소리로 인해 쨍그랑하고 깨져버린 느낌이었다. 내 평온한 아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개 짖는 소리가 꿈속에서 재생되고 있던 에피소드를 강제로 종료해 버렸다. 개 짖는 소리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의 부수적인 소음이 아니라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투입시킴으로써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개해 나갔다. (To be continued.) 그래서 나는 제일 핫하다는 싸움 구경에 내 본능을 굴복함으로써 아파트 창문을 통해 전개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에 몰입되어 가고 있었다.      


 다소 좀 큰 애완견을 기르는 중년 여성이 새벽에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그때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인 또 다른 여성이 그들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개가 그 여성을 향해 짖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개소리에 놀란 여성은 개가 목줄을 안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개 주인에게 산책시킬 때는 개 목줄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자 개 주인은 "우리 개는 순해서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그냥 지나가려던 여성은 개 주인의 말을 듣고 그것은 개 주인 입장이고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상사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목줄을 해야 한다고 다시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여기서 개 주인은 그냥 있지 못하고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거니까 사서 걱정 말고 어서 가던 길이나 가라고 말한다. 두 여성의 오고 가는 말에 열기가 느껴졌다. 개 주인의 말을 어이없다는 듯이 듣고 있던 여성은 이미 기분이 몹시 상한 상태였다.    

  

 그 여성은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마음이 평온한 상태였고 오늘 하루는 여느 날보다 더 행복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들며 사납게 짖던 개가 자신의 평화롭던 아침을 날려버렸다. 그 여성은 자신의 평화로운 아침을 망쳐버린 개와 배려심 없는 주인에게 몹시 화가 났다. 마침내 개 주인에게 말 폭탄을 던진다.

 “개 산책시킬 때 목줄은 필수예요. 신고하면 걸리는 거 아시죠?”

 이 말이 끝나자마자 개 주인은 흥분해서 급기야 반말과 악이 바친 소리로 “그래, 신고해라. 참 별나다. 별나. 뭐, 저런 게 다 있냐.”라고 말하며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관객몰이에 들어갔다. 소란스러운 소리로 순식간에 아파트 주민들이 베란다에 나와 관객이 됨으로써 부름에 응답했다.

 “그럼, 신고할게요. 그리고 반말은 하지 마세요.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하며 여성은 일단 아파트 건물 입구 쪽으로 퇴장했다. 


 그 여성이 진짜 신고할 것인지 보고 있는 누군가는 궁금했을 것이다. 아파트 건물로 들어간 그 여성이 신고를 할 건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연극 같은 상황이 종료될 건지 궁금해질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개 주인은 더욱 큰 목소리로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그 모습은 마치 레슬링이나 킥복싱 경기장 장내 아나운서처럼 보였다. 이미 여성은 들어가 버렸지만, 개 주인은 도망가던 도마뱀의 잘린 꼬리가 남아있기나 한 것처럼 계속해서 손가락질을 하며 열을 내고 있었다. 한참 개 주인은 혼자 원맨쇼를 펼쳤지만, 구경꾼들은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둘씩 베란다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구경꾼이 점차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개 주인의 목소리는 낮아졌고 품에 안고 있던 개에게 입을 맞추며 마치 '세상으로부터 너를 지켜줄 테니, 아무런 걱정도 할 것 없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세상살이가 만만치가 않음을 다시 한번 더 일깨우고 앞으로 주인인 자신의 말을 더 잘 들을 것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By the way) 저 개는 왜 갑자기 그 여성이 지나갈 때 달려들며 짖어 댔단 말인가. 사납게 짖었던 걸로 보아 환영의 의도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개들은 냄새에 민감하다. 혹시 개가 그 여성에게서 향수 같은 특정한 냄새를 맡고 짖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여성으로부터 좋지 않은 대우를 받은 적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여하튼 개는 도대체 왜 그 여성에게 짖었던 말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여성이나 개나 개 주인이나 동네 주민들이나 평화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개는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주지 못한다.      


 나도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아침에 해야 하는 일, 이를테면 침대 정리, 방 청소, 책상 정리, 화초에 물 주기 등의 소소한 집안일을 했다. 거실에 놓인 TV를 켜서 아침 뉴스를 들으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보통의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밖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혹시 진짜 신고한 건가? 어, 진짜 했나 보네.' 

 스스로 질문과 답을 해가며 다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 이제 방금 제2막이 오른 것이었다. 2막에서는 1막보다 등장인물이 늘어났다. 갈등 관계인 두 여성 말고도, 경찰 두 명과 아파트 경비원 한 명, 대여섯 명의 주민들이 이미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경찰차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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