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항상 사랑, 평화, 행복으로만 가득하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싹수가 노랗기도 전, 진즉에 알게 된다. 불행, 갈등, 욕심, 미움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에 너 나 할 것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살다 보면 그냥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 줬으면 좋으련만, 불행, 갈등, 욕심, 미움은 우리에게 기어코 아는 체를 하고야 만다. 이걸 공평하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봐야 할까. 그들이 날 찾아오면 한번 넘어지는 것 말고 별다른 수 없다. 어떨 때는 넘어지자마자 잽싸게 일어나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살짝만 스쳐도 못 일어나고 아예 방향까지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꼭 늪에 빠진 것처럼. 바둥거릴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급기야 “이렇게 나는 끝나는 건가 보다.”며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진짜 되돌이킬 수 없는 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그냥 이렇게 끝나버리면 좋겠다고 자포자기한 상태에 있을 때,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그래, 이건 아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그래, 다시 한번 힘을 내자. 살아보자. 나는 겨우 한번 넘어진 것뿐이다. 넘어지면 어때 다시 털고 일어나면 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나는 끝까지 살아서 밤하늘의 별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자. 잘 들어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그래, 일어나자. 나는 단지 뭐에 홀린 것뿐이었다. 나는 두 번 다시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 파이팅!”을 외치며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람은 한순간에 어떻게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누군가가 건네는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받은 만큼이라도 타인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가 생긴 것이다. 따듯한 말 한마디의 부채. 그래서 주위 사람에게 말 한마디를 건네더라도 진심을 전하자고 다짐한다. 설령 그 사람에게 위로나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상처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하루 중 차 한 잔 마실 때 한 사람을 떠올려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전하려고 한다. 무심한 듯 “차 마시다가 생각나서 연락했어. 요즘 어떻게 지내?” 바쁘더라도 잠깐이나마 목소리 들으며 안부를 묻고 나면 마음이 이렇게 말한다. “역시 전화하길 잘했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다 이렇게 서로 챙기고 마음을 전하며 사는 거지.”
오늘은 쌍둥이 손주들 보느라 개인 생활이라고는 아예 없이 사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운 날씨에 나가지도 못하고 에어컨 바람은 시원하겠지만 날뛰는 애 둘을 돌보고 있자면 에어컨 바람으로 등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는 없을 것이다. 잠깐 누나 이야기 들어주며 공감하고 누나가 건강해야 애들도 잘 볼 수 있으니까 누나 건강 먼저 챙기라고 당부도 하면서 기분 좋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굳이 다른 말을 안 하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만으로도 의미 있는 통화가 되리라고 믿는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