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동안 나의 이동 궤적(軌跡)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행정구역 상의 구(區)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내가 이렇게 작은 생활 반경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예전과 달리 나의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한평생 섬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한 할머니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무리 그 섬이 천해의 절경을 가지고 있고 먹거리가 풍부하다 하더라도 한평생을 섬에서만 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단언했다. 아마 답답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가 생필품을 사고 일명 뽀글이 파마를 하러 가는 곳은 인근에 있는 군 단위 섬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한평생 섬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할머니 스스로도 섬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작년에 코로나 상황에서 가족의 장례를 치르러 제주도에 한동안 머물렀다. 한여름이라 몹시 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는 날 하필 강력한 태풍이 제주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장례가 끝났을 때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예약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서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점점 다가오는 태풍으로 인해 결항된 상태였다. 태풍이 제주도를 지나 부산 앞바다로 향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잠시 머물면서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부산과 울산이었다. 그때 상황에서는 태풍의 경로에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못 가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공항에 머물다가 밤이 되면 인근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이나 대구는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다는 안내방송을 접하게 되었다. 가족들 간에 의논한 끝에 제주도에서 일단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다. 다행히 대구행 비행기 표 구입에 성공했다.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도 한참 동안 대기해야 했다. 그러다가 비행기 이륙 허가가 떨어져 가까스로 제주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대구 공항에서 비바람을 뚫고 KTX를 탔고 무사히 부산과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제주도는 여행으로 오는 건 괜찮지만 사는 건 좀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제주도를 벗어나는 경로가 주로 항공편인데, 제주도는 섬이라 날씨가 정말 스펙터클 하다. 그로 인해 항공기 지연과 결항이 빈번하다.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몇 개월 동안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답답하지만 하는 일도 그렇고 집안에 어른도 계셔서 방역에 무척 신경 써야 하는 처지다. 내가 확진되는 건 괜찮아도 나로 인해 나이 드신 분이 전염되어 위중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난 아마 견디기 힘들 것이다. 직업상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또한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이 우선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이동을 최소화했다. 살다 보니 이렇게도 작은 반경 안에서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한편으로 어떤 심리학자의 사람 심리를 연구하는 어느 실험에서 내가 피실험자가 된 기분이다. 팬데믹의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 유형을 관찰하는 데 목적이 있는 실험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조금은 답답하지만 참아내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고 의미를 더하고 가치를 더해 가며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애쓰며 하루를 살아 낸 나를 안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은 더 멋지다. 오늘 행복했던 순간들이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될 거라 믿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