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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31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9월 넷째 주 월요일 아침 덤프트럭 세 대가 굉음과 함께 먼지를 뿜으며 펜션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지자체 연수원 개축과 맞물려 운 좋게 무료로 얻은 잔디를 실은 덤프트럭들이었다. 잔디는 운동장 곳곳에 부려졌고 펜션에서 고용한 조경회사 인력들이 운동장 앞쪽부터 잔디를 입히기 시작했다. 작업은 일주일 내에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가끔 미자와 선영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가 작업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운동장 한쪽 놀이기구가 있는 공간은 잔디를 입히지 않고 지금 그대로 둘 예정이다. 펜션 운영을 북스테이로 바꾼 이후로 어린이 손님이 거의 없어서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어린이는 없다. 그렇다고 놀이기구를 없앨 생각은 아니다. 이용하는 사람은 없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네를 타거나 미끄럼틀에 오르는 어른들이 있다. 미자는 잔디 공사가 끝나고 모든 놀이기구를 노란색으로 칠할 생각이다. 그것은 노란색으로 칠하면 동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설치미술작품 같을 거라는 선영의 아이디어였다.

 오전 열 시에는 펜션 식구들이 콘서트 관련 회의를 위해 휴게실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결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10월 첫째 주에 열릴 세 번째 콘서트까지는 지금처럼 실내에서 진행하고, 10월 셋째 주에 열릴 네 번째 콘서트는 관객을 100명으로 늘려 운동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또 가을 콘서트인 만큼 가을과 잘 어울리는 코너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시 낭송을 추가하기로 했다. 낭송은 목소리가 맑고 단아한 미자가 하기로 했고, 준석이 기타로 배경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겨울철인 12월에서 내년 2월까지 3개월간은 거북이 콘서트를 쉬기로 했다.

 오후에는 공방 사장들이 추가로 풍경과 독서대를 가져와 텅 빈 굿즈 판매대에 진열했다. 주말 콘서트 때 준비된 풍경과 독서대가 다 팔린 상태였다. 책갈피와 에코백도 많이 팔렸지만, 처음에 대량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아직 재고가 넉넉했다. 재하가 밖에 일 보러 나간 김에 두 공방에 들러 물품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물품이 다 팔렸다는 소식을 들은 공방 사장들은 기분이 좋아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며 물품을 직접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방에서 제작한 물품을 몇몇 기념품 가게에 납품하고 있지만 어쩌다가 하나씩 나갈 뿐이라 이렇게 빠른 시간에 물품이 다 팔렸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공방 사장들은 판매대에 물품을 진열하면서도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방 사장들이 진열한 물품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래나 올빼미가 달린 풍경에 더해 거북이가 달린 풍경이 추가되었고, 독서대도 위쪽 중앙에 거북이 인장이 찍혔다. 공방 사장들이 거북이 펜션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각자의 물품에 변화를 준 것이다. 미자와 선영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진열된 새로운 물품을 보고 몹시 감동했다. 다른 식구들도 거북이가 들어간 물품을 맘에 들어 했다. 진열을 마친 공방 사장들은 기분이라며 펜션 식구들에게 시원한 커피 한 잔씩을 돌리겠다고 서로 자기 돈으로 계산해달라고 실랑이했다. 이 장면을 본 미자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줬으니 오히려 우리가 대접해야 한다며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 의도와 다르게 공짜 커피를 마시게 된 두 사람은 서가에서 자신들이 읽을 신간 도서 한 권씩을 사서 기분 좋게 돌아갔다. 


 그날 오후 재하가 서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을 때 선영이 출판사 문을 열고 재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글은 잘 써져요?”

 선영의 목소리를 듣고 재하는 노트북 너머로 선영을 바라봤다.

 “퇴고할 때면 왜 이렇게 고민되는 문장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선영이 재하의 앞자리에 앉으며 “그래서 퇴로 할지 고를 할지 고민한다고 해서 퇴고잖아요. 원래 퇴고할 때가 되면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에요. 그 순간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수밖에요.”

 “아 참, 선영 씨 작업하는 책은 언제쯤 나올 예정이에요?”
 “10월 첫 주에 인쇄 들어가면 책을 둘째 주에는 받아볼 수 있을 거예요.”
 “도서 출판 거북이 이름으로 나오는 첫 책이라, 이야, 말만 들어도 설레네요.”

 “저도 그래요. 그동안 책을 많이 내봤지만, 혼자 시작한 출판사 이름으로 내는 책이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신생 출판사인데도 저를 믿고 맡겨준 작가님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두고 봐요, 잘 될 테니까요. ”

 “아직 책도 안 나왔는데 재하 씨가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난 선영 씨를 믿으니까요.”

 “예? 저를요?”

 “그럼요. 아무리 작가가 믿고 맡긴 원고라고 해도 선영 씨가 아무 원고나 책을 낼 리가 없잖아요. 저는 선영 씨의 안목을 믿어요.”

 “와, 왠지 어깨에 뽕이 팍팍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데요. 하하하. 그래도 그 말 들으니까, 걱정은 안 되네요.” 

 “다 잘될 거예요.”
 “사실 재하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요.”
 “부탁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말만 해요.”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콘서트 이야기 손님으로 김달 작가를 초대했으면 해서요.”

 “김달 작가를요?”

 “네, 재하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찬성이에요. 최근에 드라마나 영화로 대박 난 몇몇 웹소설 때문에 웹소설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저도 대박 난 영화 관련 기사를 읽는데 김달 작가가 떠오르더라고요. 다행히 재하 씨가 김달 작가랑 계속 연락하고 있으니까 재하 씨가 부탁하면 어떨까 해서요. 김달 작가는 지금 서울에 있나요?”

 “며칠 전에 제주도에 간다고 하던데, 연락 한 번 해볼까요? 콘서트는 아직 2주 남았으니까요.”

 “그러면 재하 씨가 김달 작가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10월 첫째 주가 안 되면 셋째 주도 괜찮으니까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럴게 아니라 제가 지금 연락해 보죠, 뭐.”

 재하는 곧장 노트북 옆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들어 김달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은 가는데 받지는 않았다. 이어서 재하는 김달에게 보낼 문자를 소리 내서 읽어가며 입력했다.

 “여기는 거북이 펜션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재하는 입력한 문자를 다시 읽은 뒤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보냈으니까 확인하면 연락할 거예요. 나중에 김달 작가랑 통화되면, 선영 씨에게 알려줄게요.”

 “아, 고마워요, 재하 씨. 재하 씨가 있어서 제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한 식구끼리 고맙긴요. 헤헤.”

 “저기…….”
  선영이 더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였다. 

 “말이 나온 김에 재하 씨도 이야기 손님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재하 씨 생각은 어때요?”

 “제가요?”

 “네, 재하 씨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꾸준히 강연도 나가고 있으니까 이야기 손님으로 재하 씨만큼 적합한 사람도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좀 뜻밖이라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요즘에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재하 씨 이야기를 들으면 일상에서 자신이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고 사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지금 대답 안 해도 되니까 시간을 갖고 잘 생각해 보세요.”
 “아,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생각해 볼게요.”

 “재하 씨 이야기를 저한테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하면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고 알려주세요.”
 “아, 그럴게요.”

 재하는 말은 그렇게 했어도 생각을 오래 할 것도 없이 자신이 선영의 부탁을 받아들일 거란 걸 안다. 더구나 10월이면 퇴고를 마무리 짓고 원고를 선영에게 넘긴 상태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 터였다. 재하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워서 피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과 치러야 할 싸움을 은근히 즐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싸움에 이력이 붙었다는 증거였다. 

 잠시 뒤 선영이 사무실로 돌아가고 문자 알림이 울렸다. 선영이 보낸 문자였다.   

   

 -여기는 거북이 펜션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조금 전에 자기가 김달 작가에게 보낸 문자 그대로였다. 문자를 읽는 재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날 저녁에 재하가 보낸 문자를 확인한 김달 작가가 재하에게 전화했다. 김달은 재하가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설마 콘서트 때 이야기 손님 하라는 소리는 아니죠?” 하고 물었다. 

 “왜 아니겠어요? 요즘에 다시 웹소설이 주목받는 추세라 작가님에게 부탁하기로 한 거예요.”

 “저보다 차라리 작가님이 더 낫지 않을까요. 작가님이 낸 책 두 권 다 베스트셀러잖아요. 안 그래요?”

 “아마 저도 하게 될 것 같아요.”
 “하면 하는 거지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은 또 뭐예요?”

 “아, 저도 하기는 하는데, 다만 작가님이 언제 하겠다고 하느냐에 따라 제 순서가 달라진다는 말이에요. 작가님이 첫째 주 콘서트에 하겠다고 하면 제가 셋째 주 콘서트에 하게 되고, 작가님이 셋째 주에 하겠다고 하면 제가 첫째 주에 하게 되겠죠.”

 “그럼, 이러나저러나 한번은 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오늘 오전에 두 번째 콘서트 영상도 유튜브에 올렸으니까 한번 보시고 하는 쪽으로 생각해 보세요.”

 “사실 지난 콘서트 영상을 보고 저도 한 번 나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렇다고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고요. 그저 제가 제안해서 시작한 콘서트니까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뭐, 그런 거죠.”
 “그럼, 잘됐네요. 작가님 때문에 시작한 행사니까 작가님이 책임지세요.”
 “앞으로는 제안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네요. 제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김달이 허허 웃었다. 

 “작가님은 웹소설 작가로 성공한 분이니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영상 보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 보시고 가능한 한 빨리 알려주세요. 아, 첫째 주에 하실 건지 셋째 주에 하실 건지도요.?”

 “알았어요. 그럼 생각해 보고 연락할게요. 그런데 하게 돼도 셋째 주에는 안 돼요. 제가 그때는 오랜만에 해외로 가족 여행을 가거든요.”
 “잘 생각하셨네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가족끼리 여행 가서 추억도 쌓고 오면 좋죠.”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이번 아니면 또 언제 가겠나 싶기도 하고요.”

 “잘하셨어요. 그럼, 작가님은 하게 되면 첫째 주에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그래요. 또 연락할게요.”


 이 소식을 선영에게 알리자, 선영은 무척 기뻐했다. 김달이 반승낙한 것도 기쁘지만 재하가 이야기 손님으로 나서겠다고 해서 더 기뻤다. 기분 같아서는 재하를 안아라도 주고 싶었다. 

 다음 날 김달은 재하에게 전화해 자신은 ‘웹소설의 세계’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영은 직접 김달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김달은 이번 기회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재하도 두 번째 책 제목인 『심리학을 알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로 이야기 제목을 정해 선영에게 알렸다.


 며칠 후 재하가 유튜브에 올린 두 번째 콘서트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구독자가 이천 명이 넘은 걸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하가 농담 삼아 했던 말대로 된 것이었다. 재하는 가장 먼저 출판사 사무실로 달려가 선영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선영은 너무 좋아서 재하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웃고 있던 재하는 그 순간 얼음처럼 굳어졌다. 선영은 아 차! 싶어 곧장 재하에게서 떨어졌는데 양 볼이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선영과 재하는 서로 어색하게 웃었고 그때 손님이 문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본 재하가 “찾는 책 있으세요?”라고 말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선영은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의 열기를 식혔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기쁜 소식이라고 해도 왜 자기가 재하를 끌어안아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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