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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 Oct 01. 2024

제30화 두 번째 거북이 콘서트

 두 번째 콘서트는 미리 오십 명 한정으로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뒤늦게 의자를 나르는 일은 없었다. 소셜미디어 계정에 예약이 마감됐다는 공지를 보고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내용의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음 콘서트 예약은 언제부터 하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일찍이 자리를 채운 관객들은 교실 앞쪽에 붙은 플래카드를 보면서 콘서트 시작을 기다렸다.     


  책과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거북이 콘서트     


  ∙ 오늘의 이야기 : 독립서점과 독립출판 운영자의 일상

  ∙ 이야기 손님 : 최수창(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 운영자, 전직 출판사 편집자)

  ∙ 음악 손님 : 신준석(기타), 강미자(기타), 이환(오카리나)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앞둔 슬기는 복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서 소셜미디어에 올릴 짧은 영상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하도 미리 디지털카메라를 설치하고 슬기 옆에서 교실 앞에 서 있는 선영을 바라봤다. 선영은 하늘색 무지 반소매 셔츠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치마 차림이었다. 선영이 이곳에 내려와 치마를 입은 건 처음이었다. 

 점심 식사 후 옷을 갈아입고 온 선영이 재하에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재하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너무 잘 어울렸을 뿐 아니라 화사하게 웃는 선영이 더욱 예뻐서였다. 

 “재하 씨 표정을 보니 영 아닌가 봐요.”

 “예뻐요, 예뻐.”

 재하는 선영의 말에 당황한 나머지 입에서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재하는 아 차! 싶어 다시 말을 이었다. 

 “옷이 참 예뻐요. 선영 씨랑 잘 어울려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치마를 잘 안 입다가 입으니까 조금 어색했는데 재하 씨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돼요.”

 선영은 재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런 선영을 보고 재하도 빙그레 웃었다. 

 재하는 그 생각을 하면서 교실 앞에서 수창과 대화를 나누는 선영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작은 움직임에도 하늘거리는 선영의 치맛자락이 자꾸 재하의 마음을 춤추게 했다.

 “선영 언니 참 예쁘죠?”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던 슬기가 선영을 보고 있는 재하에게 하는 말이었다. 

 “예?”

 재하는 슬기의 말에 놀라 재빠르게 선영에게서 시선을 거둬 슬기를 바라봤다.

 “선영 언니는 외모면 외모, 일이면 일,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게요.”

 슬기는 재하의 말에 씩 웃더니 “콘서트가 더 알려지면 선영 언니한테 관심 갖는 사람들도 많아지겠죠?” 하고 말했다. 슬기는 재하가 선영에게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라고 있었다.

 “글쎄요.”

 재하는 슬기의 마음을 알면서도 선영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란 말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졌다. 눈을 돌려 선영을 바라보니 선영은 앞줄에 앉아 있는 관객과 환하게 웃으며 대화 중이었다. 재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선영의 소개를 받고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수창이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그는 여전히 들떠 보였으나 의외로 말투는 차분했다.

 “반갑습니다. 방금 소개받은 최수창입니다. 저를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드디어 나의 때가 왔구나, 하고요.”

 앞쪽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농담입니다. 제가 기획하고 작업한 독립출판물들이 이제 겨우 안타를 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독립서점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꾸준히 한 결과 이제 겨우 월세 걱정 안 할 정도이고요. 아직도 갈 길이 멀죠. 그런데도 이야기 손님으로 나오겠다고 한 건 나다운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 자신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제가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수창의 말을 듣던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출판사와 달리 독립출판사는 부족한 게 많습니다. 돈도 그렇고, 인력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책에 관한 모든 작업을 운영자가 직접 챙겨야 합니다. 그 점은 독립출판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건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운영자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건 굉장히 멋지고 근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그런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처럼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가족 중 누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사를 해보겠다고 한다면 나는 찬성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손을 든 사람은 서너 사람뿐이었다. 

 “그러실 겁니다. 다른 사람이 그러겠다고 하면,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내 가족 중 누가 그러겠다고 하면 그냥 편하게 회사 다니면 되지 굳이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한다면서 반대하기 십상이죠.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제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회사 그만두고 독립서점 하면서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싶다고 할 때 제 아내가 그러더군요. 자기 월급으로 생활은 어떻게든 할 테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요. 그때 아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실 아내도 여기 오고 싶어 했는데 제가 혼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울컥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수창의 목소리가 갈라지자, 몇몇 여성들은 금세 눈이 촉촉해졌다. 수창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대개 소설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지금까지와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저는 MBTI에서 E 성향입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그래서 제가 독립서점과 독립출판 일을 하게 됐지 싶습니다. 흔히들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을 한다고 하면 혼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독립이라는 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일은 사람 만날 일이 많습니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출간하기까지는 대부분 혼자 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고 나면 책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에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야 하고 발품도 팔아야 합니다. 전국에서 열리는 북페어를 찾아다니며 책을 홍보하기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농담으로 보부상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 웃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일하고 싶어서 독립출판에 발을 디딘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얼마 못 가서 폐업하고 맙니다. 또 돈을 많이 버는 분들도 있지만 극히 소수입니다. 저처럼 독립서점을 병행하는 사람 중에는 가게 월세 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분들이 여럿입니다. 그래서 몇 년간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결국 문을 닫는 사람도 많지요. 

 요즘에 독립출판사 운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힘 빠지는 말을 늘어놓을까요. 그건 독립서점이나 독립출판사 운영이 막연히 낭만적일 것 같아서 뛰어들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자기다운 삶을 위해서는 도전 정신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내심과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얼마 못 가서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인내심과 끈기는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장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잘 알아보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일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즐길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관객들이 수창의 말에 공감을 표하며 박수를 쳤다. 수창은 묵례로 답하고 박수 소리가 끝나자,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제 일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30분간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실질적인 업무와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전자책으로 많은 돈을 번 사례를 들면서 수창은 어떤지 묻기도 했다. 수창은 때로는 유머를 썩어가며 때로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질문에 답했다. 

 수창이 끝마칠 시간이라고 말하자, 몇몇 사람들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며 몹시 아쉬워했다. 관객들도 수창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게 많았겠지만, 수창 자신에게도 고무적인 시간이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이 일을 꾸준히 성장시켜서 같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수창은 박수를 받으며 교실을 나올 때 마음이 뭉클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대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내 현정이 몹시 보고 싶었다. 수창은 복도로 나와 재하 옆에 서서 기타 연주자를 소개하는 선영을 바라봤다. 재하가 수창에게 좋았다면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전 콘서트 때처럼 준석이 기타를 연주할 때는 관객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미자가 연주할 때는 조용한 가운데 미자의 노래를 감상했다. 이어서 미자의 앵콜 연주도 이어졌다. 

 미자의 연주가 끝나고 선영이 오카리나 연주자 이환을 소개했다. 관객들 대부분 오카리나 연주가 생소했다. 이환은 관객들에게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곧장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의 메인 테마곡이었다. 듣고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걷는 여행자가 생각났다. 관객들은 이환의 연주 앞부분을 듣고 금세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몇몇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리듬을 탔다. 그들에게는 텔레비전에서 짧게만 들었던 곡을 온전하게 들을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첫 곡 연주가 끝나자, 선영이 이환에게 다가갔다. 선영은 시작 전에 미리 이환에게 질문할 내용을 알려줬다. 선영이 “이환 씨의 직업은 태권도 사범입니다.”라고 하자, 관객들은 전혀 예상 못 했다면서 웅성거렸다. 그때 이환이 “앗!” 하는 기합과 함께 오른발을 옆으로 높이 들어올리더니 거듭 발차기를 시범 보였다. 키가 180이 넘는 그의 긴 다리가 천장에 가까워진 채 멈춰있는 모습을 본 관객들 사이에 와! 하는 감탄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이환은 자세를 바로 하고 절도있게 인사했다. 이환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본 선영이 이환에게 즉흥적으로 질문했다. 

 “혹시 여자친구가 있나요?”

 “네?”

 이환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선영을 바라봤다. 선영은 생긋 웃으며 “이환 씨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선영이 관객들을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궁금해! 궁금해!”를 외쳤다. 복도에 있던 재하와 수창은 그 상황이 무척 재미있어 실실 웃으며 지켜봤다. 준석도 슬기와 나란히 앉아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그 장면을 즐겼다. 

 “여자친구는 없습니다.”

 이환이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때 누군가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하고 말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자는 준석이었다. 

 “아, 질문이 들어왔으니까 대답하셔야겠네요. 이환 씨의 이상형은요?”

 “지금까지 딱히 이상형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 이상형이 생겼어요.”

 “오, 그래요? 잘됐네요. 그럼 한 번 들어볼까요?”

 “제 이상형은 바로……,” 이환은 말을 멈추고 짠! 하듯 양손으로 선영을 가리켰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손뼉을 쳤다. 선영은 아침에 자기와 재하를 보고 했던 이환의 말이 생각나 당황하지 않고 “저요?” 했다. 당황한 사람은 재하였다. 이환이 선영을 가리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이환이 인상이 굳어진 재하를 보고는 “아, 오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 정확히 말하면 닮고 싶은 커플이 생겼다고 해야겠네요. 저도 여자친구가 생기면 저래야지 하는 커플을 오늘 아침에 만났거든요.”

 그제야 재하는 이환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 말이었군요. 아무튼 이환 씨는 여자친구가 없다고 하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아니면 체육관에서 이환 씨에게 태권도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러면 지금부터는 원래 묻고 싶었던 질문인데요. 먼저 오카리나 연주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물어도 될까요?”

 “네, 아버지가 학교 음악 선생님이셨는데, 살면서 악기 하나는 연주하면 좋을 거라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같은 악기를 접하게 하셨어요. 저도 악기 연주하는 걸 좋아했었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편찮아지셔서 시골로 이사 오게 됐어요. 그때는 아버지가 큰 수술을 여러 번 받고 가정 형편도 안 좋아진 상태라 악기를 하나도 가져올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장에 가셨던 어머니께서 이거라도 불어보라고 오카리나를 하나 사주시더군요. 그때부터 아버지가 오카리나 부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그러면서 아버지는 기타를 연주하고 저는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게 취미가 됐어요. 대학 때는 다시 도시로 가서 지냈는데, 시골에서 보낸 추억 때문인지 오카리나를 멀리할 수가 없더군요. 제가 작곡한 곡을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오카리나 연주를 하고 있어요.”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러면 지금부터는 이환 씨가 직접 작곡한 두 곡을 연달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환은 첫 번째 곡 ‘유성’을 잔잔한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들어보라고 했고, 두 번째 곡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제목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상상하며 들어보라고 주문했다. 첫 번째 곡은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두 번째 곡은 경쾌한 리듬에 절로 흥이 나는 곡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수창과 이환은 저마다 서가와 카페에서 바빠진 펜션 식구들을 대신해 콘서트가 열린 명상 교실을 정리했다. 나중에 두 사람은 펜션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콘서트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후 아쉬운 마음으로 펜션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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