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운동장에 잔디를 입히는 작업이 끝나고 주말을 하루 앞둔 오늘은 작업자 네 명이 운동장에 긴 호스를 늘어뜨리고 잔디에 물을 뿌린다. 잔디가 깔리지 않은 운동장 한쪽에서는 미자와 재하 그리고 준석이 놀이기구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다. 미자는 정글짐 아랫부분을, 재하와 준석은 각자 A형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윗부분을 칠하는 중이다. 정글짐 옆에 있는 철봉과 그네와 미끄럼틀은 이미 노랗게 변했다.
그때 양손에 음료 캐리어를 든 선영이 잔디에 물을 뿌리는 작업자들에게 다가가 음료 한 잔씩을 건넨다. 그런 다음 미자 일행이 페인트 작업하는 곳으로 다가온다.
“노란색으로 칠하니까 눈에 확 띄고 예쁜데요. 더운데 이것 좀 마시고 하세요.”
“그렇죠? 다 칠하고 슬기한테 드론으로 촬영해 보자고 해야겠어요.”
준석이 사다리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그러면 숙박 앱이나 소셜미디어에 올려진 영상을 새로 찍은 영상으로 바꾸면 되겠다. 근데 제수씨 몸이 무거울 텐데 무리하는 거 아니냐?”
재하도 사다리에서 내려오며 준석에게 말했다.
“형도 참, 드론이 위로 올라가서 찍는 거지, 슬기가 올라가서 찍는 것도 아닌데요, 뭘.”
준석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준석이가 은근슬쩍 재밌다니까.”
미자가 선영이 건네는 컵을 받으며 말했다. 선영이 웃으면서 재하와 준석에게도 컵 하나씩을 건넸다.
“근데 누나, 이거 뭐예요? 커피는 아닌 것 같은데…….”
준석이 빨대가 꼽히지 않은 뚜껑을 열면서 물었다.
“고모가 미숫가루를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셨길래 한 잔씩 마셔보라고 가져왔어.”
“아, 시원해서 좋다. 너랑 슬기도 한 잔씩 마시지 그래.”
미자가 한 모금 마신 후 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저희는 컵에 따르면서 한잔씩 마셨어요. 시원하고 맛있던데요. 그렇죠, 재하 씨?”
“맛있어요. 미숫가루를 타 마실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요.”
“저도요. 이따 들어가서 한 잔 더 마셔야겠어요.”
준석이 빈 컵을 선영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 냉장고에 있으니까, 나중에 챙겨 마셔.”
“네, 누나.”
“아, 깜빡할 뻔했다. 고모, 조금 전에 진보라 씨한테 전화 왔어요.”
“어? 영화배우?”
“네.”
“그래, 바쁜 사람이 무슨 일로?”
“월요일에 와서 이삼일 있다가 가고 싶은데 숙박 앱으로 예약해야 하냐고요.”
“예약은 무슨, 가족실을 쓰면 된다고 하지 그랬어.”
“안 그래도 그렇게 말했어요. 지난번에 여기 오고 싶으면 예약하지 말고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잖아요.”
“잘했다. 근데 이번에 어떻게 시간이 났나 보네.”
“지난번에 촬영했던 거 보충 촬영이 있나 봐요.”
“이야, 드디어 진보라 씨를 실물로 보겠네요.” 재하가 반색하며 말했다. “김달 작가가 진보라 씨 엄청 팬이라고 하던데, 이 소식을 들으면 부러워하겠어요.”
“3일간 있을 거라고 하셨으니까 김달 작가님하고는 마주칠 일이 없네요. 김달 작가님은 콘서트 당일에 올 거라고 한 것 같은데, 맞죠, 재하 씨?”
“그렇겠네요. 토요일 정오 때 도착한다고 했으니까요. 많이 아쉬워하겠어요.”
“그러면 우리가 진보라 씨 있는 동안에 불편하지 않게 신경 좀 써야겠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에요, 고모.”
“식사는 어떤 메뉴로 준비하면 좋을까요?”
준석이 미자와 선영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특별히 준비할 건 없고 지금 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
미자가 준석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고모랑 같은 생각이야. 지금 음식도 훌륭해.”
선영이 준석을 보며 엄지척했다. 그러자 준석이 이를 드러내더니 “아, 그래요?” 하며 히죽였다.
“이야 준석이 칭찬받아서 좋겠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 하고 요리 배우러 다닌다고 작은아버지한테 그렇게 혼나더니 이렇게 인정받는 날이 오는구나.”
재하가 준석의 어깨를 밀치며 말하자 준석이 “그러게요, 형.” 하며 배시시 웃었다.
월요일 오후 늦게 검은색 밴 한 대가 펜션 정문에서 여성 한 사람과 큼지막한 캐리어 하나를 내려주고 그대로 돌아갔다. 진보라였다. 그 시간에는 카페나 책방을 방문한 손님들이 다 떠난 시간이라 북스테이 손님 몇 명을 제외하고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보라는 캐리어를 끌고 가다가 운동장 한쪽에 노랗게 칠해진 놀이기구가 한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다. 놀이기구 말고도 뭔가 변한 것 같았다. 잔디밭으로 변한 운동장도 지난번에도 이랬나 하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선영이 종종걸음으로 보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 선영 씨, 어떻게 알고 나왔어요?”
“오실 때가 됐다 싶어서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어요.”
“안 그래도 되는데, 괜히 나 때문에 일도 못 했겠어요.”
“제가 좋아서 그런 건데요, 뭐.”
“다들 잘 지냈죠?”
“그럼요. 다들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전에도 저 놀이기구들이 노란색이었던가요?”
보라가 손으로 운동장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노란 놀이기구들을 가리켰다.
“아, 이번에 운동장에 잔디 입히면서 칠한 거예요.”
“어쩐지 놀이기구도 그렇고 잔디도 생소하다 했어요. 이제 잔디밭으로 변해서 여기가 예전에 학교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대로 둘 생각이었는데 야외에서 콘서트 하기엔 잔디밭이 더 좋을 것 같더라고요.”
“콘서트요? 여기서 콘서트도 해요?”
“아, 어떻게 하다 보니 9월부터 하게 됐어요. 유튜브에 콘서트 영상 올려져 있으니까,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이야, 유튜브도 해요?”
“좋은 이웃을 둔 덕에 그렇게 됐어요.”
“그 이웃 나도 한번 보고 싶네요.”
“나중에 보시게 될 거예요. 먼저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럼 그럴까요.”
선영이 보라의 캐리어를 끌고 보라가 머물 가족실로 향했다. 가족실은 별관에서 가장 가까운 본관 끝 객실이었다.
보라는 한 시간 정도 방에서 쉬다가 수수한 차림으로 자기가 챙겨온 책 한 권을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보라가 휴게실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오른쪽 서가에 있는 굿즈 판매대가 보라의 시선을 끌었다.
“어, 이것도 전에는 없었던 건데.”
보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열된 에코백, 독서대, 풍경, 책갈피를 순서대로 구경했다. 그리고 책갈피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서가 맨 끝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하가 보라를 발견하고 굿즈 판매대 쪽으로 걸어왔다.
“도와드려요?”
“네, 책갈피 좀 사려고요.”
보라가 재하를 향해 책갈피를 한 움큼 쥐고 있는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오, 많이 사시네요. 제가 몇 개인지 봐도 될까요?”
“네, 여기요.”
보라가 재하에게 손에 든 책갈피들을 건넸다. 곧장 재하가 책갈피를 셌다.
“전부 아홉 개네요.”
“아, 그럼 하나 더해서 열 개 채울게요.”
보라가 책갈피 하나를 집어 들고 재하에게 건넸다.
“그럼, 계산은 안에서 도와드릴게요. 어! 그 책은…….”
재하가 말하던 중 보라의 왼손에 들려진 책을 보고 멈칫했다. 재하의 첫 번째 책 『가끔은 불안해도 여전히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였다.
“아, 제가 좋아하는 책인데 여기 있으면서 다시 읽으려고 가져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진보라 배우님 맞으시죠?”
“저를 아세요?”
“그럼요. 진보라 배우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도 오늘 오신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때 출판사 사무실에서 나온 선영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소개해 드리려고 했는데 벌써 만나셨네요.”
“아, 그럼 이분이 좋은 이웃이라던 그……?”
“맞아요. 재하 씨, 영화배우 진보라 님 아시죠?”
“그럼요. 저는 신재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그런데 이 책은 재하 씨 책 아니에요?”
선영이 보라가 든 책을 알아보고 말했다.
“재하 씨 책이라니요?”
보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선영을 바라봤다.
“아. 그 책 저자가 재하 씨거든요. 편집은 제가 했고요. 헤헤.”
“정말요? 내가 좋아하는 책 작가님과 책 편집자님을 여기서 한 번에 만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호호호.”
보라는 소녀처럼 좋아했고, 재하는 쑥스러워 뒷머리를 매만졌다. 선영은 재하가 쓰고 자신이 만든 책을 좋아하는 보라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책뿐 아니라 두 번째로 나온 『심리학을 알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도 제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실례가 안 된다면 책에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되고 말고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영광이네요.”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선영이 안에 있는 계산대에서 네임펜을 가져와 재하에게 건넸다. 재하는 보라에게서 책을 받아 판매대 위에 올려놓고 사인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집에 있는 책도 가져오는 건데 아쉽네요.”
“괜찮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 사인해서 가져다드릴게요.”
“정말이요? 고마워요, 작가님.”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조금 있으면 식사도 해야 하니까요.”
선영이 보라와 함께 휴게실로 들어가고, 재하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뒷정리를 한 다음 휴게실로 향했다.
잠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영과 재하는 책 재고 파악과 주문을 위해 출판사 사무실로 갔다. 보라와 준석과 슬기는 휴게실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때 미자가 노란 음료가 담긴 유리컵 네 잔을 쟁반에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이를 본 준석이 재빠르게 일어나 미자의 쟁반을 받아 들고 식탁으로 가져왔다.
“무슨 음료가 이렇게 예뻐요?”
보라가 준석이 건네는 유리컵을 보면서 물었다.
“일전에 보라 씨가 호박 식혜 좋아하던 생각이 나서 한번 만들어봤는데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미자가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어머, 고마워요, 사장님. 바쁘셨을 텐데 그걸 기억하시고…… 아이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요.”
보라는 자신을 위해 미자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호박 식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녀는 감동한 채 식탁에 있는 티슈를 뽑아 눈초리를 찍었다. 그런 다음 어깨를 으쓱하면서 씩 웃더니 유리컵을 들고 호박 식혜를 마셨다.
“음, 너무 맛있어요. 지난번에도 맛있었는데 지금은 더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넉넉하게 만들었으니까 언제든지 와서 마셔요.”
미자도 자신이 만든 호박 식혜를 맛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슬기 씨도 많이 마셔요. 출산 얼마 안 남았는데 몸은 좀 어때요?”
보라가 앞자리에 앉아 있는 슬기를 보고 말했다.
“그래도 한 달 가까이 남았어요. 몸은 괜찮아요. 태아도 건강하다고 그러고요.”
슬기가 자기 배를 쓰다듬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슬기 씨 옆에 준석 씨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살다 보면 임신한 아내 옆에 있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희도 재하 형이 말 안 해줬으면 여기 들어와 살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지금처럼 슬기랑 같이 지내기 힘들었을 거고요. 지금도 그 생각하면 아찔해요. 재하 형뿐 아니라 사장님도, 선영 누나도 저희에게는 정말 고마운 분들이에요.”
“준석이랑 슬기가 우리랑 같이 살게 돼서 우리가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나랑 선영이 둘만 살았다면 적적했을 거야.”
“근데, 재하 작가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아요, 사장님.”
“나도 여기 온 지 5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좋은 이웃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거기다가 선영이랑 아는 사이라는 말을 듣고 우연치고는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선영 씨 때문에 책을 내게 됐는데 그 책들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서울도 아닌 구례에서 이웃으로 다시 만났다? 이거 완전 드라마 아니에요?”
“저희도 선영 누나랑 재하 형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어요.”
준석이 옆에 앉은 슬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곧 다음 책 출간 작업한다고 하던데 이번에도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어요.”
슬기가 준석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번에도 잘될 거예요. 저처럼 재하 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거든요.”
“그런데 보라 씨는 재하 작가 책을 어떻게 알았어요?”
미자가 보라에게 물었다.
“아, 우리 일이 꾸준한 게 아니라서 기다리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작품이 들어와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 못 들 때가 많고요. 그럴 때 책을 읽으면 그런 감정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재하 작가님 책을 알게 됐는데 일상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알고 보니까 그 책이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이더군요. 그래서 첫 번째 책도 주문해서 읽었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그 책에서는 작가님이 힘든 시절을 보낸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고 그래서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걸 알았어요. 그 뒤로 촬영을 가든 여행을 가든 꼭 작가님 책 한 권은 챙겨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더 놀란 건 작가님을 선영 씨가 발굴했다는 거예요. 선영 씨 아니었으면 작가님 책이 세상에 못 나왔을 거잖아요. 선영 씨가 정말 좋은 일 한 거예요.”
“선영이는 기존 유명 작가들보다 무명작가를 발굴해서 책 내는 걸 더 좋아하더군요. 기존 작가들은 자기가 아니더라도 책 낼 곳이 많다면서요.”
“선영 씨가 잘 생각한 거예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선영 씨를 통해서 에세이 한 권 내고 싶어지네요.”
“와, 그럼 다른 나라에서도 출간되겠다, 그죠?”
슬기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건 인기 있는 책이나 그러는 거죠.”
“아카데미 상까지 받은 여배우의 에세이가 인기 없을 리가 없잖아요. 분명 대박 날 거예요.”
“이야, 슬기 씨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책을 꼭 내야겠는데요. 호호호.”
“꼭 내세요. 그때 돼서 그 책이 나오는 데 제가 일조했다고 자랑하게요.”
슬기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웃었다.
다음 날 오후 선영은 보라를 출판사 사무실로 초대했다. 보라가 책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고 하자, 선영이 설명해 주겠다며 부른 것이다. 선영은 보라에게 편집과 표지 작업이 끝나고 이제 인쇄만을 앞둔 원고를 보여줬다. 보라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에 미묘한 흥분을 느낀다며 자신을 믿고 대외비나 다름없는 자료를 보여준 선영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제목을 기억했다가 출간되면 책을 꼭 사보겠다고 했다.
선영과 보라가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재하는 서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하 씨가 지금 하는 퇴고 끝내고 저한테 원고를 넘기면 아마 다음 주쯤에는 출간 작업 들어갈 거예요.”
선영이 작은 목소리로 보라에게 속삭였다.
“그래요? 벌써 기다려지네요. 그럼, 언제쯤 책이 나올까요?”
보라도 선영을 따라서 조용히 말했다.
“11월 말 아니면 늦어도 12월 초에는 서점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빨리요?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나오면 나한테 연락 좀 해줘요, 책 사서 사인 받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
그때 재하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님한테 방해될까 봐 그냥 가려던 참이었는데…….”
보라가 재하를 보고 말했다.
“별말씀을요. 그냥 원고 좀 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나저나 책 만드는 과정은 잘 보셨어요?”
“그럼요. 황송하게도 책이 나오기도 전에 봐 버려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야 부러운데요. 선영 씨가 저한테도 안 보여주는 건데 보라 님에게만 특별히 보여줬나 보네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황송하네요. 호호호. 아 참, 선영 씨, 유튜브로 거북이 콘서트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했었죠?”
“네, 재하 씨가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린 거예요.”
“검색창에 거. 북. 이. 펜. 션.이라고 입력하시면 이렇게 콘서트 영상이 나와요.”
선영의 말을 듣고 재하가 자기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들어가 거북이 펜션 채널을 찾는 법을 보여줬다.
“아, 거북이 펜션, 알았어요. 나중에 방에 가서 볼게요. 셋째 주 콘서트에 작가님이 이야기 손님이라고 하던데 저도 와서 보고 가면 좋을 텐데 일정 때문에 너무 아쉽네요.”
보라는 말뿐이 아니라 그녀의 표정에도 아쉬움이 역력했다.
“그 영상도 유튜브에 올릴 테니 나중에 시간 나실 때 보세요.”
재하가 아쉬워하는 보라를 보고 미소 지었다.
“앞으로 참석은 못 해도 유튜브로라도 거북이 콘서트를 챙겨 볼게요.”
“진보라 님처럼 유명한 분이 저희 영상을 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선영의 말에 보라와 재하도 활짝 웃었다.
보라는 거북이 펜션에 머무는 동안 유튜브로 거북이 콘서트 영상 두 편을 아주 흐뭇하게 시청했다. 연주도 재미있었지만, 이야기 손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보라는 펜션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거북이 펜션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친정에 온 기분이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거북이 콘서트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올리고 ‘매우 감동적이었다’라며 유튜브 채널과 링크를 걸어두었다.
그 영향으로 세 번째 콘서트를 하루 앞둔 금요일에는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10만 명이 넘었고, 구독자 수도 단번에 5천 명으로 껑충 뛰었다. 펜션 식구들은 진보라의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