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명이라 말하는 것들

by 이광

운명 같은 사랑을 해본 적 있는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운명이었길 바라는 바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형식의 운명적인 조우가 있다.




사람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경험과 생각을 특정한 형식을 갖추어 쌓아 올림으로써 지금의 자신을 성처럼 구축할 수 있었다. 사람의 경험과 생각이 ‘나’라는 성(城)의 벽돌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경험과 생각은 확고한 자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그러한 경험과 생각은 편견으로 가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편견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꾸준히 내재되었던 모든 경험과 생각은 이제까지는 세상에 없었던 끌림, 즉 취향이란 것을 만들어 낸다. 전에는 없었던 끌림이 어느 특정한 순간에 열렬히 발산했을 때 우리를 어느 특정한 사람 앞에 서 있게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의 서막을 알리는 쩌릿함을 느끼게 되는데, 흔히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확언한다. 그래서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오면서 축적된 수많은 경험과 생각이 자체적으로 발화하여 결국 활활 타오르게 하는 지극히 편향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내 사랑이 운명적이었다거나 그렇지 않았다거나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다. 사랑이란 것이 그 당시에는 운명이라고 느껴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마는, 매우 유동적인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것 또한 내가 가진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된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된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이 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탓할 게 못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난 감정을 운명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사람과 물건 사이에 생겨난 감정을 단언하는 것이 오히려 쉽다. 물건에 특별한 애착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는 나에게 예외적으로 ‘운명’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책과의 만남이다. 아니, 어느 특정한 순간에 뭔가 규정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으로 내가 한 권의 책 앞에 서게 된 것을 나는 운명적인 조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책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난 후에도 한동안 나는 최고로 행복하고 흥분된 감정에 취하고 만다.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책 속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미끄러져 가며 나는 전율하고 감탄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나는 책에 몰입하고 사랑에 빠지고 만다. 나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동안 이러한 책과 조우하게 되는 일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매우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비록 그 운명이란 것이 편향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모든 책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여 나는 또 한 걸음 나아가게 되리라.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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