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이란 서로의 의견이 막힘없이 잘 통함을 의미합니다. 소통은 쌍방향일 때 공감이 형성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소통에 있어서 일방적이란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정, 직장, 친구, 이웃, 그리고 개인을 넘어 더 확장된 영역에서도 소통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로 통하지 못함은 어딘가에서 막혔다는 것입니다. 불통은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평화로워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화가 아니라 곪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곪은 곳은 머지않아 터지고 맙니다. 그때까지 평화로 위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통에는 갈등이 수반될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 갈등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을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잘 경청함으로써 서로의 의견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소통은 역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역동을 거북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분위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아예 대화 자체를 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관계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성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갖가지 아이디어로 획기적인 소통법을 만들기도 합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여기저기서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어쩌면 자기 자신과의 소통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와 같이 두꺼운 책들을 읽는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나 자신의 마음속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면 아쉬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에 5분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유독 인색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타인보다도 더 낯선 존재가 바로 자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전부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겉모양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겉모양을 잘 아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거울로 자신을 볼 때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의 자신과는 다소 다른 자신을 거울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어떤 이미지를 선택해서 일방적으로 내 안에 던져 줍니다. 그 이미지에 맞춰 내면이 따라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아니, 당연히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던져 줍니다. 이것이 불통의 시작입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내면 어딘가가 곪기 시작합니다. 곪은 곳은 머지않아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불통은 자신을 쓰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쓰러져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나 자신과의 소통을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를 말입니다. 자신과 소통하지 않으면 안과 밖이 서로 엇박자가 나버리기 때문에 결코 세상을 올바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과 깊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더욱 바람직한 것은 쓰러지지 않고도 자신과 늘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 부릅니다. 더 큰 세계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뜻에서 우리는 자주 헤르만 헤세의 말을 떠올립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헤르만 헤세 -
자신이 여태껏 편안하게 누린 세계를 깨뜨리고 나오려면 먼저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놓치고 얻는 더 큰 세계는 언제가 쉽게 무너지고 말 모래성과 같을 뿐입니다. 더 큰 세계를 얻고자 한다면 자신과의 소통을 게을리 말아야겠습니다. 자신과의 소통이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토대라고 믿습니다. 그대의 삶에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