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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y 09. 2021

21세기 유목민 (2021)

Nomadland

Nomadland (2020)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기울어져가는 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도시에서 살았다. 암에 걸린 남편을 옆에서 간호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폈다. 남편은 떠났지만 남편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온 죽어가는 도시 엠파이어 Empire를 떠날 수 없었다. 86년간 운영되어온 광산업 회사가 문을 닫았고 함께 한 곳에서 살던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광산업을 위해 세워진 도시는 유령 도시로 변했고, 우편물을 배송할 필요가 없는 텅 빈 도시의 우편번호는 사라졌다.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펀 Fern(Frances McDonald)인 중년 여인의 삶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자가용을 개조하여 집으로 만들어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서 필요한 만큼 벌면서 사는 일명 자동차 거주인 Vandwelling (van + dwelling)으로 살아가는 펀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다.


          산다는 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펀은 자기처럼 자동차 하나에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소를 싣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여행하는 이들을 만났고, 그들이 하는 말에 집중했다. 어느 한 사람 파란만장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지 않은 이가 없었다. 슬픔, 분노, 후회, 좌절, 희망, 기억과 사랑. 철저하게 혼자였지만, 철저하게 혼자였기에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는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철저하게 외로웠지만, 철저하게 외로웠기 때문에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다가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철저하게 혼자 모든 걸 다 해내야 했지만, 혼자였기에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혼자여야 했기에, 결국에는 혼자였기에 다른 이의 삶에 바짝 붙었을 때조차 몇 발자국 떨어져 존중어린 시선으로 한 사람이 삶에 남긴 흔적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남편과 여행을 떠나며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순간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몇 달 후 남편과 헤어져야 했던 할머니는 어처구니없는 자기 삶을 남의 삶 이야기하듯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는 모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살한 아들을 통해 깨달은 한 중년 남성은 만났다 헤어지는 이에게, 죽음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는 이들에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저 아래에서 길가다 다시 만나요 I will see you down the road."라고 말했다.


          자동차 운전석에서 끝없이 이어진 길 위를 고독과 침묵을 영원한 친구 삼아 달리고 또 달리는 펀을 기다리는 건 언제 시작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광활하고 웅장한 '자연', 그저 그곳에 그렇게 스스로 있는 존재였다. 문득 살면서 내가 실수한 이들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어디선가 어떻게든 다시 이들을 만나고 말 텐데, 그때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진작 내가 거하는 장소가 유목민이 거하는 곳이었음을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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