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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Oct 14. 2022

지누의 포티지 중학교 졸업식

2022년 5월 19일이었다

지누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식이 졸업식이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생은 졸업식이라기보다는 졸업을 기념하며 각 반 선생님이 만든 각종 상장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의식으로 졸업식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 어느덧 3년이 다시 한번 더 쏜살처럼 흘러갔다. 네가 뉴저지 매디슨 토리 제이 세바티니 초등학교(Torey J. Sabatini Elementary School)를 졸업하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엄마가 이쁜 옷을 골라 입히려 했지만, 넌 그런 걸 거추장스러워했지? 엄마랑 티격태격 힘겨루기를 한 후에 마지못해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었지만 머리카락 감는 건 넌 끝까지 거부했다. 끝없이 불려지는 여러 아이의 이름 속에 네 이름도 한 번 섞여 있었고, 클라리넷을 잘 불었기에 주는 상장을 받으러 나가는 내 뒷모습을 아빠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단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걸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붉게 변한 내 귓불을 멀리서 확인하고 알았단다. 공부도 곧잘 하고 운동도 곧잘 했지만, 내가 매일 경험했을 빈부의 격차는 내 어깨 근육을 짓눌렀을 거 같다. 아빠도 그랬거든. 뉴저지 매디슨을 한국에 옮기면 어느 도시쯤 될까 엄마랑 의논한 적이 있는데, 엄마랑 아빠는 서울 삼청동쯤 될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엄마랑 아빠는 삼청동에 살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곳에 살 거란 생각은 가질 마음이 없다.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러기 위해 가랑이가 찢어지고 싶은 맘도 없기 때문이지. 드류대학교 기숙사에서 보낸 14년에 관해 가끔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단다. 


"여보, 우린 이곳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사람으로 보일 거 같아요. 운 좋게도 학교가 삼청동에 위치해서 우린 거주지가 삼청동인 거죠."


너만 의기소침했던 건 아니란다. 엄마도 의기소침했고, 아빠도 의기소침했단다. 가끔씩 너랑 동생 미누가 학교 친구 집에서 놀기로 한 날이면 엄마는 거대한 저택 현관문 앞에 너희를 데려가 초인종을 누르고 네 친구 엄마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 했다.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운동장만큼 넓은 거실과 영화 속에서 본 고급 가구와 가전제품이 영화 촬영 장소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게 눈에 들어왔지. 네 친구 엄마가 문을 열어 너를 맞았지만 네 친구 집의 집안 살림은 거의 다 남아메리카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미국에 도착한 사람이 도맡아 관리하고 있었지. 엄마랑 아빠에게 단 한 번도 "우린 왜 가난해요?"라고 묻지 않았지만, 아빠는 너랑 미누는 이미 네가 살아가는 방식과 네 친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단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널 이해하기보다는 네가 우릴 더 이해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널 너무 큰 아이로 여기는 걸까?


뉴저지에서 차로 16시간 떨어진 위스콘신으로 이사 온 건 새로운 모험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난 모험보다 더 크고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엄마랑 아빠는 너희가 미국에 정착하여 살고 싶다는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뉴저지나 뉴욕 인근 미국연합감리교회 소속 지역 교회로 파송을 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심 없이 서로 돕는 인간관계가 아닌 한 가지를 얻었다면 한 가지를 돌려줘야 하는 계산된 인간관계를 엄마랑 아빠 둘 다 그리 선호하면서 살지 않았기에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2021년 6월 29일에 이삿짐 차를 위스콘신으로 보내고 드류 대학교 교정에서 가족 기숙사에 사는 한인 목사님, 전도사님과 한 번 모여 단체 사진을 기념으로 찍은 후 우린 네가 가장 좋아했던 일식집 타쿠마Takuma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드류 교정을 왼쪽으로 두고 287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브로드 애비뉴Broad Avenue를 따라 아빠가 차를 운전할 때 엄마랑 미누는 엉엉 울었지. 아빠 또한 눈에서 떨어지는 눈방울을 한 손으로 닦으며 한 손으로 운전대를 붙잡고 있었다. 넌 울지 않았다고 했지? 


지난 일 년 너도, 미누도, 엄마도, 아빠도, 참 많이 힘들었다, 그치? 백인 일색이 포티지Portage에서 중학교 3학년 과정을 훌륭하게 잘 마쳐줘서 고맙다.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과정은 고되다. 이 고된 과정을 엄마랑 아빠를 믿고 따라줘서 고맙다. 포티지 중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하여 시상대를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줘서 고맙다. 이 모든 과정이 네 삶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를 아빠는 바란다. 졸업,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빠는 지난 일 년을 무탈하게 버텨낸 네가 자랑스럽다. 


2022년 5월 19일 목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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