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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Oct 14. 2022

지누야, 축구가 재밌냐?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축구가 재밌냐?”


매번 시합한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는 네 모습이 불현듯 눈앞에 떠오를 때면 아빠가 네게 묻는 말이다. 아빠랑 엄마는 네가 뉴저지 매디슨 축구단 2007 불스Bulls에서 축구를 할 때 따돌림을 당하며 축구를 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언젠가 축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유도랑 주짓수도 도중에 그만두었기에 그것마저 그만두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강경하게 축구를 그만두면 다른 모든 것(주말 전자오락)도 할 수 없다는 협박을 동원해 널 계속 불스 축구부에 묶어두었던 날이 생각난다.


매번 축구부 연습이 끝나면 혼자서 조용히 차를 향해서 걸어오던 널 보면서 아빠는 늘 혼자 묻곤 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울까?’

‘뭐가 그리 못마땅할까?’


아빠가 번번이 너에게 물었던 거 생각나냐?

“너 아빠한테 축구 좀 배울래?”

이 질문에 넌 매번 학을 떼며 “아니요.”라고 말했지.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일상에 기나긴 정지 신호를 주었을 때, 드류 신학교가 기한을 알 수 없는 휴식기에 들어갔고 국가 간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었기에 국제 학생들만 학교에 잔류했을 때, 너랑 나, 미누는 셋이서 축구 연습을 시작했다. 아빠는 너희와 함께 땀 흘리는 게 좋았다. 함께 뛰고, 함께 땀 흘리며, 땀과 흙이 뒤섞인 땀-진흙이 얼굴 곳곳에 묻어 있는 너랑 미누를 옆에서 지켜보는 순간이 참 즐거웠다. 할아버지는 아빠랑 놀아주지 않으셨단다. 할아버지의 아빠가 할아버지랑 놀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 할아버지는 아빠랑 어떻게 놀아줄 수 있는지를 모르셨던 거 같다.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셨을 때면 가끔 소년이었던 아빠를 양손으로 들어 머리 위로 들어올려 비행기를 태워주셨지. 잠깐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은 종종 할아버지가 아빠의 얼굴에 뽀뽀를 듬뿍 해주는 상황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빠의 코를 살며시 깨물던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도 기억난다.


너희들이 불쑥 자라 어른이 되기 전에 아빠랑 함께한 무언가를 평생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아빠는 너희 둘에게 축구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지. 아빠에게 축구를 절대로 배우지 않겠다는 널 보면서, 번번이 불스Bulls 축구부 시합 때면 생각 없이, 기술 없이, 무모하게 이리저리 달리기만 하던 네 모습을 미누에게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드류 가족 기숙사에서 너희 둘이 다녔던 초등학교로 오가는 길에 1번 크기 축구공과 테니스공을 발로 차서 주고받으며 미누가 눈치채지 않게끔 녀석의 축구 기초 실력을 쌓기 시작했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드류 잔디 구장으로 끌려 나와 미누와 함께 축구 연습을 시작한 넌 큰 충격을 받았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아마도 앞으로도 당황했을 때, 놀랐을 때, 감동받았을 때 네 표정은 한결같단다. 며칠 전 그렇게도 원하던 아빠와의 일대일 시합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빠의 발재간에 깜짝 놀라던 그 표정이 그날 네 얼굴에 다시 한 번 나타났다.


아빠는 네가 축구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더욱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에 경기마다 만족을 못 할 수는 있지만, 열심히 뛰어 다른 축구부와 겨뤄 이겼을 때도 여전히 불평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오는 널 보면 왜 그런지가 궁금하다. 엄마랑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 둘이서 내린 결론은 그건 넌 축구를 통해서 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몇 점을 내야지하고 결심하는 건 좋은데, 축구란 게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기에 내가 마음먹은 대로 점수를 낼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을 수도 있거든. 포티지Portage 고등학교 축구부가 경기에서 이기고 왔을 때도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온 내가 미누랑 엄마에게 하는 말은 보통 상대편 축구부 아이들이 너에게 반칙을 일삼았다는 증언이다. 이 증언 속에서 아빠가 찾을 수 있는 건 상대편 축구부 아이들의 거친 수비로 인해 넌 네가 생각한 대로 축구를 할 수 없었고, 마음먹은 대로 점수를 내지도 못했음에 대한 실망감이다. 네가 아무리 화려하게 축구를 할지라도 네가 속한 축구부가 경기에서 지면 너도 진 거고 네가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축구를 하지 못했을지라도 네가 속한 축구부가 경기에서 이기면 넌 이긴 거다. 이 단순한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안타깝지만 넌 축구가 아닌 다른 운동을 찾아서 열심히 실력을 닦는 게 나으리라 생각한다.


이왕 축구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몇 마디만 더 할게.


먼저 명심해야 할 건 축구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혼자서 돋보이고 싶으면 혼자서 하는 운동을 찾으면 된다. 축구는 11명 선수가 서로서로 도우면서 해나가는 운동이기에 협력할 능력이 없고 이 능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가짐이 없으면 매 경기 후 네가 그린 네 모습대로 축구를 하지 못했을 때면 실망감과 좌절감 말고는 다른 걸 느낄 수 없을 거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11명 선수를 이끄는 감독의 눈에 쉽게 들어온다. 그런 선수는 좋은 축구부에 들어갈 수 없고 좋은 감독 또한 만나기가 힘들다.


둘째, 좌절감과 실망감이 가득한 마음을 어떻게 다독이는지가 멋진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단다. 좌절감과 실망감을 쉽게 회피하는 방법 중 최고는 다른 이를 탓 하기란다. 넌 잘했지만 다른 이가 너무 심하게 반칙했고, 넌 좋은 자리에 있었지만 다른 이가 너를 보지 못했고, 넌 기회를 만들어줬지만 다른 이는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는 말은 다른 이를 탓하는 이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매번 실망감과 좌절감에 휩싸인 네 입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다.


셋째, 좌절감과 실망감은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동시에 네 마음이 네 머리에게 보내는 신호다.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머리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 마음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서 신호를 보낸단다. 경기 후 좌절감과 실망감은 네 마음이 네 머리에게 보내는 신호다.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네 마음은 대체 무엇을 네 머리에게 말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네 마음은 네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닐까? “지누야 축구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왜 그렇게 무모하게 점수만 낼려고 하니? 왜 그렇게 처절하게 축구를 하려고 하니? 왜 다른 이가 하는 말에 그만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하니?” 좌절감과 실망감이 들 때면 무엇보다 먼저 너 자신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네가 한 생각, 말, 행동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넷째, 축구 기술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축구 기술을 모르는 사람을 열에 아홉은 이길 수밖에 없다. 미누가 널 이길 수 없고, 미누가 날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축구 기술의 차이보다는 신체 조건의 차이지. 현재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조만간에 미누가 얼마나 자랄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문제는 축구 기술을 어느 정도 잘 아는 두 사람이 만나서 축구를 할 때인데, 축구를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뽐내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축구를 그저 사랑해서 이기나 지나 매 경기를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한 번, 두 번은 이길 수 있겠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그 부족함을 채우는 능력은 자기가 하는 운동이나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하는지다. 곧 마음가짐이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지에 현재의 네가 아니라 5년 후의 너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된다. 그러니 좋은 마음, 즐거운 마음, 감사하는 마음, 행복한 마음으로 즐겁게 축구를 해야지만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만들 수 있다. 넌 이제 실력과 기술에 있어서는 좋은 기초를 가지고 있다. 아주 탄탄한 기초지. 하지만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좋은 마음이란 ‘기초’는 여전히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마음이 훌륭한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구별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섯, 아빠가 네게 읽을 책을 건네주기 시작한 건 아들을 향한 아빠의 걱정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많이 읽고 좋아했던 너였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환상소설fantasy만을 읽으려는 너를 보니 걱정이 되었다. 삶이 펼쳐지는 장소는 환상fantasy과 현실reality가 뒤섞인 오묘한 공간인데, 넌 환상의 영역 속에만 머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가 쓴 현실 세계 인간 삶의 복잡다단함과 심오함을 네가 조금씩 알아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기를 제안했었고, 그걸 싫다는 널 어떻게든 읽게끔 만들기 위해서 다시 한번 ‘주말 오락’ 시간을 빌미삼아 네가 책을 읽도록 강요했었다. 책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드려다 보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네 마음 속 생각은 저수지의 고인 물처럼 더는 흐리지 않는다. 네가 책 읽기를 철저하게 거부한 이후로 네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한 생각을 한번 종이에 적어봐라. 그리고 그 생각이 지금까지 변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로 내 마음을 거칠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봐라.


이제 이 편지를 갈무리할 때가 된 거 같다. 엄마가 학교에서 너희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거든. 좋은 축구는 좋은 사람이 하는 축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해서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이 또한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우리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넌 좋은 축구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이제는 좋은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좋은 마음을 가진 멋진 축구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건 어떨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좋은 실력을 키우려고 애쓰는 만큼 좋은 마음을 키우려고 애쓰면 된다. 이를 위한 가장 쉽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은 틱톡이나 전자오락이 아니라 좋은 책을 손에 들고 차분하게 읽어 나가면 나와는 다른 이의 삶과 태도,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운동을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빠는 언제나 널 응원한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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