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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Jan 03. 2021

Soul 영혼 (2020)

우연과 필연성, 그 어마어마한 간극에 서서

Soul (2020)



"소울이 나왔어요! 여기 있다!"

작은 아들 미누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날 밤 영화 광고를 본 이후 상영 날짜만 기다렸던 <Soul영혼>이란 영화를 네 식구는 들뜬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앉아 감상했다.


          뉴욕 시 한 중학교에서 음악 선생으로 일하는 조 가드너Joe Gardner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음악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야 했고, 악기 연주를 무척 귀찮아하는 아이들을 모아 음악단을 꾸려나가야 했다. 무료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있다면 아버지 안내로 알게 된 재즈란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었고, 재즈 음악단에 들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꿈꾸며 하루하루 버텨냈다. 어머니는 그런 조가 못마땅하다. 한 평생 음악을 한다고 변변한 직장 하나 유지하지 못했던 남편 뒷바라지하며, 음악가의 삶에 가득한 불안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도로시 윌리암Dorothea Williams이 꾸린 음악단에서 피아노 연주자를 구한다는 소식이 조를 찾아왔다. 들뜬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즉흥 음악 시험을 치렀고, 그날 밤 함께 공연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조는 윌리암 재즈 악단 소속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앞뒤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거리를 흥겹게 달려가던 조가 도로 공사를 위해 열어 놓은 맨홀에 떨어졌다. 그 순간까지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던 꿈이 현실이 된 시각에 조는 정신을 잃었고, 그의 영혼은 그의 육체를 떠났다.


          의식을 되찾은 조는 자동 계단에 서서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The Great Beyond을 향해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육체를 벗어난 영혼으로 변해버린 자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는 거듭해서 현실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지구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영혼이 머무는 공간인 삶 이전 세계The Great Before로 가게 된다. 의식을 잃은 채 식물인간이 되어 병실에 누워 있는 자기 몸속으로 다시 돌아갈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던 조에게 한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영혼 22번의 인생 길잡이가 되어 영혼 22번을 안전하게 지상계로 보내는 일이었다. 영혼 22번은 지구에서의 삶에 대한 관심도 매력도 느끼지 못한 채 수 천 년간 삶 이전 세계에 머물렀다. 영혼 22번에게 인생이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경험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문하던 조와 영혼 22번은 문윈드Moonwind라는 무당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둘은 함께 지상계로 돌아간다. 조는 못다 한 꿈을 누리기 위해, 영혼 22번은 지상계가 대체 어떤 곳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영혼 22번이 식물인간 되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조의 몸속에 들어가 조로 태어나고, 조의 영혼은 자기 몸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 몸속에 들어가 고양이로 태어난다.


          머뭇거리며 새 삶을 시작하지 못한 채 천상계를 떠돌기만 했던 영혼 22번은 고양이로 변한 조의 안내로 조가 이뤄 놓은 삶과 살갗을 맞애어 소통하기 시작한다. 원했던 삶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삶을 통째로 잃어버린 조는 고양이의 몸속에 들어가 자기가 그 순간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을 하나 둘 새롭게 바라보며 먼발치에서 관찰하고 숙고한다. 이를 통해 조는 죽기 전까지 자기가 창조한 삶이 무료하지 않았음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음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음악가로서의 꿈을 아들이 이어서 창조해 나가길 간절히 바라왔음도 알게 된다. 영혼 22번은 처음부터 한계 지어진 지상계의 삶이, 한계와 결정론으로 인해 그 무엇보다 경험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는다. 


          천상계와 지상계. 영혼의 거처. 삶과 죽음.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이란 존재를 자각한 이후로 줄곧 물어왔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럴듯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두껍고 무거운 문제가 영화의 주제다. 가끔씩 이런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졌다. 한 번뿐인 이 삶에서 가장 확실한 게 무엇일까?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리, 내 몸을 아낌없이 내던질 수 있는 진리, 그건 대체 무엇일까? 내 자신과 하는 사색은 보통 두 가지 단어에서 멈춰 섰다. 가족. 그리고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게 변할지라도 내 가족은 변하지 않는다. 내 부모님, 내 두 누나, 내 아내, 내 두 아들, 내 장모님, 내 조카. 그리고 내가 살아내는 순간만큼은 영원하리만치 정확하고 견고하다. 매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내 몫이고, 내 선택이고, 그래서 내 거다. <영혼>이란 영화는 이런 내 생각을 지지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인간 삶의 절대적 한계 상황을 뛰어넘는다. 다시 삶 이전 공간The Great Before으로 돌아간 조의 영혼과 영혼 22번에게 절대자 혹은 우리로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어떤 존재는 새로운 시작을 허락한다. 영혼 22번은 설렘을 안고 지상계를 향해 달려갔고, 조의 영혼은 다시금 조의 신체 속으로 돌아가 조가 되었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조가 내뱉는 혼잣말이 목을 매이게 했다. "I don't know but I'm going to live every moment of it. 모르겠다. 하지만 매 순간을 살아낼 거야." 지금 내 손에 주어진 것, 지금 내가 손에 잡을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대상, 이것 말고 대체 무엇에 우리는 우리의 전존재를 던질 수 있을까?


"어메징Amazing! 진짜, 엄청 재밌네요! 우와, 어쩜 이렇게 재밌지?" 9살 소년 미누가 감탄했다.

"엄마, 난 소울Soul이 사실, 페러사잇Parasite보다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요?" 13살 청소년 지누가 처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페러사잇 아니면 소울?"

"글쎄, 두 가지가 다 재밌는 거 같은데..."

"난 소울이요. 왜냐면 라이프Life에 대한 좋은 메시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페러사잇은 좀 죽이고, 그렇고 하니까."

"그래! 니 말이 많다. 삶에 대한 좋은 자세를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소울이다. 아빠도 소울."

"예이!"


2020년 성탄절은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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