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서 '충실'로
배우 전도연 씨가 내 머릿속에 각인된 건 영화 <밀양(2007)>에서 그녀가 연기한 이신애 때문이다. 모든 걸 다 잃은 여인의 몸속에 쌓인 절망과 분노, 두려움과 낙심, 무기력함과 기적을 향한 극단적 갈망이 경계가 해제된 채로 뒤섞인 정신적 외상을 내림굿을 받아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9년 후 코로나 사태로 삶의 속도에 무조건적 정지 신호가 주어졌을 때 전도연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이란 영화에서 돈이라는 결과를 손에 쥘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인간도 전기톱을 사용해 토막 살인하며 방긋 웃을 수 있는 냉혈한 최연희로 나에게 돌아왔다. 2022년 가을에 난 처와 함께 한국 연속극에 입문했다. 영화 한 편은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 변화를 야기한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는 개인의 삶과 집단이 삶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어김없이 내가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연속극을 보며 마음을 치유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타강사 스캔들(2023)>에서 전도연 씨는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국가대표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이란 이름의 한 여자로 다시 돌아왔다.
상실
<일타강사 스캔들>의 주인공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요소는 상실이다. 삶을 규정하는 모든 요소를 파괴하는 죽음으로 극대화되기도 하는 변화. 변화는 우리 삶을 뒤흔든다. 변화를 경험하기 이전 삶과 경험한 이후의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인지하고 인정하여 받아들임 이외에는 변화와 대결하여 승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재경험해야 하는 경험을 우리는 상실이라 부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상실은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혹은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남행선(전도연 분)이 태어나 일구어온 삶은 엄마(김미경 분)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그날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나 있는 언니가 말 한마디 없이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 앞에 버리고 간 조카 해이(노윤서 분)를 본 엄마는 수년간 소식 없이 살아온 첫째 딸을 붙잡기 위해 황급하게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고, 가게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순간 가게 앞을 지나던 차가 엄마를 치었고, 그 자리에서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떠났지만, 행선이는 떠날 수 없었다. 조카 해이와 선천성 심장질환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운 남동생 재우(오의식 분)를 돌볼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카 해이와 남동생 재우를 거두기 위해 행선은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자리를 포기했다. 핸드볼만 해왔기에 막상 먹고살자니 눈앞에 막막했다. 그런 그녀를 이끌어준 건 음식점을 꾸려나간 엄마의 손에 밴 맛이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자랐기에 엄마가 만든 음식을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엄마는 행선이에게 자기 손맛을 물려주고 떠났다. 엄마의 손맛을 잘 간수하여 개발한 행선이는 '국가대표 반찬가게'를 차려 조카 해이와 남동생 재우를 거두며 살아간다.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낳아준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이 없는 해이는 결핍과 함께 태어나 자라났다. 그런 자기에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던 해이는 이모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순간 엄마를 품 안에 앉고 하얀 백합처럼 밝게 웃었다. 자폐증과 유사하여 사회관계 형성에 장애가 있고 제한되고 정형화된 행동에 집착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재우는 감정이 부재한 세계 속에서 산다. 다른 이의 감정을 읽을 수 없기에 공감할 수 없는 재우는 항상 답답하다. 그래서 무관심하다. 행선이의 핸드볼 국가대표단 동기이자 친구면서 함께 ‘국가대표 반찬가게’를 꾸려나가는 영주(이봉련 분) 또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번번이 실망하며 살아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행선이처럼 핸드볼 국가대표선수 경험은 있지만 이를 살려서 살 길을 만들지 못했다. 행선과 영주, 재우와 해이. 이 네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한 네 사람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나눠 먹으며, 삶도 나누는 나지막한 공간이 ‘국가대표 반찬가게’다.
수학 학원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은 이름 그대로 치열하게 살아간다. 수학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던지 연평균 경제적 가치 1조 원을 창출하는 일타 수학 강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일타 수학 강사로서 그가 누리는 유명세는 인기 연예인과 맞먹는다. 고등학교 성적 상위 0.1 퍼센트 아이들의 어머니는 자식이 최치열 강사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수업 등록기간이 되면 학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등록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에 따라 아이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돈과 명예, 게다가 인기까지. 성공의 삼박자 요소를 모두 손에 넣었지만, 치열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는 수험생들에게 수학을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섭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을 한다고 자위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그의 삶은 수학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신진대사를 멈추지 않고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 섭취와 최소한의 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이런 집이 다 있다니!’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호화스러운 곳에서 살지만, 집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눕기만 해도 잠들 수 있을 거 같은 널따란 침대가 놓여 있지만, 잠은 침대 옆 바닥에 깔아 놓은 침낭에서만 잘 수 있다. 만성피로와 우울감, 불명증과 소화불량을 견디기 위해 규칙적으로 먹는 약이 없었다면 일타 수학 강사 최치열의 치열한 삶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을 거다. 남들 보기에는 가지고 싶은 모든 걸 다 가진 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이 최치열이다. 그런 최치열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지동희(신재하 역)는 최치열 연구소 실장으로 일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한 누나가 유일하게 믿고 따랐던 최치열을 숭배하여, 최치열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치기로 결심한 동희는 잃어버린 유아기를 최치열을 어린아이처럼 치열하게 보살피고 통제하면서 보상받으려 한다. 최치열을 향한 도를 넘은 그의 집착은 결국 자기와 최치열 사이 관계에 끼어들려는 모든 이를 제거하는 살인마로 변하게 했다.
자궁 -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음식?
모든 걸 다 소유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잠깐이나마 몸속에 넣어 보관하고 소화할 수 없는 최치열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위경련을 일으키지 않는 음식을 찾는 일이다. 어느 날 지동희는 남행선의 <국가대표 반찬가게>에서 도시락을 사서 최치열에게 건네준다. 몇 젓가락 먹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리라 생각하며 도시락을 꺼내 입안에 한 입 넣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맛이 있음은 둘째 치고서라도 어디선가 익숙한 맛, 마음이 포근해지는 맛, 걱정근심이 사라지는 맛, 온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는 맛이었다. 남행선의 어머니가 돈 없이 공부하던 시절 자기에서 무료로 밥을 퍼 먹여줬던 고시원 근처 식당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최치열은 알지 못했다. 살아있음을 다시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음식을 다시 먹고 싶은 맘에 최치열은 <국가대표 반찬가게>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남행선을 만난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자기 몸과 자기 마음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다른 이의 몸과 마음에 자양분이 되는 음식을 만들어 팔아 어머니가 남기고 간 조카 해이와 남동생 재우를 먹여 살리고 보살피는 여인에게 끌린다. 셰익스피어는 남자는 살아있는 동안 세 명의 여자를 만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여자는 단연 엄마다. 두 번째 여자는 연인 혹은 부인이다. 세 번째 여자는 죽음을 통해 그 품에 안기는 자연이다. 최치열은 남행선에게서 엄마와 여인, 자연을 동시에 발견한다. 남행선을 통해 그 옛날 자애로웠던 식당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식당 아주머니의 자애로움을 남행선이란 여인 속에서 재발견한다. 해이에게 개인 과외를 제공하면서 남행선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한 최치열은 남행선의 내면세계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삶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남행선은 최치열에게 자궁 같은 존재였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경계선을 부시고, 생명을 향한 사랑으로 살아 있는 존재를 긍정하고, 그렇기에 살이 있는 존재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존재를 과감하고 단호하게 부정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주변 인물들은 번번이 남행선의 생을 긍정하는 태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남행선 - 심청이와 유관순, 한석봉의 어머니
2023년 대한민국은 남행선이란 여자에게 매료되었고, 그녀의 삶에 열광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다. 이른 아침이면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가게로 출근하면 그날 팔 수 있는 반찬을 만든다. 반찬을 만들면 가게 진열장 그릇에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담고 가게 문을 연다. 해이가 최치열의 수학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는 어느 어머니와 다름없이 마지막 수강 등록번호를 손에 넣기 위해 학원 현관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가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남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노처녀지만 고등학생 조카 해이의 앞날과 남동생 재우를 생각해서 자기 삶은 잠시 옆으로 제쳐두었다. 자기와 가족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면 하루 날 잡아 술 한 번 진탕 먹고 툴툴 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국 사람은 ‘어머니’란 단어를 들으면 ‘희생’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양주동 시인의 시에 이흥렬 작곡가가 음을 붙여 탄생한 노래 어머니 마음의 한 구절만 들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대한민국 국민이 남행선에게 열광한 이유는 남행선의 말과 행동 속에 어렴풋이 담겨 있는 태곳적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다. 조카를 위해 미혼의 삶을 과감하게 포기했고, 남동생을 위해 어디에서건 무릎 꿇어 사과하길 망설이지 않는 여인을 우리는 모두 그리워한다. 보살펴야 할 대상을 위해 자기를 비울 수 있는 사람을. 초개인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란 단어 속에 담긴 희생을 통한 사랑에 목마른 우리에게 남행선은 희생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희생만 하는 여인은 21세기가 원하는 여인상은 아니다. 자기 생각이 분명해야 하고, 자기주장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결단에 삶을 걸 수 있는 배짱과 용기 또한 있어야 한다. 유관순 열사.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자주와 독립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 어린 나이에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믿은 바를 향해 목숨을 바쳤다. 또래집단의 압력과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무엇이 자기에게 떳떳한 생각과 행동인지를 판단하여 이에 의지하여 살아내려고 발부둥치는 남행선의 모습에는 대한민국 국민은 유관순 열사가 투영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해이의 친엄마보다 남행선은 더 해이를 위하는 모습에서 난 한석봉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신영복 선생님은 <마지막 강의>란 책에서 맹자의 어머니보다 한석봉의 어머니를 더 높게 여긴다고 말씀하셨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환경을 두 번 옮긴 것 말고는 특별히 한 일이 없지만, 한석봉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자기 삶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한석봉의 붓글씨와 어머니의 떡 썰기는 서로 겨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한석봉은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바르고 가지런하게 쓴 떡과 비뚤어진 자기 글씨를 비교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삶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었다. 남행선이 그랬다. 핸드볼에만 집중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공부에 있어서는 내세울 게 없었고, 해이 수험공부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이모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란 해이는 사려 깊고 자기에게 정직한 아이로 성장했다. 성적과 정직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해이는 엄마처럼 정직을 택했다.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은 남행선에게서 심청이와 유관순, 한석봉의 어머니를 발견했고, 이들이 대표하는 희생과 자기 결단력, 삶을 대하는 올곧은 마음가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오늘이란 현실 속에서 남행선을 응원했다. 그녀의 인생과,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가족을 모두. 아자차.
2023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