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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 강물처럼 May 20. 2023

지누에게

미국에서 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제 네가 방과 후 체육 활동으로 이번 학기에 시작한 테니스 경기를 위해 포티지Portage에서 두 시간 떨어진 고등학교로 가질 않고 책가방과 테니스 운동 장비가 든 가방을 들고 집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을 때 엄마랑 아빠는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 싶었지. 그런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만히 생각하다 눈시울을 빨갛게 물들였다.     

“무슨 일인데? 왜 테니스 시합하러 가지 않고 집으로 왔는데?”      

아빠의 다그침에 넌 목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말인데? 왜 널 보고 집으로 가라고 했는데?”

“아니... 스쿨 버스에 자리가 없어서 나보고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너만?”

“네.”

“왜 너만 집으로 와야 했는데?”

“나도 몰라요.”라고 말한 네 눈에 한가득 담겨 있던 눈물은 결국 양 볼을 타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네 엄마는 “그래, 울어.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라고 말하며 널 안다시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빠는 곧바로 학교 체육 활동 총책임자 에드 칼슨Ed Carlson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왜 이런 경우가 너에게 일어나야 하는지를 물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들은 상태라 다른 한쪽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라 일관하는 그에게 다른 한쪽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렇게 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들은 후 통화를 끝냈다. 어제 시합에 참여하려고 준비한 테니스부 인원이 준비해둔 차의 자릿수보다 한 명이 더 많았던 상태였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건 테니스부 담당자의 실수였지. 실수는 나도 하고 너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해야 할 상황에서 테니스부 담당 선생 두 명 중 한 명이 아닌 학생 한 명을 지명하여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다른 학생들로부터 제외하는 건 불평등한 대우라고 난 생각한다.      

“왜 너도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냐? 와이why라고 왜 묻질 않았냐? 와이why라고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냐?”

“나도 몰라요.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을 때 네가 말했다. 

“그냥, 잇 이즈 왓 잇 이즈It is what it is라고 생각했어요.”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블랜튼-필Blanton-Peale 정신 분석 훈련소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상담사로 일할 때 만났던 환자 중 오랜 기간 함께 상담을 진행했던 이들이 종종 내뱉던 말이 어제 테니스 담당 선생님이 자리가 한 자리 부족하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네게 말했을 때 네 머릿속에 떠오른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환자들이 이 말을 내뱉을 때면 아빠는 항상 패배주의와 체념과 방관으로 삶을 대하는 그들을 재확인해야만 했다. 네가 그 말을 자신에게 내뱉었을 때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네 성격을, 날 닮은 네 성격을 생각할 때, 네가 억지로 자리를 꿰차고 앉으면 다른 학생 한 명이 차에서 내려야 할 상황이 발생하게 될 테니 그냥 이쯤에서 물러나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테고, 네가 결정했지만 엄마랑 아빠가 축구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인해 시작한 테니스였으니 시합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축구 연습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너도 시인했다.


“그 순간 레프트 아웃left out된 거 같아서 싫었어요.”     

넌 머리로 그 순간을 나름 정당화justification하고 합리화rationalization하려고 노력했지만, 네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집단으로부터 강제로 떨어지는 경험을 소외isolation라 부르고, 만약 그런 행동이 집단에 의해 일어나면 왕따bullying가 된다. 어제 저녁밥을 함께 먹으면서 왜 테니스부 담당 선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묻는 나에게 네가 대답했다. 

“난 뭐 다친 것도 아니고 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네 대답이 끝나자마자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나와 부엌에서 달걀을 프라이팬으로 굽고 있던 엄마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 생각나냐?

“그.건. 괜.찮.은.게. 아.니.야!”          


미국이란 나라는 전 세계 이민자가 모여 만든 나라다.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무거나 하나 머릿속에 떠올려 봐라. 황량한 들판에 유럽에서 온 아무개는 집을 짓고, 집 주위에 울타리를 친다. 그런 후 출입 금지 No Trespassing!라고 적힌 표지판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 설치한다. 이곳은 내 집이고, 내 땅이라는 걸 다른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만약 누군가가 들어오지 말라는 곳에 들어오면 망설임 없이 총을 꺼내 위협사격을 가하고 그래도 울타리 밖으로 도망가지 않으면 직접 사격을 가해 자기 집과 땅을 사수한다. 미국이란 나라의 건국 이념 중 하나인 평등equality은 신기루 같은 개념일 뿐이었다. 만인이 만인을 대상으로 누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지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탄생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고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을까? 건국 초기에 미국이란 나라는 무법천지였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려면 공간이 좁아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보다 국토 면적에서 80배가 더 크다. 미국의 전체 국토 면적이 8,080,470 제곱킬로미터라면 한국은 100,339 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나라가 한국전쟁 후 한국이었다면 말보다 총이 앞서는 나라는 건국 초기 미국이었다. 전과기록이 없으면 언제 어디서든 총을 살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2021년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사망한 이는 48,830명이었다. 총기 사용에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말이 끝없이 들려오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빠는 미국인에게 총은 신기루 같은 건국이념 중 하나인 평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행정력이 강한 미국 검찰은 서부 개척 시대 보안관의 후예다. 무법천지에 법을 심은 건 일반인보다 더 총술이 뛰어난 보안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엄마, 아빠가 미국에 들어온 2007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듣고 있는 뉴스가 총기 난사 사건이다. 총기를 특정한 대상이 아닌 다수의 대중을 향해 막무가내로 난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사살당하거나 법정에서 사형 혹은 무기징역형을 받은 후 일반인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아빠는 적어도 총기를 난사하는 순간에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이들은 무언가를 외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고자 한 게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네가 살아갈 미국이란 땅에서 총이 없고 총을 사서 집에 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네 목소리를 가지고 너 자신을 지킬 수는 있어야 한다. 느낌과 생각이 일치하여 이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네 목소리를 망설이지 말고 밖으로 내야 한다. 생각과 느낌이 동시에 이건 이해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면 네가 처한 상황에서 물러날 게 아니라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밀어 넣으려는 사람에게 부드럽고 차분하게 동시에 단호하게 물어야 한다. 생각과 느낌이 동시에 어 이럴 수가 내가 구석으로 몰렸다고 알려주면 총이 아닌 네 목소리를 사용하여 너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 행여나 너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신호가 언쟁으로 이어진다면 용감하게 싸워서 이겨야 한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 중 한 가지는 웅변력이다. 국내외에 무슨 일만 나면 사람들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미국에 사는 인종 수만큼 다양한 관점과 감정을 모두 보듬을 수 있는 웅변력이 있는 대통령은 종종 훌륭하고 좋은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처럼 자기 느낌에 도취하여 과장과 독단, 편견에 사로잡힌 연설로 찬성만큼 반대를 끌어내는 대통령은 좋은 대통령이라 불리지 않는다. 왜 미국 사람은 지도자의 웅변력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아빠는 이 또한 건국 초기 무법천지였던 미국을 법치국가로 이끈 총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치국가로 발돋움하면서 미국은 무법천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법이 아닌 법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연스레 총이 아닌 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에서 말을 잘한다는 건 입에 장전한 내적 총알로 다른 이를 잘 설득하는 명사수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어 자기를 표현하라는 말은 서부 개척 시대 무법천지에서 자기 땅과 자기 집을 사수하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땅을 개간하고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 개척자는 이 땅은 내 것이고 이 집에는 내가 산다는 걸 거듭해서 다른 이에게 각인시키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부터는 아빠에게 대들 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대들어라. 오늘부터는 아빠에게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가지고 언쟁을 벌리듯이 필요하다면 언쟁을 벌리고, 반드시 그 언쟁에서 이겨라. 하지만 기억해라. 언제 어디에서 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건 네 느낌이나 네 생각이 아니다. 네 느낌과 생각이 하나가 될 때, 느낌과 생각을 하나로 만들 수 있게 네 마음밭이 평안하고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을 때, 목소리를 내야 할 때와 장소를 넌 알 수 있다.          


2023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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