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_정서적 피난처

2019.08.12.달날

by 이길 colour




심리적 외상 혹은 충격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트라우마는 반드시 본인에게 닥친 일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이웃 또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 밀접하고 취약한 존재이며,

직접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상황 또는 환경적인 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달하는 존재이다.


발달은 성장과 동의어가 아니다.

세포의 분열과 확장을 의미하는 성장과 달리,

발달의 과정에는

신체적 노화와 심리적 퇴행의 과정이 포함된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는 이유에 관하여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보는 건

발달의 과정 중 일부인

노화와 퇴행의 여정에 있다.

나약함을 깨닫는 인간은

서로에 기대어 부족함을 채우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철저히 개인적 소망에 그칠 수 있다.

신체적 기능이 열등감으로 다가오고,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던 단어가

비수처럼 심장에 꽂힐 때,

과연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열등감을 분노로 표현하거나,

예리한 언어의 칼을 대상 없는 허공에 휘둘러대지 않았나?


나의 최근 행보는 그러하다!


신체적 기능의 저하를 인정한다!!

나아가기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선호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


심리적 취약함을 인정한다!!

내가 뱉었던 말이 칼이 되어 돌아올 때,

또 다른 내가 나의 앞, 지금 여기 존재함을 알아차린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노화와 퇴행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화와 퇴행은

심리적 외상 또는 사회적 취약함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40대 중반의 몫이기도 하다.

나이 듦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내가 겪고 있는 현재와 미래임을 인정한다.

40대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선행조건은,

젊음이 들어섰던 자리를 대신할

나의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조금 더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관계>이다.


인간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란 존재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이처럼,

<관계>를 벗어나 '오롯이 나'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이다.

피상적 <관계>를 벗어난 진실된 <관계>!!

내게는 <정서적 피난처>를 가꾸고 돌보는 것이 첫걸음이다.


[정서적 피난처

_아이와 함께라는 요리, 커피, 맥뽁이, 기타 등등]


<정서적 피난처>는

때로는 사람이고,

때로는 글로 그림을 그리거나,

때로는 그림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행위이다.

깊고 산뜻한 커피 향이 묻어나는 누군가와 마주해

장난스럽고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며,

고되 보인다며 내 어깨를 주무르는 아이들의 손길에

괜스레 눈물이 찔끔 나며 녹아내리는 마음이다.


공식적 사회의 기대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여러 겹의 허물을 벗었을 때,

'오롯이 나'로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는 힘은

이처럼 내 일상 곳곳에 마련돼있는

<정서적 피난처>에서 솟아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어렵게 일궈놓은 <관계>가

일상으로 치부되어 등한시되지 않도록,

내가 또 다른 이의 굳건한 정서적 지지자

심리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게,

내 마음밭이 될 <정서적 피난처>를

가꾸어야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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