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에 도착했을때 우리 가족을 가장 열렬히 반겨줬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공원들이었다. 초록이라는 컬러를 봤을 때 인간을 가장 편안함을 느끼듯 타국에 온 불안감이 잔디와 숲이 펼쳐진 공원에 가면 모두 해소됐다.
레스터에서 가장 큰 공원 중에 하나인 ‘애비 파크(Abbey Park)’는 레스터에 막 도착했을때 호텔 바로 옆에 있던 공원으로 틈만 나면 가곤 했다. 나중에 아이들을 보낸 슬레이터 공립 초등학교와도 가까워 소풍, 체육 행사 등도 자주 이곳에서 열렸다. 이 애비파크는 여름이 되면 한시적으로 테마파크가 된다. 꽤 스릴있는 각종 놀이기구들을 들여와 아이를 둔 가족 고객들과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놀이기구를 타다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시원한 색색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도 즐겁다.
애비파크를 걷다 보면 큰 호수가 보인다. 백조, 거위, 철새들이 떼를 지어 모여 사는 곳이다. 자연과 더불어 작은 노젓는 보트를 타는 맛도 쏠쏠하다.
좀 더 걸어가 보면 정숙하게 단장한 나무와 각양각색의 꽃들이 즐비한 잔디 광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결혼식 사진을 찍으러 나온 신랑, 신부와 가족들이 자주 보인다.
애비파크는 이렇게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각종 대형 행사가 많이 열린다. 11월 초에는 ‘본파이어(Bonfire)’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것은 공원 한가운데 못쓰는 나무들을 크게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전통적인 영국의 파이어웍스(Fireworks) 행사다. 영국의 본파이어 축제는 옛날 1600년대 카톨릭 교도들이 정치적 탄압을 받는 것에 저항해 국회의사당을 불지르려고 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축제의 형태로 남아있다. 이 행사를 위해 도시민들이 안쓰는 가구나 목재들을 대량 기증하게 된다. 레스터의 시민들은 밤에 모두 애비파크로 몰려들어 유명 가수들의 공연도 즐기고, 본파이어와 함께 이것저것 먹거리를 즐기며, 행사의 대미인 불꽃놀이까지 참여한다. 입장료는 1인당 3파운드. 나도 아이 둘과 함께 참여하려고 집에서 애비파크까지 밤에 걸어갔지만 매섭게 부는 바람과 비 때문에 공연만 보고 돌아와야 했다. 결국은 비 때문에 파이어웍스 행사는 취소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있는 올림픽공원 근처에 살아 자주 가곤 했는데 공원의 본 고장에 오니 바로 내 세상이구나 싶었다. 한국의 공원들이 좀 더 인공적이라면 영국의 공원들은 지극히 자연 그 자체이며 그 자연을 공원 관리자가 아주 정성스럽게 관리한다.
우리 집에서 정확히 3분 거리인 학교 옆 ‘캐슬 가든(Castle Garden)’은 옛날 병원 옆에 있었던 정원으로 타 공원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바로 옆에 소어강과 백조들의 보금자리가 있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후 가끔 책을 가지고 와 벤치에서 읽곤했다. 가끔 카누를 타는 선수들과 백조의 조화, 강을 미끌어지듯 이동하는 리버보트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타국에 와 있구나 라는 느낌을 한껏 받는다.
주말에 아이들이 무료해 하면 집에 있는 음식을 싸와 피크닉을 하곤 했다. 아이들에게서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웃음을 주워담곤 했다.
런던에 들르면 꼭 가는 곳이 하이드 파크를 가로질러 다이애나비가 살던 켄싱턴 파크까지 가는 거였다. 영국의 공원에 가면 옛날 어학연수 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공원에 가서 샌드위치도먹고, 카푸치노도 마시다가 잔디에 누워 낮잠도 자던 시절로 돌아간다. 참된 평화로움과 여유 속에 즐거운 과거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곳, 바로 영국의 공원들이다.
레스터의 가을은 빈티지한 도시에 잘 어울리는 오래된 정취와 정겨움이 있다. 신기한 것은 가을이 되어도 공원의 잔디는 여전히 초록이다. 한국은 추워지기 시작하면 잔디들이 누런 색으로 변하지만 영국의 잔디는 겨울에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 때문에 그렇다는 이도 있지만 품종이 다른 것인지 변하지 않는 잔디 색과 파란하늘과 더불어 영국은 사계절 내내 청명한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