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함과 무관심은 누군가에겐 상처입니다 “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인 필자는 아이가 없어서 아이와 관련된 정보나 상식이 없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기념으로 백일 사진을 찍고,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며 기념으로 돌사진을 찍는 거 정도는 알고 있다.
유년 시절 어떤 상황이었는지 세세한 기억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서 돌사진을 집에 요청했던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엄마! 나 돌사진 어디 있어? “
“너 돌사진 없어!”
“어? 왜 돌사진이 없어?”
“언니랑 너무 닮아서 안 찍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말 이더냐. 닮아서 돌사진을 안 찍었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상황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침착하게 다시 한번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백일 사진은? 백일 사진은 찍었지?”
“아니 안 찍었어. 요새나 백일 사진, 돌사진 다 찍지 그때는 백일 사진 거의 다 안 찍었어. “
누가 들으면 내가 고려 말 후기쯤 태어나서 살던 사람인 줄 알겠네... 그때도 초상화는 있었을 텐데...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백일 사진도 돌 사진도 전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땐 다 그랬다는
말과 너무 닮아서 안 찍었다는 말로 나의 모친은 나를 점점 착잡한 심정으로 만들었다.
내게는 너무도 관심도 없던 나의 부모. 무관심과 무심함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첫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픈 동생을 두었다는 이유로 나의 존재는 때론 언니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때론 무시하고 넘어가도 존재로 낙인 된 듯하였다.
나의 부모의 행동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당시에 가게 운영이 너무도 바빴을 수도 있고 두 살 터울 딸 둘을 키운다는 게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을 주는 데 있어서 마음을 아끼지 말고 사랑의 대상이 여럿이라면 누구 하나 열외되는 자가 없도록 깊은 사랑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