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으로 던진 돌 하나. 지나가던 개구리 한 마리를 죽이다.‘
나의 부모는 아주 옛날부터 장사를 생업으로 하였다. 그렇다 보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에는 항상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가게에 있었고 우리 가게 앞에는 빠른 89년생의 동년배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어릴 적 대부분의 시간을 보통은 그 친구랑 함께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그 친구의 부모님과도 가깝게 지냈고 그 친구의 아빠와도 친한 사이였는데 아저씨는 허풍스럽고 조금 사람이 가볍고 지금 생각해 보면 동네 여기저기 참견하는 오지라퍼였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오지라퍼 아저씨는 가정에 상당히 참여적인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며 놀러 가면 아저씨가 끓여주던 고기 가득 김치찌개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우리 집은 참치김치찌개 파라서 좀처럼 우리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김치찌개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지라퍼 아저씨는 사람이 가벼워서 그런지 내게 동생이 태어난 직후부터 내 얼굴만 보면 엄마, 아빠가 너는 찬밥만 주지?라고 내게 묻곤 하였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고 나는 아저씨의 장난에 상처를 받았다. 그런 얘기를 아이에게 하지 말아 달라는 나의 부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짓궂고 무례했다.
지금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야.
닥쳐 이 아저씨야!!
그 아저씨는 손이 귀한 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아저씨는 많은 자녀를 낳고 싶어 했다고 하는데 와이프와 의견이 맞지 않아 자녀가 딸아이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자녀가 여럿이었던 우리 집을 부러워했고 그중에 우리 집 막내아들을 가장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부러워서 그랬을까? 나를 괴롭히던 이유가...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은 나는 나도 모르게 항상 밥이 찬밥인지 확인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찬밥이 싫어. 오래돼서 누레진 밥도 싫어. 나는 삼각 김밥도 꼭 데워 먹는 파야.. 나는 그래서 햇반이 편하고 좋더라
타인에게 상처 주지 마세요. 그 상처는 반드시 바람을 타고 강한 부메랑이 되어 당신에게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