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4 차례가 필요해?

by 이마리 정환

벌써 2022년 1월이 지나가고 2월이다. 호주에서는 구정이래야 전혀 감이 없지만 한국은 제일 큰 명절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정을 지내던 시댁 관습대로 호주에 와서도 난 어느새 신정을 지 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호주로 온 후의 차례 문제였다. 남편은 10남매 중 여섯째라 전혀 부모님 제사에 책임이 없었다. 날 편하게 해 주려고 항상 차례 필요 없다고 했다. 큰 형님댁에서 모이던 차례도 형님들이 연로하시고 자손들이 늘어남에 따라 각자 집안 단위로 지내게 되었다.

호주에 온 후 아들 둘은 성탄 때 이어 신정 때도 찾아온다. 가족끼리 새배를 한 후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조상을 위한 기도로 차례 지낸 지 몇 회째 되었다. 며느리들에게도 부담주기 싫어 간단히 우리가 먹는 위주로 차리고 각자 한 접시씩 가지고 와 모였다.

문제는 올 초 신정 때였다. 임신한 둘째 며느리도 힘들 것 같고 내 몸이 불편해 이번엔 차례 생략한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1월 1일 아침에 손자 둘 세배시킨 후였다. 손자 녀석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할머니, 상에 음식이랑 그런 것 놓아야지. 어디 있어요?"라며 두리번거렸다.

순간 나는 전기에 감염된 듯 머리가 띵했다.

"으응, 그거? 그럼 촛대 먼저 놓을래?"

차례 때마다 오누이가 식탁에 촛대는 다 꺼내놓고 놀이처럼 하던 의식을 안 하니 순진한 아이들은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며느리에게 눈치껏 지시했다. 부랴부랴 아이들이 챙긴 촛대 옆에 외가 친가 사진 올리고 과일과 아이들 과자 놓고 병풍만 치고 절을 했다. 그 후 조상을 위한 기도를 손자에게 읽게 하니 더듬거리며 '증조 할라부지'라 발음하며 진지하게 기도문을 읽는다.

절을 하는 내내 가슴이 아리어온다. 작년 코로나로 한창일 때 떠나신 어머니 장례에도 묘소에도 못 간 불효녀가 힘들다는 핑계로 차례도 거를 뻔했으니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던 친정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손자 네를 떠나보내며 후 눈시울이 붉어진다. 뭔가 애틋하고 고맙다. 그래서 며느리들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말한다.

"얘들아, 내년부턴 각자 한 가지씩 음식 해 간단하게 라도 차례 지내야겠다. 로건이 때문에라도. 꼭."

모두 집으로 보낸 후 손자 녀석을 떠올린다. "기특하고도 대단한 녀석. 너 때문에 이 할미가 사람 되었네."

8살 어린 녀석에게도 우리 전통이 몸에 밴 걸까? 아들 며느리에게 힘든 전통을 강요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린 손자가 먼저 전통인지 뭔지 모른 채 차례를 당연히 지내는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그래, 서로가 힘들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간단한 차례 지내기는 우리 집안에서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역시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한국 전통과 문화가 이렇게 이어지나 보다. 손자야, 참 잘했다. 하늘에 계신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널 보고 기뻐하실 거다.

"어머니, 수만리 타국에서 자란 손자가 더듬거리는 한글로 읽어주는 기도는 들으셨나요?"

차례가 필요해? 순전히 손자 때문이야. 즈 엄마도 그리 싫지는 않은 눈치다.

참으로 기억에 남는 2022 신정이었다.

작년 차례상. 양끝으로 한쪽엔 시부모님 사진 , 다른 쪽엔 친정 부모님 사진을 놓고 차례를 지낸다. 올해는 그나마 즉석 차례를 지내게 되니 변변한 사진 한 장이 없다. 아이들은 촛대를 놓고 상보도 씌우고 음식을 늘어놓는 걸 멋진 소꿉놀이로 여기는 걸까. 아무려면 어때~

나도 그렇게 보고 자랐는데 손자들에겐 촛불과 차림상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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