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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홀려 떠나는 주말여행
by 빛에 홀리다 Sep 09. 2018

또 한 번의 아침

빛을 따라서; Big Basin Red Wood State Park



아침이 왔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시간은 언제일까?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늦은 저녁에서 한밤을 지나는 동안 생각도 많아지고 마음도 부드러워진다. 글을 써도 꽤 길게 써 내려갈 수 있고, 사진을 정리하는 아이디어도 이 시간에 주로 떠오른다. 그러고 맞이하는 아침은 지난밤 동안 느슨하게 풀어놓았던 마음을 다시 조여 하루를 잘 살도록 준비하는 시간이다. 쉬면서 충전된 힘을 잘 안배해서 지치지 않도록 하루를 살며, 곤고한 하루의 노동을 잘 이겨낼 수 있게끔 온 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켜 놓아야 한다.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몸의 주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일상도 이렇지 않을까 넘겨짚어본다.


그런데 이런 주기가 크게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녁 시간은 물론이고 아침이 되어도 몸을 긴장시키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지난밤보다 더 느슨해져 밝은 아침 햇살이 피부 깊숙이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 날이 있다. 아침이 된 것이 그저 즐겁고 상쾌하다. 햇빛은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줄기가 아니라 햇살이 마음속 깊이 스며있다 흘러어나오는 샘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상에서도 드물게 이런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대개는 여행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주로 그렇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크리스탈 스프링스 휴게소 뒷 뜰에 내린 햇살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은 게으른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이자 느슨해진 마음으로 햇살의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한껏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길을 떠도는 여행자는 집에서 자는 경우보다는 가던 길 섶 옆 한 귀퉁이에서 눈을 뜨거나 길에서 한 걸음 물러선 곳에 자리 잡은 한적한 곳, 말하자면 숲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모래밭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위들이 널린 틈이기도 한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랜 시간 운전하느라 지친 몸을 따스히 덥혀주거나, 아직은 좀 더 붙여놓고 싶은 무거운 눈꺼풀을 만지작 거리는 햇살의 부드러운 촉감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마치 봄인듯 들꽃들이 흐드러졌다


아침 햇살이 다른 어느 곳 보다도 길 위에 있을 때 더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에서 굳어진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문 밖 세상을 향하여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마음먹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동안 변화는 시작됐을 것이다. 그러다 맞이하는 따스한 아침 햇살은 일상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햇살이 좋다. 아무것도 차별하지 않고 구분하지도 않으며, 나누지도 않으면서 땅위에 있는 것들에 골고루 흩뿌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삶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기를 바라본다.



빛을 따라 흐르다

크리스탈 스프링스 저수지 뚝방길엔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햇살로 다가온 빛은 몸을 감싸고돌다 이윽고 앞장서서 손을 잡아 이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마음을 맡겨 따르다 보면 몸이야 어디에 있든 이미 여행길이다. 이런 말로는 많이 모자라기는 해도 달리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들이 베푸는 따스한 느낌을 끝까지 받아낼 만한 깜냥도 되질 않는다.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은 자주자주 그랬다. 채 날이 밝기 전에 눈을 뜨고 떠오르는 해와 당당히 맞서 보겠노라고 다짐해보아도 막상 햇살은 이런 나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넘쳐나는 빛을 세상에 뿌리다 못해 온통 하늘을 꽉 채워놓는다. 그의 점 하나 탐닉했을 뿐인데 몸은 이미 벌겋게 달궈졌다. 당연하다. 난 그의 일부고, 그는 이미 나의 전부를 넘어섰으니....



꼼짝도 못 할 만큼 옥죄는 것도 아닌데 그의 이끌림에 따를 수밖에 없다. 저 산마루 능선 위 우뚝 선 나뭇가지 꼭대기부터 흙먼지 폴폴 날리는 바닥에 이르기까지 햇살은 가득해 어디를 가든 그들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러니 아무래도 내 눈엔 그들이 나를 잡아끄는 것만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이미 그들에게 사로잡혔으니 아무리 아닌 척해봐야 소용없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옅은 가을이 묻어난다.



길섶에 함부로 난 풀잎을 농락하는 햇살이 눈부시다. 그들 사이에서 뻗뻗하게 고개를 쳐든 들풀들의 시위는 또 어떤가! 감히, 그렇다 감히 그들의 유희를 방해하고 나설 것은 세상에  없다. 이들을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말을 건네본다.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날짐승은 날짐승대로, 그리고 눈에 띄진 않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헤아릴 수 없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은 또 그들대로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만큼씩만 햇살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거듭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 다름이 아닐 텐데, 이들에 비하면 우리들의 모습이 참 많이도 초라해 보이고 작아 보일 수가 없다.


아침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가!

그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들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Windy Hill Open Space Preserve


다른 모습을 한 생명들이 있다. 겉이 다르니 속도 다를 수 있겠거니 하다가도, 겉은 다르나 속은 다르지 않은 것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겉보기에는 그저 누렇게 시든 풀들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겉보기'에 그리 보인다.  마치 가을빛을 닮았지만, 이들은 봄부터 저랬다.



때론 썩어 다른 이의 거름이 되고,

때론 여전히 꼳꼳해 다른 이의 바람막이로 산다.

그들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 핏기가 돌아

다음을 위해 생명을 간직한 채 짙푸른 하루를 맞이한다.

아직 햇살 가득한 하늘엔 따끈한 바람 한 줌 스치고,

흔하게 자리한 생명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겨울을 준비한다.



마침내 빛에 홀리다



나무는 모여 숲이 되고, 숲은 모여 호흡이 된다. 숲이 숨 한 번 깊이 들이쉬면 세상은 맑아지고, 그들이 숨 한 번 크게 내쉬면 퍽퍽한 심장 요동을 친다. 숲 속 깊숙이 파고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이 여름을 지내느라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키다리 레드우드가 모여사는 숲엔 한낮에도 아침 햇살이다. 그곳을 걷노라면 온종일 아침일 수밖에 없다. 파란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과 키다리 레드우드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기운으로 숲은 온통 아스라이 신비경이다.



길은 길대로, 숲은 숲대로 햇살을 받아 저마다의 모습으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홀로 있든 함께 어울리든 자기가 맡은 바를 묵묵하게 해냄으로써 하나의 숲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미루어본다. 오랜 시간을 그곳에 서서 하늘과 땅과 그 사이, 그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뎌온 그들은 오늘 맞는 새로운 햇살, 그 빛에 자신을 내어 맡길 뿐이다. 그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거닐다 문득 그들 위로 스미는 빛에 홀렸다.



어둠은 빛의 뒷모습


숲 속의 아침은 게으르고 저녁은 부지런하다. 숲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숲 속 깊이 한가로이 자리 잡은 야영장엔 저마다 사연을 안고 하룻밤 신세 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떤 이의 움막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다른 이의 움막엔 웃음꽃이 피어올라 어렸을 적 살던 마을 한편 작은 초가집에서 맞던 저녁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여기저기서 쌀쌀해진 숲의 공기를 데우려 모닥불을 피우고, 그 냄새가 자극했는지 문득 아련한 젊은 시절 한 때가 떠 오른다.



밤은 그 나름대로 빛이 살아가는 시간이다. 낮동안 숨죽이며 잠들어있던 작은 불빛들이 강렬한 햇살이 잠든 틈을 타 자신의 소임을 다 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밤은 빛이 없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빛들이 활동을 하는 낮의 뒷모습과 같다.


움막들마다 작은 등불 켜지고 활활 타는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가 한창이고, 여기저기 새살거리는 소리에 늦은 여름밤이 깊어간다. 키다리 레드우드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밤하늘엔 빛 가루 뿌려놓은 듯 별빛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이런 곳에선 별이 더 잘 보이기는 하지만, 숲속에선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


또 한 번의 아침


숲 속의 아침은 천천히 온다. 밖은 이미 훤한데 숲 속은 여전히 새벽이다. 동굴 이야기가 생각났다. 동굴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만큼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양철학사에서 동굴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야기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고 다른 하나는 근대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동굴을 등장시켰고, 베이컨은 편견을 설명하기 위해 동굴을 이야기했다. 둘 다 동굴의 폐쇄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안과 밖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동굴의 비현실적인 모습이 그들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굴이 그들의 이야기에 등장한 까닭은 동굴이 외부보다 늦게 빛을 받아들여 생기는 차별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벽녘 어스름한 햇빛이 숲에 스민다


아침 햇살이 찬란한 아침에 왜 동굴 이야기가 생각났을까? 숲으로 찾아오는 아침의 이런 방식 때문인 것 같다. 빼곡히 들어선 큰 키의 나무들 때문에 햇살이 숲으로 스며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시간 차이 때문에 숲의 바깥쪽보다 숲 속이 어두워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숲은 이래저래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산책이 주는 유익함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햇살이 쏟아지는 이 아침에 떠오른 동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숲 속 밖에 이미 온 아침이 아직 숲 속엔 다다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아침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에게 안과 밖이 따로 있지는 않아도 이런 경우 숲의 밖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만한 아침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서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들이, 결국은 숲의 안과 밖의 상황처럼, 다르지 않은 것들을 다르게 판단하여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이다.  


키다리 레드우드 숲엔 아직 빛살이 미치지 못했다


햇살이 어디를 비추든 아침 햇살은 밝고 싱싱하다. 천천히 내리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화-악 숲 속 깊이까지 스며든 햇살이 밤새 쏟아지는 별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리를 지켜준 텐트를 토닥인다. 아침이 오자 야영장은 어젯밤의 어둠과 별빛이 빚어낸 황홀한 잔치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떠올려도 햇살 비치는 숲 속의 아침 풍경을 보면서 어둠과 불빛의 조화를 기억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장을 챙겨 떠나는 길엔 따스한 햇살이 완연히 스며들어 발걸음을 아쉽게 만든다. 번의 아침 햇살과 숲 속의 하루를 지나며 지난여름 더위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은 어느덧 회복되어 또다시 새로운 일상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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