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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Oct 23. 2018

캘리포니아의 비경, 레이크 타호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늦은 9월 어느 주말, '때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라고 쓰고, '가을 마중을 다녀왔다'라고 읽어본다. 세월은 어쩔 도리가 없고, 또한 사는 일도 그렇다. 그런데도 때마다 새롭다고 느끼는 까닭은 지금까지 흐른 세월의 무게 때문이지 않을까?  많은 경우 일이 지나고 나면 늘 아쉽다. 거기에 쏟은 시간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어떤 때는 더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오히려 더 아쉽기도 하니 말이다. 이번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여행의 끝자락에 오면 다시 떠날 길을 준비하게 되는가 보다.


실버레이크 엘도라도(Silver Lake El Dorado) 야영장     
금요일 저녁, 일상에 지쳐 나른해진 몸과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화살받이가 된 가슴, 아직도 빼내지 못한 살 하나 남은 마음 안고 떠나는 길에 특별한 무엇인가 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졸음에 겨워 꾸역꾸역 운전하던 밤하늘에 느닷없이 살별 하나 긴 꼬리를 문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새벽 네 시에 도착해서, 부지런히 텐트 치고 다섯 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주말을 이용하는 여행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니는 일에 맛을 들인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이동하고 머물다 살피려면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리고는 아침 아홉 시쯤 눈곱을 떼고 아침을 해결하면, 토요일 하루는 꽉 차게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길을 떠났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 눈 비비고 바라보니 햇살이 찬연하다.

야영장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햇살을 받은 땅은 금빛으로 반짝여 별 일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숲 속에 있는데도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날린다. 캘리포니아는 물 부족 지역이다. 지난해에 꽤 많은 비가 내려 가뭄은 면했다고 했는데도 앞날을 위해서 공식적으로 물 부족 지역으로 지정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물을 함부로 쓰는 이에게는 그에 알맞은 벌칙을 주거나 때로는 돈으로 물어야 하기도 한다. 일상이 이렇다면 오락에 해당하는 캠핑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많은 곳에 물이 끊기거나 가끔씩 나온다. 필요한 물은 가지고 가야 한다. 야영을 하며 몸을 씻는 일은 생각도 못한다.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야영을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야외 활동을 줄이지는 않는가 보다. 사람들이 불편한 야외 활동을 더 좋아하는지 야영장마다 자리 잡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보니 말이다.


지난밤 캄캄한 새벽녘에 왔으므로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침을 바르고 야영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기로 했다. 이미 해가 중천에 있어선지 야영장 이곳저곳 깊숙이 햇살이 스몄다. 아직 9월인데도 새벽녘에는 거의 영하에 가까워 두툼한 옷을 입고 잠을 청해야 했는데,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적시니 걸을만하다. 아침 햇살이 주는 느낌은 참 따스하면서도 신비하다. 햇살은 강렬하다가도 어느 순간 나뭇잎을 감싸 부드럽게 빛나며 쌀쌀한 밤을 지켜낸 생명들을 보듬으려 어루만진다.

▲ 노랗게 물든 키작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아니, 어쩌면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풀잎들이 반짝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가 아침이면 그들이 흘러나와 환히 빛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상관없다. 그들에게서 번져 나오는 빛 때문에 몸이 따스해지고, 상쾌한 산책을 할 수 있으면 됐다. 그게 햇살인지 빛살인지 대수겠는가? 그런 그들에게서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아직 농익지 않고  뭐랄까 달콤 쌉싸름 시금털털하달까. 그래서 더 좋다. 앞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더 많으니까.


오이스터 레이크(Oyster Lake)

▲ 캠프 그라운드 가운데 쯤에 있는 작은 연못인 오이스터 레이크(Oyster Lake)

나뭇잎을 맴돌던 햇살이 수면 위로 떨어지면 어떨까? 아마도 물속 깊숙하게 파고들어 더는 빛으로 살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햇살은 사그라드는 법이 없다. 어디로 스미든 어디에서 되 튀든 그들은 찬란히 살아 자신의 역할을 다해낸다. 수면 위로 떨어진 햇살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그들은 빛으로 다가와 내게 훈수 한번 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이다. 빛이 빚어내는 세상은 그래서 더 오묘하다.  


▲ 연못 가장자리엔 아기자기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기분을 말하자면 썩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아침이었지만 살짝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솔직히 걸어서라기보다는 아침 햇살이 부린 수작 때문이리라. 그 수작에 넘어가 마음마저 뺏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바위에 내려앉은 햇살은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저 가냘프면서도 질기 궂은 이끼라고 가만 놔두질 않는다. 그들 깊숙이 파고들어 숨을 쉬게 하고, 안식을 얻게 한다. 죽은 듯 보이던 나무줄기를 보라! 본래 자신들이 뿌리내리던 흙이 아니라고 해서 결코 그들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었다고 보는 것은 사람들의 입장일 뿐, 저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생명의 토양이 되고,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 이쪽과 저쪽이 달라 보이는 것은 그저 잘못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계는 어디에나 있다. 없는 듯 한 곳에도 눈여겨보면 있게 마련인 것이 경계다. 다만 이곳에서 저곳, 혹은 저곳에서 이곳으로 왔다가는 통로일 뿐 이 경계가 차이나 구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경계에 서기를 꺼릴 까닭이 없다. 아니, 오히려 경계에 서면 이곳과 저곳을 모두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합치거나 어울리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어떤 이들은 경계에 서기를 즐겨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경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일부러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경계에 서있다고 모두가 경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계에 서 있으면서 그 경계를 알아차려 경계의 이쪽저쪽을 두루 살피려고 하는 사람을 경계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는 경계에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오늘의 내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숲 속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아침 햇살이 빚은 빛과 그림자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실버 레이크(Silver Lake)

▲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거나 나룻배를 타는 이들

실버레이크는 야영장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작은 호수다. 작다고는 하지만 야영장 안에 있는 연못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작은 배를 띄워 낚시를 하거나, 호숫가 한적한 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하다. 바닥이 보일 만큼 물이 맑아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왜 호수 이름이 '실버'인지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호숫가 주변에는 회색 빛 바위들이 줄지어 있었다. 산에 자라는 나무들이 모두 침엽수인 것을 보면 이곳의 해발고도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만큼 겨울이 되면 눈도 많고 기온도 많이 내려가 추울 수 있다.


▲  야영장과 호수 사이에 있는 걷는 길엔 듬성듬성 가을이 내렸다.

나무도 물도 그저 푸르기만 한 그 은빛 호수에서 눈치 없게도 가을빛을 찾았다. 계절의 빛깔은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나기 마련이어서 침엽수만 가득한 그 숲 속에 홀연히 활엽수 몇 그루가 등장했다. 게다가 가을빛이 어디 나무만 드러낼 수 있는 빛깔이던가! 꽃도 있고 풀잎도 있고 하다못해 바위들도 낯빛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 가을 아니던가. 그뿐만 아니라, 늘 푸르게만 보이는 저 침엽수들 조차도 눈여겨보면 가을빛을 띄는 것을. 그렇게 세상은 시나브로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케이 플스 레이크(Caples Lake), 레드 레이크(Red Lake)

▲ 케이플스 레이크엔 바람이 제법 거세다.

레이크 타호 주변엔 상당 수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 고도가 높아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호수들이 대부분이라서 여름에도 발을 오래 담그고 있기 어려울 만큼 차갑다. 호수 주변에 있는 산들은 지면에서 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아도 해발고도는 높아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응달인 지역은 거의 만년설에 가까울 만큼 일 년 내내 눈이 쌓여있는 곳도 있다. 케이 플스 레이크가 있는 지역도 해발고도가 약 2,400여 미터에 달하므로 주변에 있는 산들은 3,000미터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고 있어 이 날도 산의 응달지역에 남아있는 눈을 볼 수 있었다.


▲ 산의 봉우리 언저리에 하얀 눈이 남아있다.

캘리포니아 전체로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호수가 많다. 특히  씨에라 네바다 산맥의 산악지대에 있는 호수들은 대부분 산정 호수들이라 눈이 녹아내려 형성된 호수다. 따라서 물이 맑고 깨끗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레이크 타호나 그 근처에 있는 호수들도 씨에라 네바다 산맥에 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레이크 타호 만 좀 별나게 크다.  


케이 플스 레이크도 다른 호수들과 마찬가지로 배를 띄울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호수 주변에서, 또는 배를 띄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이날은 바람이 좀 있고 날이 쌀쌀했던 탓인지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의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최근에 물고기를 풀었기 때문에 어떤 곳에 가면 낚시가 잘 될 것이라고 귀띔해준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일 년 치 낚시 퍼밋을 구입하고 말았다. 그런데 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퍼밋의 유효기간이 12월 31일까지인데, 년 중 언제 사더라도 12월 31일까지 밖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월에 사면 2달 밖에 사용 못하면서도 돈은 일 년 치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은 자연보호에 꽤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낚시와 사냥을 관리하는 별도의 정부기관이 있고 누구든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가져가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물고기든 동물이든, 나무든, 돌이든 무어이든지, 바다든, 호수든, 땅이든 어디에서든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그에 해당하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바다 생물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물고기와 전복은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며,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하루 캘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은 다른 경우도 비슷하다. 그 대신 낚시의 경우 부화장에서 부화시켜 키운 물고기를 때때로 호수에 풀어서 낚시하는 맛을 즐기게 한다.


▲ 카슨 패스에 있는 레드 레이크(Red Lake) 전경

레드 레이크는 타호로 가는 88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PCT(Pacific Crest Trail)의 중간에 해당하는 키트 카슨 패스(Kit Carson Pass)를 지나면서 나온다. 이 호수는 그러나 근방의 다른 호수들과는 달리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은 겨울에 얼음낚시로 이름난 곳이다. 지대가 높고 기온이 낮아 이른 겨울부터 늦은 봄까지 얼음이 녹지 않아 겨울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카슨 리버(Carson River)

▲ 타호로 가는 길에 만났다

물은 많은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다. 그러므로 물이 있는 곳에는 많은 종류의 생명체가 모여사는 것이 당연하다. 물고기나 갖은 짐승들은 물론이고 냇가에 줄지어 살아가는 키 작은 나무들이며 풀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까지 그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어디를 가든 이런 물이 있는 곳은 거의 빠짐없이 들리는 까닭은 바로 이런 많은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다. 그들에게도 치열함이 있고 생존을 위한 노력이 있겠지만, 어쨌든 어울려 사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 사람들이 꾸려가야 할 삶의 모범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레이크 타호(Lake Tahoe)

▲ 레이크 타호의 캘리포니아 영역

레이크 타호는 이번 여행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장 큰 호수로 많은 이들이 다녀와서 한번 가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기 때문에 여행의 중심에 놓고 그 밖의 호수들을 여행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실망까지는 아니고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서 좀 서운했다고 할까.


여행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공공정책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나, 특이하거나 역사 가치가 있는 곳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사유화해서 특정인이 독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사유지라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호수의 주요 부분은 사유화되어있어 접근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주정부에서 소유하거나 연방정부에서 소유한 곳은 다행히도 공원으로 지정되어 돈을 내면 들어갈 수 있다.

     

▲ 타호의 네바다 지역

슬프게도 타호의 대부분 지역은 사유화되어있기 때문에 개인 별장, 상업지구 등으로 개발되어 개인의 접근이 금지된다. 그러므로 타호에서 몰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크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커다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위 사진은 네바다 지역에 있는 글렌 락(Glen Rock) 주립공원으로 입장료는 10달러다. 배를 띄울 수 있는 시설이 있고, 간단한 휴식 공간, 그리고 낚시가 허용된다. 이곳에서 보이는 글렌 락(첫 번째 사진)의 모습이 이채롭다. 


낚시를 할 때는 잡을 수 있는 마리를 제한하여 물속 생물을 보호한다. 산이나 들에 가면 그곳에 있는 어떤 것도 허가 없이는 따거나 가져올 수 없다. 어기는 것은 자유지만, 걸리면 많은 벌금과 그다음의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바닷가나 호숫가, 아니면 산과 들의 특정지역은 뭉터기로 개인들에게 팔아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이 함부로 개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유지인 한 그들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개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의 보전이라는 측면과는 배치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소밀 폰드(Sawmill Pond)

▲ 작지만 꽤나 멋드러진 경치가 좋다

이곳은 말 그대로 작은 연못이다. 낚싯대를 드리울 곳을 찾다가 이곳을 발견했는데, 작은 연못임에도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곳은 아쉽게도 14세 이하 어린이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낚을 수 있는 물고기도 3 마리를 넘기지 못한다. 이곳에서 만난 어린 친구는 고기를 낚으면 바로 놓아주고는 했는데, 아마도 그렇게 3마리 제한을 피해 낚시 훈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폴른 리프 레이크(Fallen Leaf Lake)

▲ 동쪽 호숫가에서 바라본 호수

폴른 리프 레이크는 타호와 불과 2-3마일 떨어져 있는 호수다. 비교적 크기가 커서 배를 띄워 낚시를 하거나 수상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호수의 서쪽 가장자리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고, 남과 북쪽은 모두 사유지다. 그리고 서쪽 가장자리는 대부분 사유지고 아주 일부분만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어 낚시도 하고 배도 띄우고 하게 된다. 호수 주변으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소풍용 식탁도 몇 개 마련되어 있어서 도시락 싸들고 소풍 하면 딱 좋을 곳이다. 


▲ 서쪽 지역에서 바라본 호수

호수 서쪽엔 배를 대고 보관할 수 있는 독이 마련되어 있고, 작은 모래밭이 있다. 주차장 한 구석에 작은 찻집이 하나 있다. 페리오에 마련된 식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차 한잔 하면 근사하겠다 싶다. 다행히도 호숫가는 일부가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내려가 잠시 일렁이는 호수를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늦은 오후에 기온이 좀 낮은데도 연습을 하는지 수상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이 호수는 다른 호수들에 비해 좀 적막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지나온 다른 호수들이 서툰 가을빛으로 인해 살짝 들뜬 느낌이라면, 주변이 짙푸른 침엽수 숲으로 둘러있어서 빛깔이 어두워서 그런지 무겁고 답답하다. 저녁 무렵 산 그림자를 헤집고 비쳐오는 햇살에 하늘이 불그레해지자 그제야 조금 볼만 해졌다.


▲ 야영장은 한창 때가 지났는데도 빈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저 호수 건너 숲 속에 꽤나 넓은 캠프 그라운드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 이틀을 묵었는데, 가을이라 솔방울이 비 오듯 떨어져 혹시 머리 위에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한 번도 맞질 않고, 텐트 위로도 떨어지지 않아 안전하게 캠핑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솔방울들이 있어서 장작 걱정 없이 모닥불을 지필 수 있었다.


▲ 저녁을 준비하는 갈매기들

저녁 무렵이 되자, 자맥질하던 갈매기들이 바빠졌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호수다. 그런데도 바다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하긴 요즘은 갈매기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먹이를 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물고기들이 어두워지기 전 먹이를 잡기 위해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런 물고기를 잡으려는 갈매기들도 분주해진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 표현은 좀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런 말이 나오는 문맥은 대체로 강자의 횡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경우가 많은데, 그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승자 독식이 오히려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돼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개입이 없는 경우엔 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자연은 그러한 먹이 활동을 통해 적정 개체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생존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릴리 레이크(Lily Lake)

▲ 작은 연못이지만 풀이 많이 자라고 있어 물고기도 많다. 주변 경치도 참 아름답다.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를 말하라면 '우연한 만남'을 가장 먼저 꼽고 싶다. 사실 릴리 레이크를 가려고 나선 것이 아니라, 야영장에 붙어있는 폴른 리프 레이크의 건너편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호수를 따라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이정표가 나왔고, 어떨까 궁금해서 따라 들어가 보았을 뿐이다. 들어가는 길이 겨우 차 한 대 지날 수 있을 만큼 좁은 비포장 도로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호수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종류는 바로 이렇게 호숫가에 수초가 수북하고, 나무와 수풀도 무성하여 많은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레이크 타호처럼 크고 맑지만 그저 사람들의 놀이터로 바뀐 곳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런데 이 호수를 처음 봤을 때 그 풍성한 생명의 기운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할 수만 있으면 좀 더 머물고 싶어 지는 곳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잦아들면서 조금씩 기울어지자 호숫가엔 온통 빛잔치가 열렸다. 이곳의 특징이랄 수 있는 바위산에 쭈뼛하게 솟은 가을 풀잎들이 제 빛깔로 반짝이고, 살짝 아주 살짝 호숫가를 두른 침엽수의 짙푸른 잎들마저 빛나기 시작한다. 아뿔싸! 게다가 물속에 한가로이 뿌리내린 물풀들은 이에 뒤질세라 눈이 부셔 차마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빛에 녹아든다. 그러다 문득 호수의 터줏대감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런 토박이 생물들, 살아 움직이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런 짐승들, 그래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반갑지 않은 듯 돌아서 버리는 이런 다람쥐들에게 훼방꾼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본다.


아, 가을이네!

▲ 그리 넓지 않은 곳에 사시나무 단풍이 농익었다.

떠날 때가 돼서야 코 앞에서 가을 만났다. 아마 고도가 높아 먼저 가을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이곳은 하이 씨에라 산맥의 북단에 해당하는 곳이다. 봄에 야생화는 낮은 곳에서 시작하고, 가을 단풍은 북쪽, 높은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 정도의 단풍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만나니 높랍고 반갑다. 캘리포니아에서 단풍으로 이름난 곳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동남부에 해당하는 비숍이다. 비숍 주변의 단풍도 고도에 따라 물드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그곳도 고도가 높은 산간지역은 이미 가을이 성큼 다가왔겠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낮은 지역은 아무래도 10월 중하순이나 돼야 완연한 가을을 만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단풍은 아스펜(Aspen 사시나무)이 많아서 슬쩍 보면 은행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에 넋을 잃게 된다. 어떤 이들은 노랗기만 한 캘리포니아의 단풍을 제대로 된 단풍으로 보아주질 않는다. 단풍이란 모름지기 울긋불긋해야지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시나무라고 다 노랗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까이서 이리 보고 저리 보다 보면 비치는 햇살이 다라서 그 잎들은 노랗다가 샛노랗고, 누런 듯하다가 노르 끼리 하고, 노릇노릇하다가 노르스름한 것 까지 천변만화의 빛깔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가끔씩은 다른 빛깔의 단풍이 섞여있기도 하니, 그저 힐끗 바라보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가을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제법 가을이다. 시월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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