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 여행의 첫 출발지로 삼고 있는 이곳을 무슨 아지트 인양 벌써 세 해째 찾아들고 있다.
자이온 국립공원과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을 양편에 두고 있고,
주변에 스키장과 공원 따위가 널려 있어서 겨울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 바로 시더(Cedar City)다.
그 가운데서도 시더 캐니언의 물줄기를 따라 난 도로 '시더 캐니언 로드'의 길 안쪽에 옹기종기 마련된 비공식 야영장들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다.
다른 해와 달리 이곳엔 벌써 한겨울이다.
여기는 그동안 많이 추웠는지,
폭포에는 더덕더덕 겨울이 붙어있다.
▲ 시더 캐니언 로드(Cedar Canyon Rd)가 시작하는 곳에 있는 야영장 옆 개울
겨울이 좀 일찍 찾아왔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다, 좀 살펴보니 그동안 비가 많았는지 땅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잔뜩 웅크리고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 동쪽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드는 것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한 술 뜨려는데 빗방울이 툭툭...
그렇다고 서두를 것은 없다. 비를 좀 맞으면 어떤가?
캘리포니아에선 맞아보기 힘든 비가 아니던가!
▲ 시더 캐니언 로드 오르막 구간
그러나 마음을 들켜버렸다.
여유를 부리며 몇 술 뜨는 사이 빗방울은 금세 하얗게 나풀거리며 하늘에서 춤을 춘다.
"이얏호!"
"눈이다!"
산을 오를수록 눈발이 굵어지고,
이내 세상은 온통 하얀 나비 나풀거린다.
우르릉 거리며 지나는 제설차가 설국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산 중턱엔 눈인지 안개인지 눈앞이 흐릴 만큼 뿌옇다.
▲ 시더 캐니언 로드 중턱
"드디어!"
이게 얼마만인가, 펄펄 날리는 함박눈 사이에 서있는 것이.
오랜만에 맞이하는 함박눈에 취해 한참을 서있었다.
날리는 눈송이들마다 눈을 맞추니,
그 사이로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이 아련하다.
첩첩산중 시골 마을에 눈이 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마을 앞 논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겨울 추수를 끝낸 빈 논은 널찍하니 뛰어놀기에 그만한 곳이 없었다.
딱히 가지고 놀만한 도구나 기구가 없어도,
"00야, 밥 먹어!"
집에서 부르기 전까지 논 바닥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러다 퍼뜩 철퍽거리며 지나는 차들 소리에 서둘러 길을 나선다.
▲ 나바호 호수(Navajo Lake) 모습과 호수로 들어가는 길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서다 저 아래 나바호 호수(Navajo Lake)가 보이는 곳에 내려섰다.
지난해엔 살얼은 호수를 보며 겨울을 느꼈는데... 해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미처 스노 체인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사시나무 사이로 사박사박 눈을 밟고 싶었는데.
저 멀리 아득한 사시나무 숲에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 덕 레이크(Duck Lake)의 설경
몇 년 전, 막 주말여행을 시작할 무렵,
구글 네비의 지령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참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하얗게 쌓인 눈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머물다 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즐거운 기억이 한동안 남아 다음에 한 번 더 가고 싶은 마음에 지도를 뒤적여도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곳에 들러 둘러보니 여기가 바로 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