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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Dec 23. 2018

미국의 비경, 밸리 오브 더 갓

신들의 골짜기에는 신이 없다.

"오기를 잘했어!"


멕시칸 햇에서 겨우 십분 거리에 신들의 골짜기(Valley of the Gods)가 있다.

163번 큰길에서 들어가는 동쪽 입구에는 이정표도 없다.

네비 없이 찾아갈 거라면 미리 파악해 두고 주의해야만 한다.


신들의 골짜기는 모뉴먼트 밸리와 비슷하다.

다만 신들의 놀이터가 크기가 좀 작고 봉우리들이 모뉴먼트 보다 더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다르다.

게다가 여기는 공짜다. 관리 사무실 같은 것이 없다.

더 좋은 것은 공원 곳곳에 차를 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 야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착했을 때는 노을만 남기고 해는 이미 지고 없었다.  

서둘러 하룻밤 신세 질 만한 곳을 찾아들었다. 괜찮은 곳은 벌써 사람들이 차지했지만, 그래도 아직 머물만한 곳이 남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자리를 잡고 서둘러 몇 장 찍었다.

▲ 신들의 놀이터에 해가 지고 있다.  ©Traveler's Photo


어느덧 붉은 기운도 사라지고 하늘엔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 서둘러 저녁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하늘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차에 오호! 달이 뜨고 있다.


"무슨 달이, 해 뜨는 줄 알았네"

"오늘 별 사진을 다 찍었네!"


텐트를 치지 않고 차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저녁에 딱히 할 일이 없어 너무 일찍 자게 된다는 것이다. 장작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모닥불을 피울 수도 없고, 가스히터를 하나 장만하기는 했지만 추운 겨울에 밖에서 몸을 녹일 만은 못하다. 그렇다고 차 안에서 무엇을 하자니 그러기에는 공간이 좀 좁다. 그래도 여름에는 좀 낫다. 해도 길고, 밖에 앉아 두런거리기도 괜찮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일곱 시에...

▲ 달이 떴다. ©Traveler's Photo


"아~ 추워!"


성애가 하얗게 낀 차문을 여니 찬 공기가 확 몰려든다.

으흐~, 움츠린 몸 한 번 털고 산책 한번 해볼까?


엊저녁 어두운 참에 무엇이 있나 둘러보질 못했기 때문에 한번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의자며, 냄비며, 식탁까지... 지난밤 밖에 놓았던 것들이 서리가 앉고 꽁꽁 얼었다.


엊저녁 떠오른 달이 아직도 있네!

얼른 사진기 챙겨 해돋이를 치고 사진 한 장 찍고,

둘러보니 저만치 동쪽 하늘이 불그레하다.  

▲ 나는 해가 아니다. ©Traveler's Photo


사막에서 멋진 해돋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평선에서 뜨는 해는 그냥 불쑥 올라와 버린다.

눈을 돌려 서쪽을 바라보면 불그레한 햇살에 아침이 반짝인다.

아침이 일어나 쥐 죽은 듯 조용한 신들을 들깨워놓는다.

▲  아침 햇살에 타오르는 뷰트들 ©Traveler's Photo


날이 추우니 급히 따끈한 국물을 만들어 몸도 녹이고 든든히 아침을 해결했다.

이제 신들의 놀이터를 본격적으로 탐험할 차례다.

다음 지도처럼 길은 하나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상관은 없다.

163번 길에서 들어섰으니 동쪽으로 모두 17마일을 가면서 천천히 둘러보면 된다.

[Source=https://bluffutah.org/valley-of-the-gods/]


어? 뷰트에 이름이 있었네?


이름은 무엇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각인해 버리면 다르게 보기가 어렵다.

처음엔 이름을 모르고 만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원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에 취했을 뿐이다.  


길을 포장해놓지 않아 좀 꺼려진다면 걱정할 것 없다.

비포장이기는 하지만 거의 포장한 도로와 같다.

다만, 먼지가 좀 나고 자갈이 있어 너무 빠르게 운전하면 돌이 튈지도 모른다.

이점만 조심하면 승용차로도 편안하게 둘러볼 만하다.

단, 눈. 비가 오면 진흙탕 길이 되므로 승용차는 삼가는 것이 좋다.

▲ 먼지 폴폴  달려가는 저 차는 승용차다. ©Traveler's Photo


여기 뷰트들의 모양과 땅은 막상 둘러보니 모뉴먼트 밸리와는 조금 다르다.

모뉴먼트의 뷰트들이 주로 모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는 좀 더 단단한 바위가 많이 섞여있다.

크기도 작은 것이 형제가 아니라 이웃사촌쯤 된다.


이런 모양이 만들어진 것이 250만 년이나 됐다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지금도 비바람의 영향으로 조금씩 모양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는 아니라도 몇십 년이 지나면 이들의 모양이 좀 달라지려나?

▲ Rooster Butte ©Traveler's Photo
▲ Lady in the Bathtub? ©Traveler's Photo


사물을 가까이 살피는 것과 한발 물러서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사물을 달리 보게 되므로

한발 물러서는 일은 그저 거리의 문제나 보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물건을 톺아보기는 어려워도 그들의 테두리나 그들이 앉아있는 위치와

다른 물건들과의 사이가 어떤지를 알게 된다.


그렇다고 늘 한발 물러설 수는 없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살피고 함께 숨을 쉬려면

다가가는 일 밖에 다른 길은 없다.

▲ 길 건너에서 본 Buttes ©Traveler's Photo


그러나 저러나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일까?

뜻밖에 여기를 찾는 이들이 적다.

17마일을 다 도는 동안 공원에서 밤을 지낸 이들 말고는 들어온 이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모뉴먼트 밸리보다 이름이 덜 알려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절반을 돌아나가는 길 ©Traveler's Photo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가을에 다시 오고 싶다.

공원에 단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춥지 않고 덥지도 않을 때 막사를 치고 야영을 하면 좋겠다.

쏟아지는 별을 잘 담아두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


괜찮다면 모닥불 피우고 밤새 두런거리는 것도 좋겠고,

알맞은 숯불에 감자, 고구마, 옥수수 구워 출출한 배를 달래야겠다.

바로 그런 이들의 놀이터, 신들의 골짜기가 아닐까?

▲ Castle Butte ©Traveler's Photo


17마일이 거의 끝날 무렵 뜬금없는 건물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카페로 이용하고 있는 상업용 건물이다.

좀 의외이기는 한데, 잠시 들려 차 한잔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건물은 매물로 나와있었고, 가게 문은 닫혔다.

▲ 카페 건물은 배경과 잘 어울리는 빛으로 서있다 ©Traveler's Photo






다음 이야기는 '오르막 길 Muley Poin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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