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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Dec 28. 2018

크리스마스에 뭐했어?

말리부 라군 주립 해안(Malibu Lagoon State Beach)

"크리스마스에 뭐했어?"


크리스마스 이튿날 아는 사람이 전화로 물어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글로 정리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말리부 해안을 다녀왔다.

보통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는 크리스마스 전에 다 치러지기 때문에

정작 크리스마스 날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조금 심심하겠다 싶어 바람이나 쐴 심산이었다.


오늘 다녀온 곳은 말리부 해안에 있는 아주 작은 공원 '말리부 라군 주립 해안'이다.

이곳은 말리부의 긴 해안선 가운데 일반인에게 개방한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다.


보통 '말리부'하면 무엇을 떠올리는지 잘 모르겠다. 검색을 해보니 자동차 이름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동네 이름으로 말리부는 바다 경치가 좋은 곳, 또는 엘에이 여행할 때 꼭 한 번 들려야 할 곳으로 추천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동네에 있는 유명 미술관이나 식당 또는 숙소를 거론하면서 한번 들려 허영심을 채워봐...라는 의도의 글이 많았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리부의 또 다른 면모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선입견 일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말리부'하면 유명인이 사는 '부자 마을' 정도로 여길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매력이 있는 곳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동안 말리부 바닷가를 꽤 여러 번 지나면서도 한번 들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작 말리부 바닷가를 멀리한 데는 다른 데 있다.  말리부 바닷가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몇 마일이나 이어지는 해안선은 몇몇 곳 빼고는 거의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구글 위성 지도를 한 번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문을 열면 바로 모래밭으로 나갈 수 있게 지어진 집들이 해안선을 따라서 빼곡하게 이어져 있다. 이런 까닭에 이곳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고, 바로 얼마 전에 이곳에 있는 집이 LA에서 역대 가장 비싼 값에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무려 1억 1천만 달러).


처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처음부터 사유지로 허용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말리부에는 카본 비치(Carbon Beach)라는 모래밭이 좋기로 이름난 약 일 마일 정도의 구간이 있는데, 그동안 이 해안에 집을 지은 사람들이 모래밭까지 막아놓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아왔다. 그러다 최근에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두어 곳에 개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 구간에 있는 집 가운데 하나가 앞에서 말한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 동그라미 부분이 얼마전에 열린 개구멍이다. [Source=Google Map Capture]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마을과 가까운 팔로스 버디스, 상 페드로, 롱 비치, 레돈도 비치, 맨하탄 비치 등이 훨씬 낫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상업시설이 그리 많지도 않아 깨끗하다. 그런데도 이번에 말리부를 찾은 까닭은 그래도 좀 덜 가던 먼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말리부 피어를 지나 공원을 알리는 입간판을 만날 수 있다. 주차요금은 한 시간에 3불이고,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사람은 공짜로 드나드는 모양이다. 라군(Lagoon)은 석호라고 하는데, 석호(潟湖)라는 말이 어렵다. 순화한 말로 '바다 자리 호수'다. 바다로 흘러드는 민물 줄기가 바다의 모래톱에 막혀 생긴 호수를 말한다. 동해안의 청초호나 영랑호가 이름나 있는데, 그것에 대면 볼품이 없지만, 이 동네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 주립공원 치고는 주차요금이 비싼 편이다.


삽 십 대쯤 댈 수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가면 연못처럼 보이는 호수가 있고 바다 쪽으로 모래톱이 나있는데, 물풀들이 많이 나 있는 데다 모래톱에는 대여섯 종류의 새들이 빼곡하게 앉아 쉬고 있다. 이 작은 호수를 끼고 돌 수 있는 오솔길이 마련되어 있어서 천천히 산책하면 좋다.


작기 때문에 걸어도 삽십분이면 넉넉하지만, 천천히 긴 호흡으로 주변에 난 풀들과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 모였다 흩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새들과 눈인사라도 나누면 좀 더 걸릴 수도 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그들을 잠시라도 그냥 두지 못하고 얼르고 뒤집고 때려 박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알량함으로 작게나마 남겨놓은 터전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없었다면 말리부를 기억에서 조차 지웠을 것이다. 많은 부분 땅은 공공재로 남겨놓고 중앙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말리부를 지날 때마다 속이 터져 그냥 지나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말리부가 영 사람이 못 올 데는 아니다. 이런 사정을 살폈는지 바닷가를 등지고 있는 산타모니카 산맥에는 야영장도 있고, 휴양 시설도 있으며, 다양한 등산로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이곳에도 몫 좋은 곳은 사유지에다 저택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저 바라만 볼뿐이다.


바다를 마음껏 보고 싶다면 많이 혼잡하기는 하지만 말리부 바로 직전에 있는 산타모니카 해변이나 말리부의 주립 해변들, 포인트 듐(Point Dume), 엘 마타도어(El Matador), 엘 페스카도르(El Pescador) 등의 바다를 이용하면 된다.  


어쨌든 말리부에는 이렇게 저렇게 들어설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 주로 주립 해안을 이용하거나 일반인이 통과할 수 있는 개구멍이 있는 카본 비치를 이용하면 된다. 말리부 해안선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산으로 난 길을 올라서면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들이 있으니 이곳을 이용하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자, 이제 사진으로 공원을 살펴보자.


공원을 들어서면 주차장 바로 옆에 이와 같은 작은 의자와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앉아 차 한잔 하면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여럿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탁자도 꽤 여럿 있으니 도시락 싸들고 소풍 하기에 좋겠다. 사진 오른쪽은 산책로다. 마을 사람 한분이 운동하러 오신 모양이다.



산책로 끝부분에는 서서 바다를 바라를 볼 수 있게 돼있다. 그 눈에 바다를 막고 있는 모래톱이 있고, 그 모래톱을 집으로 삼아 머무는 새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물론 철새는 아니다. 주로 갈매기와 팰리칸, 왜가리가 있고 뜸부기도 있다고 한다.


수초의 푸른빛과 어우러진 쪽빛 하늘고 바다, 그 사이를 거침없이 날아드는 새들의 군무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저 다리가 태평양 해안도로다.

이 길은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서 샌프란시스코를 지나 캐나다 직전의 시애틀까지 이어지면서 태평양이 빚어낸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매우 널리 이름난 길이다. 지나는 길에 곁눈으로는 이런 호수가 보일 리 없으므로 해안도로를 여행할 생각이라면 좀 여유를 가지고 적절한 곳에 틈틈이 들러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모래톱 가까이 스케치해봤다.

마침 날이 맑아 하늘은 파란 데다 옅은 구름이 번져있어 풍경을 재미있게 만들어줬다.

저 멀리 수평선에 걸쳐있는 도시는 산타모니카, 마리나 델 레이, 그리고 팔로스 버디스 까지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앞에서 모래밭의 사유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문제를 낱낱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저 개인 주택이 서 있는 곳부터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울타리가 처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이 바다 쪽으로 불쑥 나와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새들의 맵시는 멋지고 아름답다.

날 때는 어찌나 자유로와 보이는지 사람들이 비행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윙슈트(Wingsuit) 따위로 직접 날으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저 고고한 맵시를 보라.

새들 입장에서 보면 그저 먹이를 찾기 위해 기다리거나

집 나간 짝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다른 것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눈엔 그저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철 구조물은 공원의 한편 거의 가운데쯤에 서있는 전망대다.

어째 이렇게 철망을 해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넘겨짚기로 새들이 많을 때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시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백로는 또 무슨 일일까?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쓱 한번 쳐다보고는 슬금슬금 걸어가기만 할 뿐이다. 처음에 어디를 다쳐서 날지 못하나 했는데, 날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이 그저 무심히 겅중겅중 걸어 다닐 뿐이다. 구글 맵에 전에 다른 사람이 찍어 올린 사진에도 이 녀석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 터를 잡고 사는 새인 듯 하기는 하다.



바다의 귀염둥이 물떼새들이다.

기서 가까운 태평양 어디를 가도 이 녀석들을 볼 수 있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긴 다리로 빠르게 움직이는 이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찌나 귀여운지 자리를 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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