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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Dec 01. 2017

마을 산책 #2

세상의 모든 고물들에게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 온지도 벌써 십여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마을 구석구석 다녀보질 못했다. 오늘은 우연 지나는 길에 거리에 선 난장을 봤다. 평소에 자주 가는 거리는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다가  안내문을 보니 달마다 열기를 스무 해 가까이하고 있는 나름대로 전통이 있는 시장이란다. 그동안 사는 마을을 너무 모르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을 돌아보면 좋겠다.  난장은 흔히 벼룩시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여기서 열리는 시장은 특별하게 고물 시장(Antique Fair)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이 주로 오래된 것들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얼핏 지나는 길에 한눈으로 보기에 상인이 그리 많지않아 보는데, 막상 시장을 돌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고물 가구 따위의 덩치가 큰 상품들보다는 사진기나 녹음기와 같은 작은 전자 제품들, 유리로 만든 상품들, 부엌에서 쓰이는 물건들, 집안을 꾸미는 데 쓰는 물건들처럼 크기가 작은 물건들이 많았다. 상인들은 거의 벌이를 하려는 사람이고, 집에 있는 물건을 들고 나온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보통 벼룩시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집에서 쓰던 물건 가운데 지금은 쓰지 않거나 필요가 없어진 물건을 들고 나와 파는 시장을 일컫는데, 이곳은 그런 시장 다르다. 사실은 벼룩시장과 같은 종류의 시장은 거의 없고, 그와 비슷하지만 시장이 아니라 개인이 집에서 판매하는 거라지 세일(Garage Sale), 또는 야드 세일(Yard Sale)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난장이기는 하지만 매일 장이 서는 스왑 미트(Swap Meet)라는 모양의 시장이 있다. 스왑 미트는 대체로 새 상품을 판매하지만, 이따금 중고품을 팔기도 하는데 자기가 쓰던 물건이 아니라 상인들이 사들인 물건을 판다. 오늘 돌아본 중고 시장에서는 스왑 미트처럼 새 상품을 팔지는 않았지만, 나온 지 한두해 지났으나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상품들도 있었다.


이 날은 거리를 막고 상가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이들은 벌이를 하려고 자리값을 내고 나왔을 텐데, 장을 둘러보니 벌이가 그리 시원찮아 보이고, 바람도 살살 불어 분위기가 썰렁한데 사진을 찍자고 말하기가 여간 쑥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은 멀리서 당겨 찍거나 가까이서 찍을 때는 안 찍는 척하고 찍느라 좀 어설프게 찍힌 것들이 많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집어들고 양해를 구하고도 미안한 마음에 얼른 몇 개 담아보지만, 불쑥불쑥 사진기를 들이밀기는 여전히 미안하다.

사진 찍는 것을 보셨는지 색안경 너머 눈빛이 보이는 듯하다.
멕시코 음식 타말레와 커피를 한 잔 사 먹으니, 후하게 웃음을 선물하신다.


이 시장은 한 마디로 고물상이다. 세상 모든 고물은 다 팔고 있는 것 같다. 상품으로 보이지 않은 것들, 하다못해 몇 해 지난 아침 신문도 상품으로 진열하고 있다. 오래되었다는 까닭 하나로 진열대에 올라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좀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그리움일 물건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보니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어느 주차장에 붙어있던 이정표가 고물로 팔리고 있다
어느 종교단체의 수련회 사진, 무려 1953년에 찍었다.
졸업 앨범, 기념 사진, 풍경 사진 따위도 나와있다.


이런 잡다한 물건들을 뒤적거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주 가끔씩 언론에 등장하는 횡재 소식 말이다. 어떤 이가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산 물건이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것이 밝혀져 큰돈을 벌었다는 둥둥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오래돼 보이는 물건들은 좀 가까이 보게 된다. 사진도 꽤 나와 있었는데, 사실 이런 사진이 어떻게 시장으로 흘러들어 왔는지 그 사연이 자못 궁금하나 파는 이야 그저 팔기만 하면 그만인지라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다. 그 가운데 혹시 쓸만한, 역사적인 값어치가 있을 법한 물건이 없을까 두리번거려 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 나와있는 이들은 대개 나름대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일 터, 그런 물건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무려 고흐의 'Haystacks in Provence'가 나와있다. 혹시?  
이 물건은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았다.


보면 볼수록 생각은 복잡해진다. 옛날 사람들이 썼을 물건들을 보면서 그들이 살던  일상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짖는 표정과 배경, 누군가가 작품으로 만들었을 그림이나 사진 따위를 보면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알 것도 같은데, 문화 배경이 다른 까닭으로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는 모습들도 있다. 누군가 열심히 이용하여 글씨를 만들어 내던 오래된 타자기, 혹시 어느 이름난 작가가 쓰던 물건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어느 사무실에서 일하는 데 사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유난히 많이 나와 있는 물건은 엘피(LP)와 구식 사진기다. 그만큼 사람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흔한 물건이 이제는 폐기 처분되었다는 뜻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앨피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불과 한 세대 전의 상품이 많은 이들을 옛 생각에 잠기게 하는 모양이다.

아날로그 저울, 꽤 오래돼 보이는 음료수 병, 뉘 집 문에서 떼어온 것 같은 문고리, 수동식 대패 들이 아스팔트 위에 놓여있다.
타자기는 작동을 한다. 타타타탁.


사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최첨단 제품을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갖기 위해 며칠 밤낮을 세우며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한 세대도 훨씬 전에 누군가가 쓰다 버린 물건에 혹해 하루 종일 거리를 배회한다. 그리고도 채워지지 않을 갖가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살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한 번쯤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본 일이 있을 것이다.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할 것이고, 삶이 힘들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위로를 얻을 만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기도 할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오늘 생기는 문제를 다 이고 갈 수는 없다. 사람은 제 각각 나이와 환경에 맞는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다만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는 가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나이가 많고 피부 빛깔이 달라도 이런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비단 시장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과 물건들이 섞여 있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멋있는 옛날 차든 굴러갈지 의심될 정도로 낡은 차든 같은 목적으로 이 길거리에 함께 서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페라 아리아를 한 곡조 뽑는가 하면, 어떤 인형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온종일 인사하며 거리를 지키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길을 막고 서 있는 저들의 웅성거림이 나머지 날들을 오가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다를 게 무엇이 있을까?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란 점에서 다를 바가 없는 우리의 모습이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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