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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Feb 11. 2019

캘리포니아의 비경, 솔톤 씨(Salton Sea)

끝나지 않은 소멸


론이 말했다.

"자네는 저 사람들을 싫어하나?"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사는 거죠."

크리스의 대답에 론이 말했다.

"자넨 현명한 젊은이로군"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마지막 챕터에서 슬랩 시(Slab City)를 떠난 주인공 크리스는 솔톤 씨(Sea와 city가 겹쳐 등장하는 관계로 sea는 '씨'로 city는 '시'로 표기함) 옆에 있는 솔톤 시를 지나는 길에 론이라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이 즈음 크리스는 솔톤 시 근처에 있는 오 마이 갓 핫 스프링이라는 곳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노인과 함께 자기 숙소로 가는 길에 한 무리의 히피족들이 모여 사는 곳을 지나게 되자 론과 주인공 크리스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론은 그들을 일컬어 마약쟁이 누드족이라고 비난하지만, 알렉스는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살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만남이 인연이 돼 크리스는 론과 함께 머물며 친분을 쌓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이 장면에 등장하는 솔톤 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과 솔톤 씨는 그리 멀지 않다. 폰츠 포인트가 있는 22번 도로를 타고 20마일쯤 가면 호수가 나온다. 그러나 이 길을 가는 동안 이런저런 볼만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


이곳을 찾은 것이 1월이 시작할 무렵이니 계절로 치면 한겨울이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사막의 시간은 다른 곳의 흐름과는 많이 달라서 계절들과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러는 계절이 뒤섞이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한다. 그러므로 길가에 꽃이 있다고 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겨울이라고 말하기에는 참 많이 어색하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좀 이르다 싶을 만큼 여러 가지 꽃들이 앞을 다퉈 피었다.


사막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한 해 가운데 겨울이나 돼야 비가 좀 내리니 그 밖에는 늘 메말라서 땅은 푸석거리고, 나무는 키가 자라지 못하며, 풀들은 날카롭다. 그나마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는 가끔 물도 주고 손질도 해주니 제법 커다란 나무도 있고 풀들도 푸릇푸릇 무성해서 사막 냄새가 거의 나질 않는다. 그러나 드넓은 들녘을 다 가꾸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니 사람이 다닐 만큼 길이나 내고, 그 가운데 볼만한 곳은 전망대로 만들고 하는 정도에다 그게 좀 널찍하면 공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거칠기만 한 사막이 겨우내 비가 좀 내리고 날이 좀 따스해지면 갖은 꽃들을 피워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거기에다 여늬 땅에서 피는 꽃들보다 훨씬 더 빛깔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자태가 곱기까지 하다. 물기가 아직 남아 있는 아주 짧은 동안 웃자라 꽃까지 피우려면 몹시도 분주할 테다. 그러니 비가 온 뒤 사막은 갖은 생명들이 꽃을 피우는 각축장이 되어 우르르 꽃이 피고 어느 순간에 또한 우르르 사라지고는 한다.


이런 꽃 피는 때를 놓치지 않고 사막을 찾아 꽃구경 떠나는 일도 캘리포니아에 사는 재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막의 어느 구석은 그런 물기도 기대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식물이 자라기 매우 어려운 땅이거나 주변 땅들이 워낙 거칠어 식물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들이 있는데, 앞 글에서 소개한 배드랜즈도 바로 이런 곳들 가운데 하나다.


솔톤 씨로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 가운데 배드랜즈 전망대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땅 모양은 어제 지나온 폰츠 포인트에서 보는 것과는 좀 다르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땅을 이루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골이 깊이 파인 것이 여기도 물이 흘러 생긴 것 같은데, 비가 드문 사막에서 이 정도로 파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전망대에 서면 배드랜즈 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높직한 곳이어서 저 건너 벌판과 벌판을 두르고 있는 산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남달라 보이는 풍경을 발견했다. 드넓은 벌판 저 멀리에 얼핏 보면 아침 안개가 피어오른 것처럼 희뿌옇게 산의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을 말하면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침이나 저녁나절 기온이 달라 피어오르는 안개로 산이 뿌옇게 보이거나 하늘이 흐릿해 보이는 풍경, 그래서 무엇인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풍경들이 좋다. 안개 낀 거리를 걷는다거나 비 온 뒤 미처 걷히지 않은 물안개가 낀 산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때때로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날이 흐리거나 는개비라도 내릴라치면 가방을 둘러메고 산을 찾는 까닭이다.


그런 종류일 것이라고 넘겨짚고 가만히 살펴보니 다른 곳에는 없고 저곳만 뿌연 것을 보니 여기는 좀 다른 것 같다. 망원 랜즈로 당겨서 보는데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짐작키로 온천지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친 땅들 가운데 일부는 사람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땅이 넓으니 놀이터도 넓다.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널찍하여 어떤 곳은 작은 도시만큼의 넓이로 놀이터를 삼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몇 개의 마을보다 더 넓게 퍼져있다.


오꼬티요 웰스 주립 차량 유원지(Ocotillo Wells State Vehicular Recreation Area)가 바로 그런 곳이다. 오꼬띠요는 가늘고 길게 한 개체에서 여러 줄기가 자라는 선인장의 한 종류인데, 캘리포니아 사막 지역에서 많이 자란다. 봄이면 줄기 끝부분에서 붉은 꽃이 펴 키다리가 꽃까지 피우고 거기다 빛깔까지 고우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캘리포니아에는 이런 차량 유원지가 많은 편이다. 물론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미 서부 사막 지역에는 상당수의 유원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캘리포니아가에 좀 더 많은 편이다. 땅이 넓고 사막이 많은 까닭이다.


이곳에는 네 바퀴 굴림 자동차, 모래를 달릴 수 있는 듄버기 또는 ATV나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따위가 다닐 수 있지만, 자동차보다는 ATV 따위의 오락용 차량들이 주로 이용하게 된다. 좁고 거친 골짜기의 모래길을 달리자면 아무래도 자동차보다는 덩치가 작은 오락용 차량들이 제격일 것이다. ATV애호가들은 RV에 ATV를 매달고 와 사막에서 캠핑을 하며 오프로딩을 즐긴다. 그들이 즐기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거친 오프로드를 질주하면서 거칠고 둔탁한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또 하나는 푸석거리는 사막의 오프로드를 달리노라면 길고 긴 흙먼지를 일으키게 되는데, 자신이 일으킨 흙먼지를 뒷거울로 보면서 운전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하나 더 있을 것 같다. 네 바퀴 굴림 SUV로는 느끼기 어려운 ATV나 모터사이클의 굉음이다.


그리고 바로 이 유원지에서 앞에서 말한 산 아래 벌판 안개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안개나 온천의 김이 아니라 ATV들이 일으키는 흙먼지였다. 얼마나 넓은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들이 흙먼지를 일으키길래 저 정도 일까? 고국에서는 황사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여기서는 노느라고 저리 먼지를 피워댄다.


유원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바로 솔톤 씨를 만나게 된다.

솔톤 씨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겼는데, 그 길이가 무려 100km 다다를 정도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자동차로 달려도 거의 한 시간이 걸릴 만큼 길고 크다.


솔톤 씨는 1900년대 초 근처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범람하여 작은 호수가 있는 분지에 물이 고이면서 넓어진 호수다. 이런 까닭으로 물이 흘러들어는 곳과 나가는 곳은 아주 작을 수밖에 없다. 이 호수는 비가 오거나 인근 농업용수가 유입되는 것 말고는 흘러들어오는 물이 거의 없고, 흘러나가는 출구도 많지 않다. 그러므로 늘어나는 물보다 증발되는 물이 더 많아 차츰 물이 줄어들고 소금기는 늘어나고 있다.


호수가 생겨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국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수는 황폐해져 과거의 명성은 찾을 수 없고 찾는 이의 발걸음은 아주 뜸해졌다. 그 가운데 근근이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몇몇의 캠프 그라운드, 그리고 두어 개의 주립공원, 그리고 하나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정도다. 주변의 기반 시설들은 폐허로 변한 지 오래되어 그나마 남아있는 여관 등의 시설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호수는 소금기가 강해지면서 생물들이 살기 어려워져 어패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먹이로 삼던 조류나 철새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지금도 물고기가 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나마 호수 한편에 만들어놓은 야생동물 보호구역(Wilidlife Refuge)은 찾아드는 철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내고 있어 다행이다. 이곳을 찾는 새들은 꽤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많은 것은 오리 종류일 것이고, 그 밖에도 캐나다 두루미, 미국 왜가리, 팰리칸, 물수리 따위의 새들이 날아든다.


호수의 북쪽으로 해변(?)이 있는데, 바다에만 있을 법한 모래밭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이 모래밭에 공원과 야영장이 여럿 만들어져 있다. 겉에서 보이는 호수는 그저 아름답고 낭만스러울 것만 같은데, 막상 가까지 가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물에서는 그리 상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고, 물빛은 다소 어둡다. 아마 소금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원 안내문에는 이곳에서 낚시도 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는데, 주로 잡히는 고기는 돔 종류의 물고기들이다. 날은 낚시꾼을 만나지 못해 얼마나 잡히는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보통은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수가 제한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여기서는 제한 없이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호수에는 이처럼 피크닉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서 멋진 호수를 배경 삼아 소풍을 즐길 수 있다. 바람이 따스하고 기온이 그리 높이 않은 봄이나 가을 즈음이면 찾는 이들이 많을 것 같지만, 아직은 찬기가 도는 날씨와 거센 바람 때문인지 찾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모래밭을 산책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바다 모래가 보통 희거나 노르스름한데 여기 모래는 분홍빛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보랏빛 같기도 하면서 또 어떤 곳은 희기도 하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걷다가 아무래도 모래 결도 다르게 느껴지고, 밟히는 느낌도 바닷가 모래밭과는 많이 달라 쪼그리고 앉아 모래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래처럼 펼쳐져있는 것은 모래가 아니라 사진에서 보듯이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쌓인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조개가 부서져야 이렇게 될까?

얼마나 오랫동안 쌓여야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소금기가 얼마나 높길래 조개조차 살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용기를 내서 호수 물을 맛보니 많이 짜기는 하다.


앤자 보레고에서 오면서 보았던 예의 그 모래 먼지가 대단하기는 하다.

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저리 뿌옇게 보이니 말이다.

호수 건너편으로 산을 감싸고 있는 희뿌연 모습은 그들의 실제와는 상관없이

상상을 자극해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숨겨진 세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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