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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Feb 03. 2019

캘리포니아의 비경,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

하늘이 시작하는 곳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라는 영화 이야기로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본지 꽤 된 영화라서 기억이 아주 분명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다녀온 여행지 가운데 몇 곳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이번에 다시 한번 챙겨보게 되었다. 몇 해전보다 눈에 익은 곳들이 많아 굉장히 반가웠다.

줄거리는 한 청년이 애틀랜타에 있는 집을 떠나 애리조나의 미드 호수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까지 배낭여행하는 모습을 다큐 형식으로 그리고 있는 모험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여러 주를 넘나들며 모험과 여행으로 자아를 찾으려는 한 청년의 끊임없는 노력을 그리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알래스카에는 도착을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곳 가운데 실제 있는 곳인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이 달라졌거나, 아니면 영화의 재미를 위해, 또는 어떤 상징으로서 등장한 공간일 수도 있겠다. 그곳은 다름 아닌 오 마이 갓 온천(Oh-my-god hotsprings)이다.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 옆에 솔톤 시(Salton Sea) 호수가 있고, 그 호수의 동쪽 구역에 히피족들이 모여사는 슬랩 시(Slab City)가 있다. 슬랩 시에는 지금은 관광지로 이름이 난 구원 동산(Salvation Mountain)이 있고, 그 근방 어딘가에 이 온천이 있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는 없다.

이번 여행은 영화에 등장하는 지역 가운데 바로 이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과  솔톤 시 호수, 슬랩 시티, 구원 동산, 그리고 영화에는 등장하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모래사막 임페리얼 샌드 듄스 유원지(Imperial Sand Dunes Recreation Area), 피카초 주립 유원지(Picacho State Recreation Area), 그리고 시볼라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Cibola National Wildlife Refuge) 따위를 다녀왔다. 한두 곳은 호수나 강을 끼고 있지만 대부분 사막 지역이라서 다시 한번 사막을 생각해봤다.


이번 글은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들렸던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에 있는 폰츠 포인트(Fonts Point) 이야기다. 폰츠 포인트를 소개하기에 앞서 앤자 보레고 공원을 거칠게나마 소개하고 시작하겠다.


앤자 보레고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은 63만 에이커에 이르는 대규모 공원이다. 면적만 놓고 본다면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더 넓다. 앤자 보레고는 원래 사막 공원이기는 하지만, 매년 봄만 되면 갖은 들꽃들이 흐드러지는 곳으로도 이름나 있다.  공원은 넓은 만큼 다양한 지형을 품고 있는데, 대부분 비포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원을 구석구석 다니려면 아무래도 네 바퀴 굴림 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공원을 지나는 두어 개의 길을 이용해 오가면서 구경을 해보는 것도 좋다. 바쁘거나 마음이 급하다면 이렇게라도 슬쩍슬쩍 지나치면서 보는 풍경도 충분히 멋있다. 메마른 땅과 때때로 쌓인 모래들, 그 위로 돋은 처절한 생명의 약동이 주는 힘차고 거친 느낌을 맛보는 것은 그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아주 묘한 느낌이다. 사막은 어느 구석을 가도 거칠기만 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더구나 모래만 모여있는 사막이 아니라 모래와 자갈, 바위에 뻣뻣한 풀들과 덤불들은 보기만 해도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까이서 톺아본다면 그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옅은 빛깔로 새순을 틔우는가 하면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살랑거리거나 그저 땅에만 있을 것만 같은 조각들이 하늘로 날아 군무를 추기도 한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좀 더 탄탄해 보이는 차를 이용해야 한다. 포장이 되지 않은 것을 넘어 푹푹 빠지는 모래길을 수마일씩 들어가야 하니 네 바퀴 굴림을 하는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어떤 곳은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거의 모든 길이 그렇다. 그래서 사막이다.


▲앤자 보레고 주립공원의 방문자 안내소 주변 풍경 ©2019 Traveler's Photo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폰츠 포인트(Fonts Point)의 배드랜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모래로 뒤덮여있다. 모래사막만큼은 아니어도 두 바퀴 굴림으로는 어림잡기도 어려울 만큼 모래가 많다. 그러므로 폰츠 포인트뿐만 아니라 공원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다면 반드시 네 바퀴 굴림 자동차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딱히 네 바퀴 굴림 차를 구하기 어렵다면 이곳을 전문으로 돌아보는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지프차를 이용하여 돌아다니는 비포장 도로의 원시성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폰츠 포인트는 아니지만 배드랜즈를 멀찌감치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이용해서 배드랜즈의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 카리조 배드랜즈 전망대(Carrizo Badlands Overlook)가 그곳인데, 공원 안의 도로 2번을 타고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폰츠 포인트로 가는 길. 그러나 안으로 갈수록 모래는 깊어진다. ©2019 Traveler's Photo


드랜즈(Badlands)는 보통명사로는 불모지를 일컫고, 지질학 용어로는 침식 불모지를 일컫는다. 관광지나 땅이름으로 쓰는 때는 거의 침식 지형을 일컫는다. 대표로 들 수 있는 곳이 사우스 다코타에 있는 배드랜즈 국립공원이고, 서부에 널려있는 후두로 이뤄진 많은 공원들이 대부분 배드랜즈에 해당한다. 전에 소개한 '블루 캐니언', '콜마인 캐니언', '고블린 밸리', '대성당 골짜기', '비스타이/데나진 배드랜즈', 그리고 넓게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까지도 이런 지형에 속한다. 그리고 이번에 찾은 폰츠 포인트도 바로 이런 배드랜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주 옛날엔 이곳에 물고기와 바다거북과 조개 따위가 살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알아보기 어렵기는 해도 연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며, 가까이 있는 콜로라도 강이 범람해 침범하던 곳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짜기는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빗물에 씻기고 바람에 날리다 굳기도 하여 지금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앤자 보레고에서 배드랜즈의 널찍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폰츠 포인트다. 이곳은 무려 캘리포니아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릴 만큼 거칠고 황량한 골짜기들의 경치가 뛰어나다. 앤자 보레고의 다른 볼 만한 곳들보다 여기가 인기가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니다, 사실 여기는 낮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다가 저녁나절이면 모이기 시작해서 해가 질 무렵이면 주차할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많다.

▲주차공간이 작기도 하지만, 수월찮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다. ©2019 Traveler's Photo


배드랜즈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낮에는 거친 골짜기를 그대로 거짓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에서 어른 거리는 사막의 한낮은 배드랜즈의 거친 질감을 느끼기에는 알맞은 시간은 아니다.  


햇살이 머리를 벗어나 볼을 만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금씩 근육을 보여주기 시작하다가 귀밑머리 언저리를 지나면서 배드랜즈는 실핏줄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다 보여줄 듯이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막상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배드랜즈는 거의 그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아마도 해가 지면서 드리운 산 그림자 때문에  생긴 빛의 대비 때문일 것이다. 

▲ 해가 넘어갈락 말락 할 때는 땅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19 Traveler's Photo


그런데 해가 그 모습을 감춘 그 시간부터 배드랜즈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른바 시민박명(civil twilight; 천문 용어... 좀 어렵다.)때문인데, 해가 뜨기 전 30여분, 그리고 해가 지고 30여분 동안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하늘이 밝은 것을 말한다. 보통은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도 하는 이 시간은 매우 느낌 있는 사진을 찍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사이로 그 시간과 풍경흐르는 바람과 구름의 처절하거나 애절한 흔적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관계를 다지거나 화해를 하려는 사람들도 있겠지. 어떤 경우든 그들이 서 있는 시간은 바로 그 매직 아워, 해가 꼬리를 내리기만 했지 아직 감추지는 못한 그 시간이다. 

▲해넘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2019 Traveler's Photo


시간,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서산 너머로 숨은 해가 여전히 힘을 미치고 있어 아직 해가 있는 것이 아닌지 두리번거리기도 하는 바로 그 짧은 시간이 참 좋다. 정열의 해가 이미 지고 없는데도 벌건 대낮처럼 밝은 그 시간, 덩달아 세상은 온통 들뜬 것처럼 홍조를 띠고, 마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이들의 얼굴처럼 사람들의 얼굴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불그레하다. 그렇게 짧은 시간 사람을 들뜨게 했던 빛 잔치가 끝나갈 무렵 서녘 하늘에선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매직아워 동안 하늘은 파랗고 세상은 온통 핏빛이다 ©2019 Traveler's Photo



들뜬 매직 아워가 지나고 나면 땅은 다시 고요에 잠기고 하늘은 마지막 한 줄기 빛이 살아 움직이듯 천천히 자신의 모든 것을 어둠에게 양보한다. 이쯤 되면 빛들이 베푼 눈부신 잔치가 끝났으니 사람들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베푸는 향연의 끝자락에 서면 피부 밑에 숨죽여 있던 또 다른 감각 세포들이 깨어나 꿈틀거린다. 지금까지 보던 빛깔, 방식, 소리, 운행 방식들까지 모두 부정하고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감각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 항해박명(Nautical twilight)의 시간이 왔다  ©2019 Traveler's Photo


새로운 시작이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꿨을 뿐이다. 

 ▲ 솔톤 시의 밤 풍경 ©2019  Traveler's Photo


아니다. 

그들에게 형태가 있을까 의문이다. 

형태는 빛을 받아들이는 것들의 모습일 뿐,

정작 그들에게는 모양도, 정체도, 빛깔도, 냄새도 없질 않은가!

▲아침 해가 뜨기 직전 폰츠 포인트 주변의 풍경©2019 Traveler's Photo


동녘 하늘이 불그레해지자 다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하늘 저 끝 세상이 시작하는 곳에서는 이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뿐이다. 다시 빛나기 시작한 세상은 언제 어둠 속에 있었는지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따스한 온기가 하늘과 땅의 그 공간에 가득 찰 무렵이 되면 무리 지었던 사람들은 서둘러 하나 둘 흩어져 버렸다. 포인트가 주는 의미는 여기까지다.

▲떠오르는 해와 해돋이를 보러 모인 사람들©2019 Traveler's Photo


이것은 그저 번외일 뿐이다. 

▲햇살을 연료 삼아 아침을 준비한다 ©2019 Traveler's Photo









혹시 공원에서 캠핑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시설을 갖춘 정식 캠핑장을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다(공원에는 서넛의 야영장이 있다). 
[예약은 1-800-444-7275 또는 www.reservecalifornia.com에서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공원의 비포장 도로 주변에 차를 댈 수 있는 적절한 곳에서 야영을 할 수 있다.
영어로는 디스퍼스드 캠핑(Dispersed Camping)이라고 하는데, 적절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경우 조심해야 할 것은 "Leave No Trace", 즉 야영의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며, 
"Pack it in Pack it out", 즉 가져간 것은 그대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불을 피우고 싶으면 불을 피우는 통을 가져가야 하고, 재는 도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주변에 있는 식물(죽은 나무라도)은 헤치지 말아야 하고, 돌이나 풀들을 가지고 나와서도 안 된다. 

이 규칙만 지킨다면 잠잘 곳 걱정 없이 즐겁게 공원을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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