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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Mar 08. 2019

캘리포니아의 비경, 알고돈스 듄스

사막에 내리는 하늘

바닷가에 펼쳐진 모래밭, 물과 잇대고 있어 괜스레 모래와 물은 꼭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이 여겨지는 모래가 있다. 바다에 나가면 젖은 모래밭을 걷고는 하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워 맨발로 걷고 싶어 진다. 물이 밴 모래는 두꺼비집을 짓고 모래성을 쌓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따뜻한 봄날, 또는 그 보다는 무더위가 사방을 에워싸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날, 모래밭에 모여 즐겁게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물과는 거리가 먼 사막의 모래는 바다와 많이 다르다. 건조하여 바람이 불면 휘날리는 모래 먼지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다. 사방은 삽시간에 어둑어둑해지고, 어느새 입안 가득 모래가 밀고 들어와 버석거린다. 이런 날 사막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면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하다. 바람을 막아야 하고, 사방으로 날리는 먼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텐트를 치거나 RV를 이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고행을 해야 겨우 한 끼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모래사막을 찾는 까닭은 그들이 주는 특별한 느낌, 그들이 펼치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조화 때문이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아무 때나 찾아도 결코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들 스스로 그런 환경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어떤 보호색이랄까, 자신의 존재 이유가 마치 거기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구 환경의 변화로 지구 곳곳에 널려있는 사막들에도 가끔씩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뜨거운 열사에 눈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이기는 하나 이 또한 변화한 환경 때문에 생기는 일이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런 특이한 경치가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하므로 그것이 일상화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마저도 아름답게 볼 수도 있다. 환경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조건과 환경이 억겁의 세월을 견디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므로 오랜만에 찾은 곳이 경치가 달라졌다고 볼멘소리 할 까닭은 없다.


▲사막의 저녁노을 ©2019 Traveler's Photo


숨 죽이는 햇살 뒤로 어슬렁 거리며 어둠이 내린다.

아직 채 땅거미가 지기 앞서 사막은 또 한 번 광풍에 휩싸인다. 낮 동안 짓빠대던 모래 벌레(Dune Buggy를 이렇게 번역해 보았다. 그런데 그것들을 멀리서 보면 진짜 벌레처럼 보인다.)들이 무슨 일인지 한 곳에 고물고물 모여들었다. 낮에도 굉음과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모래밭을 짓빠대던 저것들이 밤에도 한바탕 놀아보려는지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늘어섰다.


사람들이 사막을 찾는 까닭은 두어 가지가 있다. 모래의 질감과 느낌, 그들이 빚어내는 빛깔들의 끝없는 변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사진기 하나씩은 둘러메고 어슬렁거리거나 삼발이 받쳐놓고 사냥꾼이 사냥감을 기다리듯 말없이 서서 때를 기다린다. 바람이 불면 입을 가리고, 주변이 시끄러우면 귀를 가릴지언정 어떻게든 두 눈은 부릅뜨고 빛의 변화를 좇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수도원의 수사와도 같다.


그들의 건너편에 바로 저들, 모래 벌레 군상이 있다. 그들에게 모래는 그저 모래 벌레로 빠대고 다니며 먼지를 일으켜주는 것일 뿐이다. 세상의 다른 한 편에는 그 먼지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들은 알까? 안다고 한들 그들이 유희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일 테니.

▲사막에도 느릿하게 어둠이 밀려들었다 ©2019 Traveler's Photo


짧기만 한 매직 아워는 시나브로 지났다.

스멀스멀 땅거미가 밀려오더니 어느덧 어둠이 온 땅을 뒤덮자 하늘엔 촘촘히 보석이 박혔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살별 하나 휙 스치자 저 건너 모래 언덕 너머에 뿌옇게 후광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뭐지?"

"넘어갔던 해가 다시 돌아오나?"

"모래 벌레들이 단체로 출동했나?"


사막의 밤은 춥다.

계절은 겨울이라도 따뜻하기만 한 캘리포니아 남부의 날씨는 비가 적은 사막지역에도 꽃을 피워낸다. 이번 겨울엔 두드러지게 비가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모래가 온기를 담고 있질 못해서 그런지 해가 기우는 사막에 서면 빠르게 온도가 내려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바람이라도 불어 제치면 서둘러 겉옷을 두르든지 어디 안으로 들어가 지나는 바람을 피해야 한다. 그것도 잠시, 숨 고르기를 끝낸 사막은 다시 고요에 잠기고 적응한 추위도 견딜 만 해지자 건너편 언덕에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빼곡하던 별빛이 시나브로 새로운 세력에게 잠식당하면서 밤하늘의 강력한 지배자가 떠올랐다.

▲모래 언덕 위로 달이 떴다 ©2019 Traveler's Photo


그러나 사막의 진정한 지배자는 따로 있었다. 칠흑 같아야 할 모래밭을 불야성으로 만든 장본인, 바로 사람의 빛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하기에는 문명의 불길이 너무 강하다. 물 한 방울 나지 않고, 전기 한 줄 들어오지 않는 이 드넓은 모래밭에 하룻밤 사이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은 이 밤을 즐기기 위해 허허로운 이 모래밭에 갖은 장치를 해놓았다.


물론 여기는 이렇게 하라고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곳이므로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 끼어서 그들을 탓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그곳에서 즐겁게 하룻밤 지내고 왔으면 됐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때늦은 생각이 드는 까닭은 그날 사람의 빛이 지나치게 강렬했고, 그래서 거기에 밀린 하늘이 빛을 잃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막의 밤, 주변의 불빛은 도시의 불빛이 아니라 모두 사람들이 끌고 온 불빛이다.  ©2019 Traveler's Photo



시끄럽게 모래밭을 빠대던 모래 벌레들의 굉음이 잦아들 무렵, 시간은 이미 새벽 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지내려면 오십 달러를 내한다. 한 단위로 계산해야 하니 어쩔 없이 한주일치를 냈때문이다. 그러면 모래밭 어디에서나 차를 세우고 하룻밤 지낼 있다. 그런데 모래밭 안으로 들어가 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선 차가 모래 위를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모래 벌레들이 빠대고 다닐 때, 정해진 길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잘못 주차하면 그들과 사고가 수도 있다. 차들이 모여있는 곳 한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하니 이런저런 것들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다.

오락가락하던 구름은 기어이 물러가지 않고 남아 하늘을 뒤덮었다.

모래 언덕 너머 아침이 오는 기척에 눈을 떴지만 늦게 잠들었던 까닭에 눈꺼풀이 무겁다. 슬며시 실눈 뜨고 창에 낀 성애를 닦아내니 사막은 온통 푸르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밀려오는 생명의 빛을 감당해 내기에는 어림도 없다.  

어둠의 세력이 강력하다고 한들 시나브로 밀려오는 빛,

동녘, 하늘 저 멀리 모래 산 넘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서부터 시작했을 아침의 빛,

제아무리 힘이 있어 모래산 높이를 낮추거나 높일 수 있다고 해도,

심술궂게도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두텁고 두터워도,

되살아난 생명의 빛은 멈추는 법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두터운 흑막을 깨고 터져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사막에 아침이 왔다. ©2019 Traveler's Photo



아주 짧은 시간, 구름 사이로 어른거리던 햇살이 고개를 내밀다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저녁노을 저리 가랄 만큼 이글거리던 아침노을은 도로 먹구름이다.

그렇잖아도 으스스한 아침인데 하늘을 덮은 구름이 한기를 몰고 왔다.

모래는 한순간 빛을 잃고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들이 우중충하게 서있다.


'그에게 빛이 있었던가?'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덩달아 마음도 가라앉는지 느닷없이 드는 생각이다.

▲어둑한 하늘, 침침한 언덕 ©2019 Traveler's Photo



빛이 내렸다.

어두운 모래 캄캄한 공간 사이로

알갱이 한 알 한 알

보듬고 어르다


꼭 그만큼의 빛이 내려

마치 바늘에 찔린 손끝의 아픔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

머리카락 한 올 한올 쭈뼛쭈뼛 서듯이


모래들 사이 고랑을 타고

서늘한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빛이 내렸다 ©2019 Traveler's Photo



하늘이 내렸다

터진 구름 비집고 마침내.


쪽빛 하늘과

따스한 바람과

눈부신 빛줄기


부둥켜안고

모래밭 차가운 이랑을 넘어

고랑과 고랑 빈틈없이 채워

눈부신 노래로

하늘이 내렸다.


빛에게 범위가 없어

어디든 넘나들어

경계를 허물고 쏟아진다.

▲하늘이 내렸다 ©2019 Traveler's Photo


하늘과 땅의 빈 틈을 타고 흘러

빛이 출렁거렸다.


모래는 더 이상 모래가 아니고

하늘은 더 이상 위에 있지 않다.


빛은 갈기갈기 분해되어 모래에 흩뿌려지고

모래는 제각각 날아올라 공간을 채운다.

▲ 모래밭에 햇살이 가득하다  ©2019 Traveler's Photo


반짝이던 햇살은 곱디고운 빛깔을 남긴 채

긴 여운을 드리우며,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빛이 내려 하늘과 모래가 맞닿을 날을 고대하며.

▲모래 언덕에 내린 햇살 ©2019 Traveler's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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