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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May 09. 2019

캘리포니아의 비경, 카리조 플레인(1)

들꽃 세상 캘리포니아

 지난겨울 내린 많은 비 때문에 캘리포니아는 지금 대폭발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많은 꽃이 피고 있다. 슈퍼 블룸(Superbloom)이라고 표현하는 이번 들꽃 잔치는 캘리포니아 어디를 가도 꽃이 가득할 만큼 대단하다. 마을에 작은 빈터만 있어도 들꽃들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꽃이 발에 치인다. 로스앤젤레스 가까이에는 들꽃이 모여있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 많은데, 그 가운데 앤텔로프 밸리의 '양귀비 보호지역'이 이름나 있고, 카리조 대평원의 들꽃, 엘시노어 호수 인근의 양귀비 군락지가 들꽃이 많기로 이름나 있다. 그 밖에도 데스밸리 국립공원, 엔자 보레고 주립공원,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모하비 국립 사막 보호구역 따위의 사막에도 어여쁜 들꽃이 피기로 이름나 있다.  그뿐 아니라 프레즈노에서 베이커스 필드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과일 농장은 이른 봄부터 갖은 꽃들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그 많은 곳 가운데 이번에는 카리조 대평원의 들꽃을 소개하려고 한다.   


카리조 대평원의 꽃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카리조 대평원은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150마일, 약 세 시간 거리에 있다.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립공원 관리청(NPS)에서 관리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은 국토관리부(BLM)에서 관리하는 지역이다. 두 기관은 모두 국토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이기는 하지만, 관리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중복되는 지역은 없다. 국립공원 관리청은 엄격한 기준으로 땅을 관리한다. 이를테면 공원 구역 안에서 허가된 곳 말고는 야영을 허용하지 않고, 낚시. 사냥. 채집 따위의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 반면 국토관리청은 조금 느슨하게 관리하는데, 넓은 구역을 정해놓고 야영, 낚시나 사냥 등을 허용하는 식이다. 그러므로 카리조 대평원의 국립기념물 구역 안에서는 개발된 야영장 말고도 주변의 야산에서 일정한 조건 아래 야영을 할 수 있다. 사실 캘리포니아의 센트럴 밸리(프레즈노에서 베이커스 필드에 이르는 넓은 분지 지역을 말함)는 오래전부터 목초지였다. 엘크나 영양 등 동물들이 살아가기에 알맞은 이곳은 봄이면 야생화가 만발했다. 사람들이 비옥한 이 땅에 찾아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초지를 농지로 바꿨고, 해를 거듭할수록 초지는 줄어만 갔다. 그러기를 몇 백 년 거듭하면서 대부분의 초지는 사라지고 그나마 외딴곳에 있는 카리조 플레인 지역, 캘리포니아 양귀비 보호구역 따위 몇 곳만 남게 되었고, 이곳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기념물이나 보호구역으로 정해 지금에 이르렀다. 카리조 대평원은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지형으로 주변을 둘러싼 산봉우리들과 그 사이에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다. 이 평원 안에 소다 호수(Soda Lake)가 있는데, 평소에는 말라있는 호수지만 겨울철 비가 내리면 물이 차오른다. 특이한 것은 이 호수는 들어온 물이 나갈 곳이 없어 건기에 물이 마르면 베이킹 소다처럼 보이는 소금기가 드러나 데스밸리의 배드 워터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봄이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꽃잔치를 보는 일은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카리조 대평원 준국립공원 지도 [from www.blm.gov]


카리조 대평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남쪽과 북쪽 두 갈래가 있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든 상관은 없지만, 가는 동안 보다 흥미로운 풍경을 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북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특히 이 길은 유전이 많은 태프트 지역을 지나는 동안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유전이 많아서인지 태프트와 가까운 곳에는 들꽃을 볼 수 없다가 어느 만큼 가다 보면 하나 둘 들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태프트에서 58번 산타마리아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 보면 템블러 산의 거의 꼭대기쯤에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차를 세워보자. 이곳은 카리조에 가기 전 베이커스 필드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또한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야트막한 언덕배기에는 조금씩 들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리만큼 어떤 들꽃 경계선(?)과 같은 느낌이 든다.



모퉁이를 하나 지나고, 둘을 돌 때마다 조금씩 들꽃이 는다. 처음엔 캘리포니아 양귀비도 보이더니, 이 녀석들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아직은 동산 하나에 머물러 있다. 이들이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리기를 거듭하다 보면 몇 년 뒤에는 이곳에도 양귀비 세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 사이에도 자리다툼이 있고, 세력 싸움이 있으니 어느 만큼 세력을 넓힐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보랏빛 들꽃 세상이,

몇 발짝 언덕을 오르면

또 다른 빛깔, 노랑, 하양, 보라,

그리고 푸른빛 들풀, 나무 몇 그루

저마다 싱그런 냄새

지나는 나그네 어서 오라 손짓한다.



몇 구비 산을 넘자 와! 하는 탄성이 터지며 눈 앞엔 들꽃이 모여 사는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햇살이 많은 따뜻한 남쪽 동산에 많이 자리 잡은 꽃밭은 동산을 잇고 언덕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느닷없이 눈 앞에 펼쳐지는 꽃동산들은 마치 그동안 피우지 못한 한이라도 풀어내려는 듯 어디 빈틈이 없나 두리번거린다. 거기에 그림처럼 서있는 빨간 지붕 농가 하나 그림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가는 문을 닫았다. 지지난 해만 해도 소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풀을 뜯었는데, 지난해 가뭄이 깊어지면서 그만 견디질 못했나 보다. 그림은 아름답지만, 속살은 아프기만 하다.


카리조 대평원에 다 왔다.

이렇게 느닷없이 펼쳐지는 들꽃 세상을 보니 말이다.

참으로 신기하리 만큼 경계가 뚜렷하다. 카리조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늘어나던 들꽃들은 마지막 구비 언덕 하나만 넘어서면, 화들짝 놀란 철새 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그려내는 군무와 닮았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인간의 발자국은 두터운 더깨를 만들고 흔적을 남긴다. 어디든 사람의 발길은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깊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기보다 그들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으로 다가간다. 슬그머니 다가가 별다른 흔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도 밟히거나 짓이겨진 풀과 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들떠있는 까닭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58번 산타 마리아 하이웨이는 템블러 산의 북쪽에 난 길인데, 그 산너머가 바로 카리조 대평원이므로 꽃이 많아지기 시작한 곳부터 이미 카리조 대평원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미루어 생각하기로 대평원의 꽃들이 퍼져나가 템블러 산의 남쪽과 대평원의 바닥에만 머물러 있지 못하고 산을 넘고 길을 건너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카리조 플레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있었으므로 이 생각은 바르지 않은 것 같다. 기후 조건이 달라 어떤 경계선이 만들어져 있다는 짐작이 맞을 것 같다. 농가가 있는 언덕을 넘으면 바로 펼쳐지는 카리조 대평원은 한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야 비로소 보이는 이 대평원은 제주도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넓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제주도의 유채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번 상상해 보시라. 제주도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땅, 주변이 빙 둘러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평야가 갖은 꽃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 어떤 풍경일지....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 넓은 지역이 한꺼번에 빼곡하게 꽃으로 뒤덮이지는 않는다. 카리조의 가운데에는 호수도 있고, 그 호수와 연결된 습지들도 있을 뿐만 아니라, 평지에 피는 꽃들도 피는 때가 다르기도 하고, 어떤 곳은 메말라 있기도 하며, 평원을 두른 산들에도 꽃이 있는 곳이 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그저 푸른 풀들만 자라거나 아무것도 없는 민둥산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지도가 작아 잘 안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지도의 위쪽(북쪽)에서 아래쪽으로 나 있는 길이 하나 있는데, 평원에 있는 길 가운데 이 길만 포장이 되어있고 나머지는 비포장이다. 그렇다고 아주 거칠지는 않아서 승용차로도 다니는데 어려움은 없다. 지도에서 실금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들이 이곳에 나있는 길을 말한다. 이곳을 여행하기 위해 정해진 경로는 따로 없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눈에 띄는 길을 타고 가다 보면 어디를 가나 꽃이 없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지지난 해 든가 길을 잘 모른 채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여기를 찾았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주므로 처음 가는 길로는 꽤 험해 보이는 길로 안내를 하길래 지레 겁을 먹고 다른 길을 탔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소심했다. 좀 알고 나면 오히려 그런 길들이 여행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며, 뜻밖의 풍경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므로 겁낼 까닭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흙먼지 폴폴 날리며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꽃은 한눈에 보기에는 그저 노랗게만 보이고, 한 가지 꽃이 세력을 넓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구역은 그렇기도 하다. 그들 가운데 자리 잡고 서서 꿋꿋하게 버티는 꽃이 있기도 하다. 그런 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장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거의 한 가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그 땅은 그들 차지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 보면 이내 그들은 힘을 잃고 또 다른 종류의 꽃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이 꽃 저 꽃 섞바뀌다 어느 곳에 이르면 그들은 다시 조금씩 자리를 양보하고 이런 빛깔 저런 빛깔 함께 모여 어우러진다.


어디든 언제든 무엇이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차이를 둘 수 있는 구석은 무엇이 있을까? 나무나 꽃, 풀들을 세심하게 살펴본 사람들에 따르면 식물들도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집단을 이뤄나간다. 힘으로만 한다면 사람을 따를 자가 없겠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들도 그들 하나하나 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가만히 살피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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