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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에 홀리다 May 09. 2019

들꽃 세상 캘리포니아(2)

카리조 대평원(Carrizo Plain National Monument)


카리조 플레인은 너무 넓어서 하루에 여기를 돌아보기는 어렵다. 할 수 있으면 하룻밤 묵으면서 해넘이와 해돋이에 꽃들은 어떻게 햇살과 만나고 헤어지는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은 어떤 모습으로 꽃을 어루만지는지 살피는 것도 좋다. 땅이 다르고 그곳에 자라는 생명이 다르니 제각기 품은 빛깔도 다르다. 발길을 멈추는 곳마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는 일은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시간이 없다고 애달파할 일은 아니다. 그 시간만큼 충분하게 그곳에 머물면 될 일이다.


카리조 플레인의 흙이 그런지 확실치는 않지만 소다 호수로 흘러들어 가는 물줄기엔 늘 소금기가 묻어있다. 어디 냇물이나 강물이 호수로 흘러드는 것은 아니고, 비가 내리면 빗물이 호수로 흘러들어 가다 힘에 부치면 말라버리기도 하고, 일부는 호수까지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물줄기가 꽤 여럿지만, 겉에서 그들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언젠가 작은 무인 비행기를 이용해 찍은 소다 호수로 흐르는 물줄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눈높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많고 물줄기가 ㅇ한만해 아릅답기마저 했다. 파란 대지, 봄엔 샛노란 들꽃이 가득하고, 여름엔 짙푸른 풀들이 가득한 곳을 가로질러 흐르는 하얀 물줄기는 하늘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눈높이로 보기에도 색다르고 별나다.  


공원 안에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는 꽃이 있고, 어딘가에는 풀들, 이름 모를 풀들이 널렸다. 때로 이들은 쓸모가 없다는 까닭으로 잡초로 몰리는 이들이다. 이들을 다 톺아보기는 어렵다. 그저 지나는 길에 눈길이라도 주면 그들 또한 반갑다고 손인사를 한다. 그 가운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곳이 나오면 지체 없이 길을 멈추고 만날 것,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숙이고 눈앞으로 당겨볼 것, 멀리 보면 한 빛깔인 그들도 눈앞에선 제 빛깔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머리가 길기도 하고, 몸이 짧은 것도 있다. 잎이 좀 더 파랗거나 가지가 조금 더 많은 것들도 있다. 어떤 것을 한눈에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얼핏 쉬워 보일 수도 있다. 알 것도 같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하나하나 얘기하다 보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 한번 본 것으로 또는 한번 만난 것으로 다 알려고 하는 것은 그냥 욕심일 뿐이다.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그만큼 애쓰고 노력하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게 해도 모를 있지만, 그러는 동안 적어도 관계는 깊어지고 있는 기회는 생길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꽃은 냄새를 피우기도 하고, 아무 냄새가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어떤 꽃은 빛깔로, 어떤 것은 모양으로, 또 다른 것은 맛으로 지나는 나그네를 손짓해 부른다. 어쨌든 꽃은 쓰임새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꽃이 없으면 그 쓰임을 대신할 다른 것을 지닐 수밖에 없다.


생물은 자신이 있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적응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나면 그 형질이 달라져 다음 세대로 전해주고 이런 것을 진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이야 사는 날이 길어 이것을 가늠해 보기가 어렵기는 하나 모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하리라. 그러므로 이들은 이 넓은 곳에 적응하여 지금처럼 번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사람의 말로 표현하자니 이렇지만, 어쨌든 그들이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기 위해 했을 노력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가기 위해 하고 있는 노력들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중한 만큼 그들도 소중하다.


그러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나 보다는 나아 보이기도 해서 그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가는 허리와 옅은 빛깔로 엎드려 곁눈으로 봐야 겨우 구분될 그들이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을 만큼 힘이 있는 그들에게 겸손하게 한 수 배우고 떠난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넓고 멀리 볼 수 있다. 넓고 멀리 보이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해도 때로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서로 어떻게, 어디에 누가 터를 잡았는지 알 수 있고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카리조 플레인 가운데 있는 소다 호수와 카리조 플레인을 거의 빙 둘러가며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하나 있다. 물론 이곳이 아니라고 해도 호수를 둘러싼 템블러 산이나 깔리안테 산에 오르면 볼 수는 있지만, 산을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방문자 안내소 못미처에 있는 이 전망대는 주차장에 차를 대로 십여 미터만 오르면 눈앞이 뻥 뚫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전망대를 내려오면 길 건너에 주차장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은 다름 아니라 소다 호수를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트레일을 위한 곳이다. 호수 가까이 들어가면 나무로 걸을 수 있는 길을 냈는데, 호수 주변의 생태 환경이나 하얀 호수 바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이 나무다리를 걷지 않고 바로 호수로 내려가 볼 수도 있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좀 질척하므로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람들은 소다 호수가 있고, 호수 건너편에 널찍한 꽃밭이 있고, 그 평원을 가로질러 마주 보이는 템블러 산이 있는 동쪽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뒤로 보이는 깔리안테 산 쪽을 살피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꽃이 그리 많지 않고, 호수도 없고, 산에도 꽃이 별로 없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는 쪽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디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성향인가보다.  


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돌다 보면 전망대와 방문자 센터가 있는 호수 서쪽에 사람들의 그림자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호수와 평야와 템블러 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소다 호수에는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는 길이 두어 개 있는데 이 길을 가다 보면 길섶으로 눈이 아른거릴 만큼 많은 꽃이 피어있다. 이곳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사진 동호회인 듯한 일행이 많다는 것이다. 저마다 사진 장비와 삼발이를 둘러메고 모델을 앞세워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정모를 하는 것 같다. 다들 어마어마한 장비를 둘러멘 그들을 보니 선뜻 앞서 나가기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그 많은 이들 가운데 또렷이 드러나 보이는 것은 나무 그늘이 없는 그곳에 그늘막을 치고 앉아 하루를 즐기는 이들과 꽃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빨간 옷을 입은 노부부다. 그늘막에 앉은 이들이나 따가운 햇살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나 꽃이 좋아 이곳에 왔으리라. 이 노부부는 빨간 옷을 입고 있어 무리들 가운데 단연 또렷하게 드러나서 사진을 찍는 내내 모델로 등장하셨다.


카리조 플레인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떠나는 길에 잠시 들린 템블러 산은 멀리서 볼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산 중턱 즈음에 난 주차장엔 꽤 여러 대 주차하고 있고, 산 봉우리 능선엔 사람의 그림자 어른거리는 것을 보니 여기에 온 사람들은 꽃구경도 할 겸 등산을 하러 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도 괜찮을 것 같다.


꽃이 흐드러진 날엔 어디 다른 곳 헤멜 일 없이 바로 산에 오르면 될 일이다.

다리에 힘이 좀 들어갈 즈음 길섶 꽃 옆에 무거워진 다리 잠시 쉬게 하는 것도 좋겠다.

꽃잎의 노래, 하늘의 휘파람을 들을 수 있다면 어디 산엔들 못 오르겠는가?


다시 올 봄엔

그리 한번 해봐야겠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면.

여전히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면.


이렇게 또 한 번 봄날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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